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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학 칼럼] 중립국 국가전략이 21세기에도 유용할까?

[강성학 칼럼] 중립국 국가전략이 21세기에도 유용할까?

기사승인 2023. 07. 0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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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당신에게 비우호적인 자는 당신의 중립을 요구할 것이고 당신에게 우호적인 자는 당신에게 무기를 들라고 할 것"이라는 근대 정치학의 아버지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의 엄중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약소국들은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해 중립을 선언하고 또 그런 지위를 강대국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19세기 서양 강대국들의 제국주의의 파도가 극동에 밀려와 조선의 국가적 생존이 위험할 때 고종 왕의 외교 고문관이던 독일인 묄렌도르프(von Moellendorff)가 처음으로 유럽에서 당시 벨기에(Belgium)에 부여된 것과 같은 중립국의 지위를 조선에 보장하도록 다른 강대국들에게 제안할 것을 러시아에 요청했다.

러시아의 니콜라스(Nicholas II) 황제는 이런 조선의 요청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조선의 중립국화 추구는 출발부터 실패한 것이다. 그 이후 분단된 한국의 중립국화는 국가의 정책으로 한 번도 추구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살아가야 하는 한국인들에게 중립국은 하나의 너무도 매력적인 지위로 간주되어 일부 지식인들은 '한반도의 중립화 통일"과 같은 제안을 여전히 사실상  최선의 방안으로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한반도의 중립화는 아주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만큼이나 너무도 비현실적이다. 그것은 하나의 몽상에 지나지 않는다.

국제법상 지위로서 중립(neutrality)이란 국가가 타국들에 의해 수행되는 전쟁에 관여하지 않으려는 염원의 결과다. 그러므로 중립이란 본질적으로 교전국 사이의 명백한 관계, 즉 전쟁의 존재에 의존하는 소극적인 지위이다. 법적인 의미에서 전쟁이 없는 곳에 중립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중립은 그것의 법적 지위를 구성하는 복잡한 권리와 의무는 전쟁에 끼지 않고, 제한된 범위 안에서 가능한 한 최대한 행동의 자유를 유지하려는 정책의 표현이다. 그러나 그런 자유는 중립국을 희망하는 국가 자신에 의해서 결정되기보다는 그 중립국이 상대편에 합류하는 것을 막고 또 지지를 확보하길 바라는 교전국들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환언하면 중립국은 스스로의 선언으로 성공하는 게 아니라 전쟁상태의 타국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영국과 스칸디나비아국가들 그리고 미국과 같이 중립국의 영토가 교전국의 군사작전이 도달할 수 없는 지리적 고립이 거의 언제나 중립국 지위의 가장 믿을 만한 보호막이었다. 근대국가제도의 출발점인 베스트팔렌 조약과 제1차 세계대전 사이의 기간은 유럽에서 고전적인 힘의 균형(the balance of power)의 시기였다. 나폴레옹 전쟁기간을 제외하면 국제체제의 상대적 안정은 중립국들 지위의 상대적 안전과 일치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은 모든 중립국의 경제적 권리가 완전히 박탈되고 또 벨기에와 그리스의 경우처럼 중립국의 정치적 지위가 파괴되었다. 중립국으로 남는 데 성공한 다른 국가들은 비(非)유럽이나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스페인처럼 지리적 조건이거나 아니면 네덜란드와 스위스처럼 군사적-정치적 고려의 덕택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국제연맹의 집단안보체제가 중립국의 법적지위에 도전했다. 그동안 중립은 국가정책의 수단으로서 전쟁의 합법성을 가정하고 전쟁의 개입여부를 결정할 모든 국가의 권리를 인정했다. 그러나 이제 집단안전보장제도는 '합법적인 전쟁과 불법적인 전쟁'을 구별했고 모든 국가들로 하여금 합법적인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에 합류할 것을 요구했다. 국제연맹의 규약이 충분히 성공적으로 작동했더라면 중립국은 불법화되고 정치적으로 작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규약은 집단안보의 이상을 품었지만 법률적 커다란 구멍을 남겼다. 1935-1936년 이디오피아를 침략한 이탈리아에 대한 국제연맹의 제재 실패는 국제연맹에 의한 집단안보의 실험을 종식시켰다. 그리고 힘의 균형체제의 부활은 약소국가들의 전통적인 반응인 중립을 불러일으켰다. 유럽의 약소국인 벨기에,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네덜란드, 스페인, 그리고 스위스가 국제연맹규약 제16조하의 의무를 모든 실질적 목적을 위해 취소했다. 국제연맹은 스위스의 중립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지만 소위 전통적인 유럽의 약소국들은 스스로 중립을 선언했다. 그리하여 유럽의 약소국들은 중립의 전통적인 보호정책인 재무장과 고립으로 돌아갔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야에 국가간 힘의 분포는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 때 존재했던 것과 동일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유럽의 약소국들은 안전을 위해 강대국에 편승했다. 더구나 당시 득세하는 소련과 독일의 전체주의적 제국주의는 중립에 적대적이었다. 이러한 경향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 후에 정치적 및 군사적 발전으로 심화되어 결국 중립에 파괴적이었다. 핵무기의 파괴력 증대는 그런 무기가 없는 어떤 국가도 다른 국가의 사용을 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냉전시대에는 미소가 전쟁이 아닌 다른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현상을 변경하려고 했다. 그리하여 전복, 선전, 그리고 원조를 통해 상대방의 국내 상황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심리전이 주된 전략이 되었다. 유엔의 범세계적 집단안전보장제도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라는 집단방어체제, 그리고 한국전후 지역적 집단방어체제와 쌍무적 방위조약의 확산으로 인한 냉전체제의 심화로 국제사회에서 정책목적으로 중립이 사실상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얼마 후에 헛된 부활의 시도들이 등장했다. 몇 나라들이 중립이길 원하면서도 동시에 중립이 아닌 모호한 입장을 취하면서 중립국의 지위와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오직 이기적 이득만을 취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유럽의 몇몇 국가들과 소위 아시아-아프리카 블록(Asian-Africa bloc)이라는 소위 제3 세력(a third force)이 양극체제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구성원들로 하여금 정치적으로 단결된 행동을 가능하게 할 항구적으로 중대한 공동이익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서양에서 우랄산맥'까지 독립적 제3의 유럽세력을 형성하려 했던 프랑스 드골 대통령의 계획은 하나의 백일몽에 지나지 않았으며, 또한 1955년 4월 반둥(Bandung)선언은 공허했고, 그리고 다음해 있었던 나세르, 네루. 그리고 티토의 회담도 아무런 정치적 효과를 가져 오지 못했다.

냉전이 종식되자 국제사회에서 중립국은 비참한 '나홀로'가 되고 말았다. 냉전종식의 환희는 21세기에 들어서 비눗방울처럼 창공으로 덧없이 사라져버렸다. 냉전종식으로 세계는 칸트의 상호의존적 평화로운 세계가 아니라 유럽에서는 러시아의 팽창주의의 부활 그리고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는 중국의 현상타파 모색으로 마키아벨리적 신냉전체제가 심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중립을 추구한다는 것은 역사적 교훈을 망각한 가장 어리석은 국가전략이 될 것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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