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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때]인종차별로 빚어진 ‘LA 흑인폭동’

[오늘, 그때]인종차별로 빚어진 ‘LA 흑인폭동’

기사승인 2015. 04. 2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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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폭동
LA 흑인폭동
2015년 4월 29일 오늘은 4·29 재보궐 선거날입니다. 서울 관악을과 인천 서구강화군을, 경기 성남중원, 광주 서구을 등 모두 4곳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을 다시 뽑는데요. 4석에 불과해 ‘미니선거’로 불리지만 내년 총선과 나아가 이후 대선구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큰 의미의 선거’라는 평가입니다. 이번 선거는 오전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진행됩니다.

그렇다면 과거 ‘이날’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1992년 4월 29일부터 미국 LA지역을 무법천지로 몰아넣은 흑인폭동은 미국 사회의 암적 요소인 인종간 불평등과 상호갈등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LA폭동은 ‘로드니 킹’ 사건으로 비롯됐는데요. 흑인청년 로드니 킹을 백인 경찰들이 무자비하게 구타하는 현장이 TV로 공개되면서 피소된 사건입니다.

하지만 흑인은 한 명도 없이 백인 10명을 포함한 배심원 12명은 경찰관들에게 무죄 판결을 냈습니다. 이에 흑인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는데요. 주방위군 6000명과 연방군 1000명이 사태를 장악하기까지 58명 사망, 2838명이 부상당했으며 3010명이 연행됐습니다.

LA폭동은 근본적으로 백인 주류사회에 대한 증오의 폭발이었습니다. 인구 12%를 차지하는 흑인들은 열악한 생활여건에 시달렸습니다. 이번 폭동으로 한인교포들이 큰 피해를 입었는데요. 재산피해 3억달러로 총 피해액 5억500만달러의 절반을 넘었습니다. 코리아타운은 폭도들에게 초토화됨으로써 한-흑 갈등으로까지 비춰졌습니다.

또 1932년 이날은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가 중국 상해 홍구공원에서 열린 일왕 히로히토의 생일을 기념하는 기념식장에서 물통과 도시락에 장착한 폭탄을 던져 참석한 주요인사들을 폭살했습니다. 거사 직후 체포된 윤의사는 5월 25일 상해 파견 군사령부 국법회의 예심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12월 19일 가나자와 형무소에서 순국했습니다.

2011년에는 영국 윌리엄 왕세손과 캐서린 빈의 결혼식이 열렸습니다. ‘저물어가는 나라’ 영국은 이 결혼식에 전통과 품위, 현대적인 감각을 더했는데요. 결혼식은 절차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영국 성공회의 특징을 잘 보여줬습니다. 세계 각국 언론이 모여들었고, 유투브 등 새롭게 등장한 소셜 미디어들도 영국 왕실의 결혼식을 전세계에 중계했습니다.

한편 1951년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사망했고, 1980년에는 영화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이 81세로 미국에서 타계했습니다. 히치콕은 독창적 영상기법으로 현대인들의 불안, 공포 심리를 세련되게 다뤄온 영상의 마술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은 ‘사이코’와 ‘새’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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