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송곳질문 쏟아진 삼성전자 주총, 동문서답 하다 혼난 한종희 부회장

제54기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 개최
송곳 질문에 땀 뻘뻘 흘린 삼성전자
똑똑한 주주들 눈높이 만족시켜야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이 15일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4기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제공=삼성전자

"좀 전의 답변은 명백한 동문서답이었다. 내부회계 관리제도와 관련해 구체적 확인 항목을 물어보셨는데 여기에 답변하지 않으셨다. 다른 질문에 대해서도 동문서답 많이 하셨는데 의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냐?"

15일 경기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54기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 현장에서 한 주주가 한종희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부문 부회장에게 물었다. 한 부회장이 이전 질문이었던 내부회계 관리제도의 구체적 항목에 대해 제대로 답변하지 않자 다음 주주가 이를 지적한 것이다. 주주총회 내내 경영진의 알맹이 없는 답변에 지쳐 있던 주주들은 질문이 끝나자 큰 박수를 보냈다.

한 부회장은 "만족하실만한 답변이 아니었다면 사과드리겠다. 당장 질문에 답변드리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양해를 바란다"며 "주주총회 후 회사로 찾아오시면 답변드리겠다"고 애프터서비스(AS)를 약속했다.

제54기 삼성전자 주주총회 현장/제공=삼성전자

이날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는 경영현황 설명, 의안 표결 등이 진행됐다. 한 부회장은 DX부문의 경영 현황을, 이정배 메모리사업부장 사장은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의 경영현황을 주주들에게 소개하고 질의응답에 응했다. 주주총회 의안은 재무제표 승인, 사내이사 한종희 선임, 이사 보수한도 승인 등이 상정됐고 모두 통과됐다.

경영현황과 각 의안마다 진행된 질의응답에서는 송곳 질문이 쏟아졌다. 삼성전자에 대해 깊이 공부한 주주들이 애플페이 출시에 대한 대응 전략, 로봇 신제품 출시 계획, 신사업, S급 인재 정착을 위한 노력, 메모리반도체 업황 회복, 주주환원 정책 등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노태문 모바일경험(MX)사업부장 사장은 "삼성페이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온라인 결제와 편의 기능을 확대해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를 늘리겠다"고 말했다. 한 부회장은 "사용자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로봇을 선보이려 한다. 로봇사업부에서 올해부터 걷기 운동용 웨어러블 로봇 등 여러 제품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주들이 궁금해 한 주주환원 정책 확대, 최근의 주가 하락에 대한 대응에 대해서는 로봇과 같은 답변을 내놨다. "다각도로 고민해보겠다" 혹은 "회사의 주주환원 정책에 따라 정기배당을 지급하고 잔여 재원이 발생하면 추가 환원하겠다"라는 정해진 답변이 반복되자 주주들의 지적도 나왔다. 한 남성 주주는 "주주들을 호구로 보느냐. 이렇게 답변해놓고 사내이사로 선임되길 바라느냐"고 강하게 질타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주주총회 현장을 2년 연속 찾은 임준열 군(왼쪽)과 아버지 임모씨/사진=박지은 기자 @Ji00516

이정배 사장도 동문서답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이 사장은 'ESG 정책에 대해 구체적 내용이 알고싶다. 국내는 재생에너지 확보가 어려운데 이를 어떻게 극복하려 하느냐'는 질문에 "글로벌 탄소감축에 기여하고자 저전력 제품을 개발하고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하려 한다"는 다소 원론적 답변을 내놨다. 미국, 중국과 달리 재생에너지의 양이 부족한 국내 실정에 삼성전자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느냐를 묻는 질문이었지만 전혀 충족되지 않는 답변을 내놓은 셈이다.

이날 주총에서 2개 이상의 질문을 던진 30대 직장인 이상원 씨는 "주주들이 대표이사로부터 경영 성과와 현안을 보고받는 자리는 1년에 한 번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가 유일한데 좀 더 구체적인 답변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이날 주주총회장에 '갤럭시S23' 포토존, 에코프렌즈 팝업스토어, 주주들이 남기는 메시지 나무, 에코 패키지 체험존 등을 운영했다. 삼성전자 주주총회를 온 가족이 함께 찾는 주주들이 적지 않아서다. 주주들은 함께 사진을 찍으며 주주총회 현장을 축제처럼 즐기기도 했다. 갤럭시S23으로 사진을 찍는 '인생네컷'은 긴 줄이 늘어서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주주들에게 사진을 꾸미고 보관할 수 있도록 기념 사진첩 등도 선물했다.

'삼성전자 주총의 꽃'인 부모님과 함께 온 어린이 주주들도 눈에 띄었다. 이모와 함께 주총장을 찾은 10살 김주원 군은 "요즘 삼성전자 주가가 떨어져서 속상하다"고 말했다. 김 군의 이모는 "용돈처럼 엄마가 사주는 주식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다"며 "평소에 삼성전자 주식을 모아서 집을 사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고 전했다. 2년 연속 삼성전자 주주총회 현장에서 만난 10살 임준열 군은 "배당을 좀 더 늘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모와 함께 삼성전자 주주총회를 찾은 김주원 군/사진=박지은 기자 @Ji00516

자녀의 경제 교육 차원에서 두 아이와 함께 주주총회를 찾은 부모님들도 적지 않았다. 경북 경주에서 온 12살 조승우 군은 "아빠가 삼성전자 주식을 사줬고 같이 가자고해서 왔다"며 "스마트폰에 관심이 많아 삼성전자 주주총회에 꼭 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용인에서 온 13살 한겨레 군은 "실시간으로 주주총회장에서 답변을 주고 받는 것이 신기했다"며 "삼성이 잘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호구로 본다고 비판한 분이 계셔서 듣기 불편했다"고 했다.

한편 삼성전자 주주총회에는 이날 주주 600여 명, 기관투자자, 경영진이 참석했다. 한 부회장은 의장 인사말을 통해 "지난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삼성전자는 많은 분들의 노력과 격려에 힘입어 처음으로 매출 300조원을 넘어서며 2년 연속 사상 최대 매출을 경신했다"며 임직원과 협력사, 주주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삼성전자에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는 주주들/제공=삼성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