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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큰 입, 큰 귀, 큰 눈

[칼럼] 큰 입, 큰 귀, 큰 눈

기사승인 2016. 05. 04.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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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고문
유비는 원소에게, 관우는 조조에게 각기 몸을 의탁하고 있던 불우한 시절, 관우가 원소의 맹장 안량과 문추의 목을 베자 곤경에 처한 유비는 관우에게 밀서를 보낸다. ‘그대와 나는 도원에서 같은 날 죽기를 맹세했소. 어찌 중도에 의리를 끊으리오. 그대가 부귀공명을 바란다면, 내 머리를 조조에게 바쳐 공을 세우시오.’

관우가 대성통곡하며 답신을 쓴다. ‘삼가 듣건대, 의리는 마음을 저버리지 않으며 충절은 죽음을 돌보지 않는다 합니다. 목숨 바쳐 하비성을 지키려 했으나 두 형수님이 함께 계신지라 가벼이 죽을 수 없어 일시 조조에게 위탁하였습니다. 이제 형님의 소식을 알았으니 즉시 조조를 떠나 두 형수님을 모시고 형님께로 가겠습니다. 제가 다른 마음을 품는다면 귀신과 사람이 저를 함께 죽일 것입니다.’

유비는 적진에서 공을 세운 관우가 자기를 배신했다고 꾸짖지 않는다. 도원결의를 상기시키며 반어법으로 재회를 촉구할 뿐이다. 유비의 도량에 감읍한 관우는 조조를 버리고 오관참장(五關斬將)을 하며 유비를 찾아간다. 창작이 가미됐다고는 하나, 삼국지연의가 그려낸 이 장면은 인간관계의 신의라는 것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슴 뭉클하게 전해준다.

신뢰는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신뢰를 ‘주는 것’으로 아는 사람은 상대의 불신을 꾸짖기보다 신뢰를 주지 못한 자신을 탓한다. 그러나 신뢰를 ‘받는 것’으로 아는 사람은 신뢰를 주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기는커녕 상대의 불신을 배신으로 낙인찍기 일쑤다. 인간적 신뢰마저도 자기만족을 위한 도구쯤으로 여기는 오만의 소치다. 신뢰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면, 신뢰는 곧 사랑일 터이다. 사랑받기를 원하면서 사랑을 베풀 줄 모른다면, 그 사랑은 실패한 것이다.

신뢰를 주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의 신뢰도 받지 못한다. 가까웠던 사람도 하나 둘 곁을 떠나고 만다. 자기는 입을 열고 상대는 귀만 열어야 한다면, 그것은 인격의 상호관계가 아니라 갑을(甲乙)의 상하관계에 불과하다. ‘사람을 목적으로 대우하고 수단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칸트의 정언명법(定言命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비인격적 관계일 따름이다.

‘모든 관계에서 신뢰는 모유(母乳)와도 같은 것이다.’ 문명비평가 존 러스킨의 지적이다. 신뢰가 인간관계의 바탕이라는 뜻이다. 신뢰가 깨지면 인간관계의 기초가 무너진다. 오늘의 우리 사회는 신뢰가 파탄 난 상태나 다름없다. 사제(師弟)관계도, 노사(勞使)관계도 온통 불신의 그늘로 덮여있다. 가족들이 서로 갈라서는 파탄 가정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개인적 차원만이 아니다. 공직사회의 신뢰도는 비참할 정도다.

우리에게 방어수단이 없는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실험까지 성공한 북한의 핵위협을 눈앞에 두고도 국가안보를 책임진 군의 고위간부들이 방산 비리로 거액의 혈세를 빼돌리는 상황에서 어떻게 군의 안보능력을 믿을 수 있겠는가. 돈 없고 힘없는 피고인들이 중형을 선고받는 법정에서 정치인과 재벌들은 줄줄이 석방되는 현실을 민초(民草)들이 어찌 납득하겠는가.

정치권의 신뢰도는 절망적이다. 여야관계는 물론이고 같은 당 안에서도 계파 간의 불신과 갈등이 목불인견의 지경이다. 선거 때마다 공천 싸움과 탈당·분당(分黨)을 밥 먹듯 하면서도 선거가 끝나면 언제 싸웠냐는 듯 통합과 연대를 입버릇처럼 외친다. 제 정신이라면 도저히 못할 짓 아닌가. 유권자의 눈을 흐리는 정치공학만 넘쳐날 뿐,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책임정치는 실종된 지 오래다.

개헌이 답인가. 연립정부가 해결책인가. 이원집정부제가 신뢰의 정치를 보장하는가.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인격의 문제다. 큰 귀는 겸손하고 큰 입은 오만한 법이다. 영어로 큰 입(big mouth)은 떠벌이라는 뜻이다. 떠벌이에게 신뢰가 있을 턱이 없다. 입을 열기 전에 귀를 열어야 신뢰가 싹튼다. 측근(inner circle)에 둘러싸여 귀를 닫아버리면 신뢰의 문도 닫힌다.

유비는 귀가 컸다. 대이아(大耳兒)라는 별명답게 그는 널리 경청하는 겸손한 자세로 천하의 인재들을 품고 신뢰의 정치를 폈다. 옛 군신(君臣)관계에서도 그러했거늘, 하물며 오늘의 민주사회일까. 큰 귀의 정치인을 찾기 위해 국민이 큰 눈을 부릅떠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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