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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로스쿨 설립 취지 무색

[심층취재] 로스쿨 설립 취지 무색

기사승인 2015. 04. 14.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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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화, 비특성화...사시 존폐 놓고 갈등
서울 소재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2학년생 K씨는 현재 휴학 중이다. 학업 스트레스와 함께 여러 가지 일이 겹치는 바람에 건강이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히 쉴 수만은 없다. 복학 후 뒤처지지 않기 위해 민법과 학교를 다니며 전혀 손을 댈 수 없었던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 로스쿨생으로서 가장 걱정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진짜 고생해서 변호사가 되었는데도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할까봐, 그것이 가장 걱정된다”고 했다.

현재 법조인력 배출창구는 사법시험과 로스쿨 제도로 이원화돼 있다. 사법연수원 출신과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사건을 맡기는 의뢰인들은 로스쿨 출신보다는 실력이 검증된 사법시험 출신 변호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2017년 폐지 예정인 사법시험을 존치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변호사시험 일부개정법률안은 19대 국회에 4건(새누리당 김용남·노철래·김학용·함진규 의원)이 발의된 상태다. 지난 1월 제48대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으로 당선된 하창우(60·사법연수원 15기) 회장은 사법시험 존치를 공약으로 내세웠었다.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한규)도 최근 현 로스쿨과 변호사시험 관련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서울변회는 지난달 24일 부실 로스쿨 통폐합 등을 교육부에 건의했다. 이어 6일에는 로스쿨 입학정원 대비 75% 이상을 보장하고 있는 현행 변호사시험의 합격률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법무부에 제출했다.

사법시험을 존치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강해지고 있고, 로스쿨에 대한 문제점이 적극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 유명무실화된 특성화 교육

로스쿨 제도는 2007년 ‘법학전문대학원 설치 운영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면서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지만 아직도 많은 진통을 겪고 있다. 과도한 학비와 불투명한 입시과정으로 인해 ‘현대판 음서제도’라는 별명이 붙었다. 아울러 공개되지 않는 변호사시험성적, 부실한 학사운영으로 인한 법조인들의 질적 저하 등 도입초기부터 운영상·제도상의 많은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문제점들은 ‘고시낭인이라는 사법고시의 폐해를 막고, 교육을 통한 다양성과 전문성을 지닌 법조인 양성’이라는 로스쿨의 도입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로스쿨 특성화 교육의 유명무실화’는 이 같은 현실을 잘 보여준다. 전국 25개의 로스쿨은 지적재산권(인하대·충남대), 국제법무(고려대), 부동산관련법(건국대), 정보통신(IT)법(경북대), 의료과학기술(연세대) 등 각기 다른 특성화 분야를 가지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해 대학마다 특성화된 학문을 법학과 접목해 가르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특성화 교육의 수요자인 학생들은 특성화 과목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변호사시험과 관련된 민법·형법 등 기초 법률 과목을 학습해야 하기 때문에 특성화 과목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학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로스쿨생 A씨는 “나 같은 비법학도에게는 기본 3법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학점경쟁부터 시작해서 그 불부터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 필수과목이 아닌 것에 집중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실제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이에리사 새누리당 의원이 2012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로스쿨 중 특성화 과목을 일정학기 이상 이수해야 한다는 규정을 둔 대학은 6곳에 불과하다. 또한 2011~2012년 전국 로스쿨이 개설한 특성화 강의 941개 중 18.9%(178개)는 수강신청 인원 민달 등의 이유로 폐강됐다.

◇ 고착화되는 서열화

특성화 교육이 유명무실화되면서 점점 심화되고 있는 문제점은 ‘로스쿨 서열화’다. 대학에 이어 로스쿨까지 서열화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각 학교가 특성화 분야를 잘 살려 그 분야에 맞게 학생들을 고루 선발하는 환경이 조성됐다면 로스쿨의 도입취지를 잘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25개의 로스쿨들을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인 서울 대형(한양대·성균관대·이대), 인 서울 미니(서강대·경희대·중앙대·한국외대 등), 지방거점국립대(경북대·충남대 등) 등으로 나눠져 있다. 학생들은 각 대학들의 판·검사임용 비율, 10대로펌 취직 비율을 따져가며 학교를 지원하고 있다. 그 결과 각 학교들의 취업 결과도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최근 배출된 로스쿨 4기 출신들의 12대 로펌(소속변호사가 100명이 넘는 대형로펌) 입사자들의 현황을 살펴보면 서울대·연세대·고려대는 모두 20명 이상으로 두 자리 수를 기록했지만 지방대학들은 0~1명으로 집계됐다.

로스쿨
최근 배출된 로스쿨 4기 출신들의 12대 로펌(소속변호사가 100명이 넘는 대형로펌) 입사자들의 현황을 살펴보면 로스쿨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서열화 현상은 일부 로스쿨들의 부적절한 학사운영이라는 악순환을 초래하기도 한다. 서열화가 고착화 될수록 많은 학생들과 학교는 ‘교육 과정’보다 ‘보여지는 결과’에 치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논란이 됐던 제주대 로스쿨의 파행적인 학사운영이 그 예다. 교육부 조사 결과 제주대 로스쿨은 전국 최하위 수준인 변호사시험 합격률 등을 만회하기 위해 학사운영 규정에 따라 유급대상인 원생들을 편법으로 졸업예정자 명단에 포함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일부 로스쿨들은 변호사 시험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합격 가능성이 높은 인원만 졸업시키기 위해 졸업사정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학교 측에서는 변호사 시험 합격률 같은 수치가 로스쿨 평가의 잣대가 되고 있고 5년마다 있는 재지정 평가 때 정원이나 예산지원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한다.

법학전공 출신인 S대 로스쿨 졸업생 B씨는 “로스쿨 수업이 학부 시절 배웠던 법학 수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부 교수님들은 자기가 선호하는 학설대로 작성된 답안지를 선호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서 기술적인 방법을 쓰기보다 수업의 질을 높이는 것이 우선 아닌가” 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변호사시험 선택과목의 범위를 각 로스쿨들의 모든 특성화 과목으로 확대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아울러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더 높이거나 시험을 자격시험화해 학생들이 로스쿨 재학 중 다양한 특성화 교육을 받을 시간을 확보해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래야 학생들도 단순히 대형로펌 취직만이 아닌 다양한 직역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사법시험의 폐해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사립대 K대를 다니는 로스쿨 준비생 P씨는 “변호사가 벼슬이 아닌데 정원을 계속 제한하려고 하는 것은 변호사 양성을 민간에 맡기겠다는 로스쿨 도입취지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라며 “우리나라 풍토 자체가 사법시험 제도 시절의 신분상승 같은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법률 서비스의 질 저하 같은 얘기는 기득권들의 핑계로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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