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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안전 사각지대 고시원, 7명 사망 참사불러…정부·지자체 화재예방 시스템 ‘실효성’ 논란 재점화

화재안전 사각지대 고시원, 7명 사망 참사불러…정부·지자체 화재예방 시스템 ‘실효성’ 논란 재점화

기사승인 2018. 11. 0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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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 건물, 2009년 법개정 전 지어진 건물…간이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없어
소방당국 다중이용업소소방필증 교부, 5월 소방안전점검 '이상 무'
건축대장에 '기타사무소'로 등록…지자체 "건축대장상 사각지대"
종로 고시원 화재현장
9일 오전 화재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관수동 한 고시원에서 경찰과 소방 관계자들이 화재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정재훈 기자
“숨조차 쉬기 힘든 좁은 공간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자식같이 생각하고 시설관리를 해 달라”.

지난 4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국가안전대진단 일환으로 서울 노량진에 위치한 한 고시원을 방문해 소방안전점검을 실시하면서 고시원 건물주에게 당부했던 말이다.

당시 김 장관이 고시원 소방안전점검에 직접 참여한 것은 고시원이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는 시설이라는 점에서 화재 취약시설로 인식하고, 각 지방자치단체와 소방당국이 고시원 화재예방을 위한 노력에 힘쓸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9일 새벽 서울 종로구 관수동 청계천 인근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화재사고 위험의 사각지대로 지목됐던 고시원 안전관리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김 장관이 4월 현장을 방문해 강조했던 고시원 화재 안전점검이 지자체 등 현장에서는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 전망이다.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화재예방특별대책이 마련되는 등 정부차원의 화재예방 노력에도 매년 50건씩 발생하는 고시원 화재는 여전히 정부 화재 예방정책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이는 고시원의 특성상 시설의 열악한 환경이 원이이기도 하지만 이를 관리 감독하는 행안부·지자체·소방청의 관리 시스템이 실효성이 떨어지는데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행안부에 따르면 올해 국가안전대진단 대상은 34만6346개소로, 이중 11만5438개소에 대해 공무원과 민간전문가들이 함께 합동점검을 실시했다. 이중 과태료 부가 등 행정조치를 받은 곳은 4890개소(1232개소 과태료 부과)였다.

과태료 부과를 받은 곳은 △찜질방(104개소) △요양시설 및 요양병원(93개소) △숙박시설(68개소) 등으로, 대부분 화재경보기 또는 스프링클러 자동 작동스위치를 꺼놓거나 비상구 폐쇄 등 소방시설 관리상태 미흡이 문제로 지적됐다.

[포토]고시원 화재 현장 들어가는 소방관계자
9일 오전 화재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관수동 한 고시원에서 소방 관계자가 화재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건물로 들어가고 있다./정재훈 기자
하지만 행안부와 소방청은 소방설비 관리 문제가 가장 많이 지적된 찜질방에 대한 화재안전조사를 실시한 반면 고시원에 대한 적극적인 점검활동은 진행하지 않았다.

국가안전대진단을 총괄하는 행안부 입장에서도 이런 사각지대를 찾아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행안부 관계자는 “국가안전대진단은 각 지자체 등이 점검 대상을 지정, 점검 결과를 행안부로 보내오면 이를 수합해 취약한 부분에 대한 특별점검을 지시하는 등의 방식으로 이뤄진다”며 “각 지자체에서 지정하지 않은 시설의 안전상황을 중앙정부에서 파악하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날 고시원 화재와 같이 국가안전대진단에서 빠져 있는 건축물에서의 화재가 최근 들어 빈번히 발생하면서 국가안전대진단의 실효성이 다시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안전사각지대에 대한 관리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은 이유는 국가안전대진단이 건축법·다중이용업소특별법 등에 적용을 받는 건축물에 한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서울시가 실시한 국가안전대진단 대상은 4576개소로 이중 고시원은 212곳이었다. 이들 고시원 중 화재설비 문제가 지적된 곳은 8곳(용산구 1, 영등포구 2, 성북구 1, 은평구 2, 강남구 1, 도봉구 1)에 그쳤다. 이날 화재가 발생한 종로구의 경우 문제가 발견돼 시정조치가 진행된 고시원은 없었다. 단순히 점검 결과로만 보면 서울에 있는 고시원 10곳 중 0.04곳에서만 안전문제가 나타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상황점검 (1) (1)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9일 오전 5시 께 서울 종로구 관수동 청계천 수표교 인근 국일고시원에서 발생한 화재현장을 찾아 상황점검을 하고 있다./제공 = 행정안전부
현장을 실제로 점검하는 지자체 등에서는 관련 법들이 제정되기 전부터 운영되고 있는 노후화된 고시원은 조사대상에서 포함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더욱이 건축물 등록상에는 일반 사무실이나 가정주택으로 등록을 해놓고 고시원을 운영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건축물 대장상 고시원으로 등록되지 않아 안전점검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이날 화재가 발생한 고시원이 있는 건물은 1983년에 지어져 건축대장에는 고시원이 아닌 ‘기타 사무소’로 등록된 상태다.

화재가 난 고시원 건물은 2009년 법이 마련되기 전에 지어진 건축물이었기 때문에 소방서에 신고만 하면 되는 사례였다. 이때문에 이 고시원 건물은 법에 적용받기 전, 소방당국에서 다중이용업소소방필증을 교부받았다. 간이스프링클러 조차 설치되지 않은 것도 현행 법에 적용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해당 건물은 기준상 간이스프링클러 설치를 하지 않아도 되는 건물이었다”고 설명했다.

2009년 개정된 다중이용업소법특별법에는 근린생활시설의 경우 사용부문 바닥면적 합계가 1000㎡ 이상인 경우에 건물 전층에 간이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한다.

종로구 관계자는 “국가안전대진단의 경우 시설물을 직접관리하는 건축과에서 검사시설로 등록한 경우에만 점검부서에서 점검을 실시한다”며 “이번 고시원 사고의 경우 건축법 등 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2009년 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고시원들은) 그 전에 지어진 건축물이 대부분이다. 이런 것은 그전까지는 소방서에 신고만 하면 됐었다”며 “이런 노후건물들은 건축물 대장에 사무소 등으로 돼 있어 고시원으로 등록이 안된 곳이 대부분이고, 노후화된 건물은 지을 당시 등록 인허가 시스템 조차 없을 때 완공된 경우도 있어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화재로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는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화재는 이날 새벽 5시께 고시원 3층에서 시작됐고, 소방당국은 100여명의 인원과 30대 장비를 투입해 오전 7시에 화재를 완전진화 했다.

1983년 지어진 이 건물은 연면적 614.3㎡(185.8평)로 1층 음식점, 2~3층·옥탑방은 고시원으로 운영돼 왔다. 화재가 발생한 3층은 140.93㎡(42.6평)에 27개의 방이 있었고, 사고 당시 3층과 옥탑방에 27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날 사상자 대부분은 50~60대 생계형 일용직 근로자로 알려졌다.

종로 고시원 화재현장
9일 오전 화재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관수동 한 고시원에서 경찰과 소방 관계자들이 화재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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