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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내 ‘성군기 위반·성범죄’ 왜 이렇게 많이 일어나나?

군내 ‘성군기 위반·성범죄’ 왜 이렇게 많이 일어나나?

기사승인 2014. 10. 10.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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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괴롭힘' 당한 여군들 자살해도 '솜방망이' 처벌…'키스하고 가슴 만져도 '무죄'...폐쇄적이고 남성 위주 군 조직문화도 한몫
우리 군의 일선부대 현역 사단장인 육군 소장이 부하 여군을 성추행한 혐의로 긴급 체포되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나 큰 충격을 던져 주고 있다.

그동안 사단장이 업무 시간 외에 부대 밖이나 회식 장소에서 사적으로 부하 여군을 성추행 혐의로 보직이 해임된 적은 있었지만 부대 내 집무실에서 부하 여군을 수차례 성추행한 혐의로 긴급체포까지 돼 조사를 받기는 창군이래 처음이다.

9일 육군에 따르면 경기도 모 부대의 사단장 A모 소장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부하 여군 부사관을 수차례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 여군은 같은 부대의 병영생활상담관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본부가 지난 8일 이런 사실을 파악한 뒤 하루만에 A 소장을 긴급체포한 것은 이번 사건으로 군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감이 더욱 커질 것을 우려한 조치로 보인다.

육군 관계자는 “성군기 위반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면서 “이번에 신속하게 신병을 확보한 것도 이런 차원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10일 예정된 국방부 군사법원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번 사건이 장병 인권보장과 병영혁신, 군사법제도 개혁, 국방 옴부즈맨 제도 도입과 맞물려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군내에서 여군에 대한 성추행 사건이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것은 일단 성 군기 위반 사건에 대한 우리 군의 징계 기준과 양형이 너무 약한데에도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다.

국방부가 지난 1월 개정한 ‘군인·군무원 징계업무처리 훈령’을 보면 장교들의 경우 강제 추행과 추행, 성희롱과 성매매의 경우 비행의 정도가 가볍고 경과실로 판단되면 징계는 감봉∼견책, 근신∼견책 정도에 그친다.

무엇보다 군에서 잇따라 일어나고 있는 성 군기 위반 사건에 대한 이러한 ‘솜방망이’ 처벌이 남성 위주 조직 문화와 군의 온정주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권은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낸 국감 자료에 따르면 여군을 대상으로 한 성군기 위반은 2010년 13건에서 2011년 29건, 2012년 48건, 2013년에는 59건으로 늘어났다. 올해 8월 말 현재 34건이나 적발됐다.

피해 여군은 하사가 109명(59.5%)으로 가장 많았고 대위 20명, 중위 12명, 소위 7명 등이었다.

하지만 최근 5년 동안 가해자들에 대한 징계 처분 현황을 보면 감봉 52명, 견책 35명, 근신 24명, 유예 12명 등으로 대부분 경징계를 받았다. 중징계는 정직 30명, 해임 5명, 파면 2명 등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군 육군 소장은 부하가 저지른 성범죄와 관련해 준장으로 계급이 강등되고 군인 연금까지 삭감돼 퇴역 조치를 당한다”면서 “하지만 한국군 지휘관들은 여군 대위가 성추행 때문에 자살까지 해도 그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면서 근본적으로 성군기에 대한 우리 군의 인식이 안이하고 처벌 또한 경미한데서 군내 성군기가 만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육군 같은 경우는 지난 8월 말 성명을 내고 “자신의 관할 아래 부하가 저지른 성범죄 사건을 적절히 처리하지 못했다”면서 “지난해 6월 주일 육군사령관에서 보직 해임된 마이클 해리슨 소장이 한 계급 강등된 준장으로 불명예 전역한다”고 발표했다.

성군기를 다루는 군의 인식과 대응이 한국군과 비교해서 얼마나 엄격하고 강하게 처벌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해 3월 당시 주일 미 육군 사령관이던 해리슨 소장은 자신의 휘하에 있던 한 대령이 일본인 여성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신고를 접했다.

