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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뭐볼까] ‘설행_눈길을 걷다’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감독의 따뜻한 고집

[영화뭐볼까] ‘설행_눈길을 걷다’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감독의 따뜻한 고집

기사승인 2016. 03. 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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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설행_눈길을 걷다' 리뷰
[영화뭐볼까] '설행_눈길을 걷다'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감독의 따뜻한 고집

 "이번엔 정말 잘해야 돼." 다 큰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당부에 왠지 모를 처연함이 서린다. 하지만 아들 정우(김태훈)는 무심하다.


어머니와 헤어진 정우는 알코올 중독 치료를 위해 수녀들이 운영하는 산 중 요양원 '테레사의 집'으로 향한다. 그는 사실 어머니의 당부가 자리한 그곳에 오래 머무를 생각이 없다. 여분의 옷 대신 술을 숨겨 온 것도 그 때문이다. 치료보단 휴식. 그저 며칠 쉬다 가면 그만이니까. 

[영화뭐볼까] '설행_눈길을 걷다'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감독의 따뜻한 고집

영화 '청포도 사탕 : 17년 전의 약속'을 통해 여성의 심리와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낸 김희정 감독은 신작 '설행_눈길을 걷다'(이하 '설행')에서 남성 정우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속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이를 위해 김 감독은 영화의 서사와 형식을 알코올 중독에 빠진 정우의 의식 세계와 동일시했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장면들은 정우가 겪는 섬망 증세를 나타낸다. 이는 정우의 몸 속에 취기(?)가 빠져나가면서 더 잦아지는데, 이 때문에 관객들은 영화의 전반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김 감독의 이러한 연출 방식은 정우에 대한 이해와 공감, 온전한 치유를 목적으로 한다. 그는 현실 세계의 관객들이 느낄 불편함을 차치하고 영화라는 가상 세계 안의 인물에 오롯이 집중하며 그의 상처를 보듬는데 충실했다. 이 고집스럽고도 지혜로운 연출법은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를 거뒀다. 

좋은 시도였음이 분명하다. 이는 절반의 성공이다. 영화의 서사와 형식이 인물의 의식 세계를 대체한다는 것은 참으로 독특하고 용기 있는 연출이다. 다만 이 때문에 뭉개진 감정선과 분절된 이야기는 절반의 실패다. 퍼즐은 단 한 조각만 없어도 완성될 수 없다. 관객들 중에는 그 한 조각에 집착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고의로 불완전하며 불친절하다.  

[영화뭐볼까] '설행_눈길을 걷다'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감독의 따뜻한 고집

영화는 정우가 어떤 이유로 알코올 중독에 빠졌는지를 설명하기보단 그가 왜 자꾸 술을 찾는지, 술을 마셔서라도 잊고 싶은 기억이 무엇인지에 대해 귀띔한다. 이를 위해 특별한 느낌의 수녀 마리아(박소담)를 그의 곁에 둔다. 

마리아 역시 정우처럼 아픈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영화는 이 둘이 각각의 상처를 서로에게 내보이며 이를 통해 교감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담백한 톤으로 그려낸다. 다만 마리아의 과거 혹은 상처가 정우의 그것과 공감될 수 있는 성질인지는 의문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정우의 혼란스러운 의식 흐름에 따라 마리아의 이야기가 뚝뚝 끊어져 표현됐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하얀 눈밭을 울면서 걸어가는 남자의 이미지에서 '설행'의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한다. 어린 시절 정우는 어머니와 함께 눈 덮인 길을 걷는다. 하지만 성인이 된 그는 혼자다. 똑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두 정우의 표정과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정우의 마지막 설행에 차분히 동행한다면 이 영화가 주는 묵직한 감동과 여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김태훈·박소담·최무성 주연의 영화 '설행'은 '열세살 수아' '청포도 사탕'을 만든 김희정 감독의 신작으로 3일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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