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사설] 한국 현대정치의 거목, 김종필 전 총리의 명복을 빈다

[사설] 한국 현대정치의 거목, 김종필 전 총리의 명복을 빈다

기사승인 2018. 06. 24. 17:51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한국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큰 족적을 남긴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그를 빼고는 우리나라 현대 정치사를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 정치·경제적 격변의 중심인물이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들에게 맡기더라도 그가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이룩한 우리 현대정치사의 주역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시아투데이는 우리 현대정치의 거목 김종필 전 총리의 별세를 애도하고 명복을 빈다.

영욕이 함께 했던 그의 인생 역정을 간략하게나마 돌아보는 것도 그를 추모하고 그가 남긴 유산을 정리해보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의 별세로 3김(金)시대가 종언을 고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만큼 그는 1961년 5·16의 주역 가운데 한사람으로 소위 ‘개발독재’로 불린 경제개발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소위 민주화 이후의 시대에서도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3김(金)으로 불리면서 서로 경쟁과 협력을 하면서 우리나라 정치를 주도했다.

“내가 박정희 장군을 모시고 5·16을 기획했다”고 당당하게 밝혔던 그는 주지하듯이 1963년 한·일국교정상화 특사로 대일청구권을 받아내며 한·일협정을 매듭짓기도 했다. 이를 두고 그는 헐값 청구권으로 대일 굴욕외교를 했다는 맹렬한 비판을 받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도 우리는 이런 대일청구권을 비롯해서 해외저축을 동원해서 과감하게 건설한 포항제철과 경부고속도로 등이 우리나라의 획기적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2인자’로 군림했던 그는 1980년대 신군부가 등장하면서 야인생활을 해야 했지만, 1987년 소위 ‘민주화’ 시대 이후 3김 시대를 이끄는 정치지도자로 부활해 양김(金)을 모두 대통령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는 13대 총선 이후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을 탄생시켜 1992년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그 후 1997년에는 일반의 예상을 깬 ‘DJP연합’으로 ‘김대중 대통령, 김종필 총리’라는 공동정권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5·16의 주역, 충청권의 맹주, 제2인자, 킹 메이커 등으로 불리며 격변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노(老) 정객은 이제 영면 속에 들었다. 정치경제적 격변기 속에서 자신과 연합할 세력을 바꾸기도 했고 그래서 지지뿐만 아니라 비판도 받았지만, 국민들이 기억하는 그는 5·16 개발독재 시대의 주역이면서 동시에 필생의 신념으로 내각제 실현을 위해 애써왔으며 확고한 국가관과 안보관으로 보수의 가치를 지켜온 정치거목일 것이다. 그의 평화로운 영면을 빈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