하지만 해리슨 소장은 규정대로 즉각 군 수사기관에 보고하는 대신 자체 조사만 벌였다. 물의를 일으킨 대령은 해리슨 소장과 1980년대부터 알고 지낸 오랜 부하였다.

사건은 미군 기관지이며 군사전문지인 ‘성조지(Stars and Stripes)’ 기자가 취재를 시작한 이후에서야 상부에 보고됐다. 2달 가량 늦은 ‘늦장보고’에 해리슨 소장은 즉각 보직 해임됐다.

해리슨 소장은 이후 미국 워싱턴D.C.로 돌아와 육군 참모차장 아래에서 일을 하다가 올해 봄 전역을 신청했다.

하지만 미군은 부하 성범죄에 대한 수사를 고의로 지연시킨 책임을 물어 장군 지휘관이었던 해리슨 소장의 계급을 준장으로 강등시키는 가혹한 퇴역 조치 ‘명령’까지 내렸다.

계급강등을 당한 해리슨 소장의 군인연금 수령액도 상당 부분 줄어들 것으로 전해졌다. 성조지는 그의 연금이 매달 수백 달러씩 삭감된다고 전했다.

이처럼 미군은 성범죄를 저지른 대령 부하를 감싼 육군 소장의 계급을 강등시키고 전역 후 군인연금 수령액까지 삭감하는 과도하리만큼 ‘가혹한’ 책임을 물어 퇴역 조치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군에서는 부하가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처벌이나 책임을 지는 지휘관이 없다. 특히 지휘관이나 상관이 계급을 악용해 성범죄를 버젓이 저질러도 처벌이나 징계를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처벌이나 징계를 받아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

더구나 부대에서 상관이나 남군들로부터 성적 괴롭힘과 성추행, 성폭행을 당한 피해 여군 장교와 부사관들이 자살을 해도 법적 처벌과 징계는 미약하기만 하다.

2010년부터 올해 6월까지 여군 피해 성범죄는 강간이나 성추행, 간음 등 83건이 발생했다. 최근 5년간 군대 안에서 83건의 여군 성범죄 피해가 일어났지만 실형은 고작 3건에 그쳤다. 8월 현재까지 재판이 끝난 60건의 처벌 결과를 보면 실형은 3건으로 실형율이 5%에 불과하다.

특히 영관급 이상 8명의 피의자 가운데 1명만 벌금 400만원 처벌을 받았고 나머지 7명은 모두 불기소 처분에 그쳤다. 범죄행위 중에서 강간과 강간미수, 강제추행 등의 혐의를 저질렀지만 불기소 처분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2012년 육군 모 대위는 강간 혐의로 입건됐지만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같은 해 육군에서 발생한 7건의 강제추행 범죄행위자 역시 모두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지난해 해군 소속 모 중사의 경우는 ‘키스를 하며, 가슴을 만지는 등 20차례 추행’을 한 범죄사실이 드러났지만 무죄를 선고받았다. 지난해 상관의 지속적인 성추행으로 자살한 여군 오모 대위 사건의 경우도 군사법원은 올해 3월 1심 재판에서 가해자 노 소령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한 예비역 전문가는 “군에서 성군기 위반과 성범죄가 만연한 것은 폐쇄적인 군의 특성에서 기인하는 측면도 있지만 성군기 위반 교육이나 군의 인식 자체가 너무 안이하고 아직도 남성 위주 잘못된 인식이 만연해 있는 곳이 우리 군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여군 성범죄에 대한 군의 솜방망이 처벌이 성범죄를 조장하고 있기 때문에 가해자에게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엄벌에 처해야 한다”면서 “최근 급증하는 군내 성추행과 성폭행, 성 가혹행위, 성범죄는 군 사법개혁 차원에서 군사법원이 아닌 일반 법원에서 반드시 다뤄져야 하며 장병 인권과 병영혁신 측면에서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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