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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 고조선연구소, ‘일본 식민사관’ 가야사 왜곡 밝혔다...사료 확인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일본 식민사관’ 가야사 왜곡 밝혔다...사료 확인

기사승인 2017. 07. 17.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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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쇼인을 제신으로 하는 쇼인신사/제공=인하대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가 사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식민사관이 일본 황국사관 학자들의 가야사 왜곡에서 비롯됐음을 입증하는 사료를 현지에서 확인했다.

17일 인하대에 따르면 고조선연구소는 지난 3~5일 일본 히로시마시, 야마구치(山口)현 하기(萩)시, 시모노세키시에서 조선총독부 관변사학의 뿌리를 추적하는 현지조사를 실시했다.

히로시마는 동학혁명 때 청일전쟁의 총사령부인 대본영(大本營)이 위치했던 곳이고 시모노세키시는 청국의 패배 후 지난 1895년 이토 히루부미와 리홍장이 강화조약을 체결한 도시다.

하기시는 야마구치현의 북쪽 동해에 접한 시골 도시인데 명치유신의 핵심 지도자들을 배출한 지역으로 현 일본 아베총리를 지지하는 우익세력의 정신적 고향이기도 하다.

이번 조사의 목적은 한국사를 반도사로 축소시키고 정체성론, 타율성론 등 자포자기적인 자의식을 한민족에게 이식하려 했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역사관의 기원을 추적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11명의 연구소 박사급 전임연구원, 김연성 소장과 복기대 인하대 교수는 유적지, 박물관, 사료실 등을 집중적으로 살폈다. 이번 조사에는 특별히 초대 통감시절 한국 유물과 사서를 무단 반출한 것으로 알려진 이토 히루부미의 역사관 계보를 추적하는데 집중했다.

현지에서 수집한 사료를 열흘간 정밀 분석한 결과, 일제 관변사학의 정치적 기원이 되는 인물로 요시다 쇼인(吉田松陰)과 이토 히루부미가 부각됐다.

하기시 쇼인신사의 박물관인 지성관(至誠館), 요시다 쇼인 역사관과 이토 히루부미 자료실에서 공개한 사료 검토를 통해 기존에 명확하지 않았던 일제 식민사학 계보가 밝혀졌다.

특히 조사단은 지성관에서 ‘일본은 세계사에서 유일하게 만세일계의 황통을 지켜온 나라이므로 일등국이 돼야 한다’는 요시다의 친필 편지 내용을 발견했다.

요시다 쇼인이 우월주의 신국(神國) 역사관의 중심인 미토학파(水戶學派)를 계승한 사실도 구체적으로 실증하는 다른 사료도 다수 확인했다.

요시다 쇼인은 1830년 출생해 대대로 군사학 사범을 하던 가업을 이어 11살의 어린 나이에 영주로부터 군사학 교관으로서 재능을 인정받았다. 병학(군사학)에서 시작해 국수주의 미토학파의 영향을 받아 고대사서에 심취한 요시다 쇼인이 주목한 것이 일본서기와 신황정통기의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이었다.

군사학에서 역사왜곡은 정보심리전의 일환으로서 종종 자행되는 작전인데 요시다 쇼인의 역사관이 제자 이토 히루부미를 통해 초대 테라우치총독에게 계승됐고 테라우치가 반출한 사료 일부는 아직도 아마구치현립대학에 남아 있다.

지금도 일본 우익사학자들이 신봉하는 신공황후의 신라정벌 기사에 의하면, 서기 369년 이후 일본의 식민통치기관이 한반도 남부를 200년간이나 지배했다.

한국 학계 일부에서는 가야가 임나라는 일본 학계 주장을 수정한 학설로서 임나 외교사절설을 인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내 다른 학자들과 북한 고대사학계는 같은 목소리로 임나는 대마도이거나 규슈 북부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인하대 연구팀은 요시다 쇼인이 한반도를 식민지배하자는 정한론(征韓論)에 이어 만주와 대만 등으로 팽창을 꿈꾼 출발점이 다름 아닌 왜곡된 임나일본부설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소장 김연성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 복원에 관심을 표명한 시점에 이번 조사를 실시해 더욱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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