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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기자 5명, 국민참여재판 ‘그림자 배심원’ 참관기

인턴기자 5명, 국민참여재판 ‘그림자 배심원’ 참관기

기사승인 2015. 06. 08.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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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설명부터 실제 판결까지 하루 종일...국민참여재판 취지 알리기 위해 개선점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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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 서울 동부지방법원에서 진행된 국민참여재판 자리 배치도
아시아투데이 김솔비 정지완 노태현 김기준 신상윤 아시아투데이 대학생 인턴기자 = 지난달 12일 서울 동부지방법원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특가죄)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제12 형사부(김영학 재판장 외 2명)의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은 피고인이 가한 협박에 보복성이 있었는지를 가리고, 이에 따라 적절한 양형을 구형하는 것이 주요 쟁점이었다. 아시아투데이 대학생 인턴기자 5명은 그림자 배심원으로서 이날 재판을 방청했다.

그림자 배심원 제도는 국민이 자유롭게 재판을 방청하고 양형에 대한 의견을 내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도입된 일종의 ‘모의 배심원 제도’다. 그림자 배심원들이 내린 형량은 실제 판결에 반영되지 않는다. 하지만 재판 방청 후 양형을 토의하는 절차는 실제 배심원들이 하는 것과 동일하다.

법원 홈페이지를 통해 선착순으로 접수해 그림자 배심원이 된다. 이들은 나이, 성별면에서 다양하다. 신청자들은 재판이 시작되기 전 별도의 장소에서 재판 참여 절차를 소개하는 오리엔테이션을 받는다. 배심원들의 판결 절차에 관한 영상을 관람하고, 판사로부터 사건 개요를 들은 후 사전에 질의응답하는 시간도 주어진다.

오전 11시경 제3호 법정에서 정식 배심원 9명과 그림자배심원 12명이 참여한 국민참여재판이 시작됐다. 그림자 배심원에게 주어진 자리는 일반 방청객과 같았다. ‘그림자’ 배심원은 말 그대로 재판 과정에 영향을 주지 않고 방청객을 가장해 지켜본다.

이날 재판의 사건 내용은 피고인이 내연관계에 있던 여성에게 지속적으로 협박을 가하고 재물을 손괴한 것이었다. 배심원 대표의 선서를 시작으로 재판장이 피고인에게 진술 거부권을 고지했다. 이후 피고인에 대한 인정신문이 진행됐으며 검사·피고인·변호인의 모두진술이 이어졌다. 재판의 쟁점은 피고인의 협박이 보복성을 띠는 ‘보복협박’에 해당하는지 ‘단순협박’에 해당하는지였다.

일반 재판에서와 달리 검찰 측과 피고인 측은 쟁점이 될 수 있는 법리들과 증거자료들을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PT)을 통해 배심원들이 알기 쉽게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T라는 압축적인 형태로 제시하다 보니 어려운 법리에 관한 설명이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설명이 장황해 이해도가 떨어지는 문제점도 있었다.

특히 변호인 측의 자료는 가독성이 떨어지고 간결하지 못했고, 배심원에 대해 감정적으로 호소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대한 증거를 간략히 정리하는 작업에는 분명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 중심의 사법제도 운영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위해서는 증거조사 절차 및 변론의 내용을 좀 더 쉽고 간결하게 도식화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판사는 예단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식 배심원 및 그림자 배심원들에게 재판의 기초가 되는 정보를 더 명확히 제공해야 할 것으로 보였다. 재판의 쟁점인 협박의 보복성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이 풍부하게 제시되지 않았고, 참고할 양형 인자 등에 관한 설명도 형식적인 것에 그쳤다. 좀 더 일상적이고 순화된 용어로 배심원들에게 증거법칙·판단 방법 등을 제공해 형식적 참여가 아닌 심도 있는 토론을 끌어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국민참여재판의 본래 취지에 부합할 것으로 보인다.

재판장은 1시간 30분 동안 휴정을 한 후 오후에 재판을 재개할 것임을 선언했다. 그림자 배심원들에게는 법원 구내식당의 식권이 주어졌다. 하지만 법원의 구조가 매우 복잡하고 안내판도 명확하지 않아 10분 동안 청사를 헤매기도 했다.
그림자 배심원들은 식사 후 오전 재판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오후 재개된 재판은 증인신문으로 시작됐다. 첫번째 증인으로 사건의 피해자가 입장했다. 그녀는 증인석에서 선서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피고인은 피해자의 등장에도 동요 없이 앉은 채로 땅바닥만을 주시했다. 피해자도 피고인 쪽을 외면하면서 정면만을 주시했다.

먼저 검찰 측의 증인 신문이 시작됐다. 피해자는 검사의 질문에 대답하는 중 동일한 얘기를 반복하고 손을 떠는 등의 증세를 보이며 상당히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신문을 진행하는 검사는 피해자가 질문의 요지와는 전혀 다른 얘기를 하더라도 대답을 끝까지 들었다.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는 차근히 설명해주는 등 차분하게 증인 신문을 진행해 나갔다. 이어 변호인의 신문이 시작됐고, 배심원들이 보다 사건의 정황을 다각도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질문을 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어 사건의 목격자에 대한 증인 신문이 계속됐다. 검사는 제3자 입장에서 사건의 정황을 잘 알 수 있는 목격자에게 질문해 배심원들이 피고의 행동에 보복 목적이 있었다는 것으로 판단하도록 이끄는 방향으로 나가는 듯 했다.

이에 변호인은 증인을 통해 피고의 범죄 사실만이 아니라 평소 행동과 성격, 그리고 피해자 직업의 특수성을 드러내면서 피고의 행동에 보복성이 전혀 없었음을 강조하려고 했다. 증인 2명에 대한 신문은 장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증인심문에 이어 최종진술이 있었고, 이후 선고 전 평의 및 평결절차가 진행됐다. 배심원단이 논의를 진행하는 동안 그림자 배심원단도 법원 내 다른 회의실로 옮겨 모의 평의 및 평결을 했다. 투표로 선출된 그림자 배심원단 중 한 명이 논의를 이끌어가면서 각자 유·무죄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날카로운 토론 끝에 다수결로 유죄가 결정됐고, 법원에서 제공한 양형 기준에 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양형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양형에는 감경 요소와 가중 요소를 고려됐고, 징역 1년부터 2년 6개월까지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모의 평의 및 평결이 끝나고, 선고를 듣기 위해 다시 법정으로 이동했다. 피고인에 대한 징역 1년 6개월형 선고로 하루 종일 이어졌던 재판이 끝났다.

그림자 배심원은 법정에서 ‘그림자’ 역할을 하면서 국민참여재판 절차를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국민참여재판에 그림자 배심원이 참여하고 있다는 것은 재판부·검사·피고인 모두 인지하고 있었다. 법정의 경위가 그림자 배심원의 자리를 지정해주기도 했고, 재판장은 휴정 후 그림자 배심원들이 모두 배석했는지 확인하기도 했다. 일반 사건의 경우 방청 인원이 많지 않다. 특히 한 사건에 대한 심리가 한 법정에서 하루 종일 진행되는 국민참여재판의 경우 방청하는 인원 대부분이 그림자 배심원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림자 배심원 제도 도입의 취지는 처음 국민참여재판이 시행될 당시 배심원 제도에 익숙하지 못한 국민에게 국민참여재판을 알리고 재판 절차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제도는 이러한 취지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림자 배심원은 대부분 기존 경험자였다. 법학대학 재학생들이나 로스쿨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이 제도가 시행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사법부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일반 국민에게 국민참여재판을 널리 알린다는 취지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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