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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소외] ⑤대한민국 ‘무변촌(無辯村)’ 53곳…日은 2008년부터 ‘제로’

[소송 소외] ⑤대한민국 ‘무변촌(無辯村)’ 53곳…日은 2008년부터 ‘제로’

기사승인 2023. 09. 18.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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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수도권에만 83%…정부대책 미비
법무부 '마을변호사' 제도는 원격상담 위주
日, 1990년대부터 변호사단체·국가 나서
'파견 제도' 제창, 사쿠라이 변호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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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 전 세계를 관통하는 이 말을 좀처럼 실현하기 어려운 곳이 있다. 선임할 변호사를 만날 수 없는 '무변촌(無辯村)'이다. 법적 분쟁은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고, 모든 국민은 공평하게 사법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지만 도시에서 멀고, 낙후된 지역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소송에서 소외되고 있다. 아시아투데이는 한국의 '무변촌' 문제에 대해 점검하고, 1996년 해결에 나서 2008년 '무변촌 제로(ZERO)'를 달성한 일본의 사례를 현장 취재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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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변호사 2만8276명이 있지만, 약 75%인 2만1310명은 서울에서 활동 중이다. 수도권까지 넓히면 83%에 달한다. 이와 반대로 변호사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마을인 '무변촌'은 53곳이나 존재한다.

18일 아시아투데이가 대한변호사협회(변협) 자료를 분석한 결과, 개업한 변호사가 한 명도 없거나 모두 휴업 상태인 시·군은 총 53곳으로 △경기 2곳 △인천 2곳 △강원 8곳 △충북 4곳 △충남 5곳 △전북 6곳 △전남 12곳 △경북 8곳 △경남 6곳이었다. 이조차 변호사가 1명만 개업한 곳과, 구·동 등 세부적인 지역은 제외한 수치여서 실질적으로 사법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지역은 더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소송소외 무변촌
◇ 2년 연속 '무변촌 ZERO' 달성?…현실은 달랐다
이처럼 사법접근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하지만 정부 대책은 수동적이다. 법무부는 2013년부터 변협·행정안전부와 업무협약을 맺고 '마을변호사' 제도를 시행 중이다. 변호사가 각 지역 읍·면·동을 맡아 법률상담을 지원하는 것으로, 법무부는 지난 2020년 전국 517개 모든 무변촌에 마을변호사를 위촉해 '무변촌 제로'를 2년 연속 달성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마을변호사는 담당 지역에 '상주'하지 않는다. 전화·팩스·이메일 등 비대면 원격상담이 원칙이며, 대면상담은 희망자 수와 마을변호사의 일정 등을 조정해야만 가능여부가 결정된다. 또 법률상담에만 그치며 소송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소송 지원은 대한법률구조공단(공단)에서 주로 진행된다. 공단의 경우 무변촌 해소를 위해 2009년부터 각 지역 시·군 법원 소재지에 지소(지역의 업무를 처리하는 곳)를 설치해 왔다. 시·군 법원은 가장 작은 단위의 법원으로 소액심판, 협의이혼, 화해·독촉 등 사건을 다룬다.

공단은 전국 100개 설치를 목표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매년 15개씩 지소를 세워 67개를 달성했다. 그러나 2012년 이후 10년간 설치된 지소는 8개로 현재 75개뿐이다. 변호사가 상주하는 곳도 이 중 용인·김해·익산 3곳으로 극히 드물다. 변호사가 출장식으로 방문하는 곳도 파주·광주·구미가 전부다.

공단 관계자는 "계속 설립하려 했으나 예산이 충분히 지원되지 않아 추진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도 "국회나 정부 등에서 감사가 올 때마다 '비효율성'을 지적한다"며 "실적이 다른 출장소 등에 비해 너무 저조해 설치 확대를 이어가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적이 있을 때마다 '법률에 소외된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선 효율성만 따질 수는 없다'고 취지를 강조했다"면서도 "하지만 사업 시행 이후 약 10년간의 실적을 보고 '비용 대비 비효율적'이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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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법률구조공단은 무변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동법률상담 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아시아투데이DB
◇ 日 10년 만에 '무변촌 해소'…젋은 변호사 파견 지원
일본은 일찍부터 무변촌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변호사단체와 국가가 적극 나서 본격적인 사업 시작 후 약 10년 만에 무변촌을 해소했다.

일본의 변협격인 일본변호사연합회(일변련)는 1996년 '변호사 과소 지역에 법률 상담체계 확립 선언'인 이른바 '나고야 선언'을 했다. 이후 무변촌 해결을 긴급 현안으로 정해, 각지 법률 상담 센터를 지원하거나 공설 사무소를 설치했다. 이에 선언 당시는 '변호사 제로원 지역(법원 관할 내 변호사가 한 명 있거나 없는 지역)'이 78개소였으나, 2008년엔 변호사 제로 지역이 사라지고 2011년에는 변호사 원(ONE) 지역마저 해결했다.

특히 당시 만들어져 아직까지 주효하게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 젊은 변호사를 무변촌으로 파견 보내는 '일본형 공설 변호인 사무소' 제도다. 저연차 젊은 변호사들 중 지원을 받아 1년간 법률 사무소에서 교육을 한 뒤, 2~3년 정도 무변촌에 파견을 보내는 내용이다.

파견 간 변호사는 법률사무소 개소비 등을 지원받는다. 또 연봉 720만엔(약 6470만원) 상당을 보장받는다. 구체적으로 해당 연봉액에 못 미치는 수입을 벌었을 경우, 부족한 부분만큼 지원해 주는 것이다. 임기가 끝난 후 해당 지역에서 계속 활동할 수도 있고, 다시 법률 사무소로 돌아올 수도 있다.

일변련은 '해바라기 기금'으로 해당 제도를 운영 중이다. 일본사법지원센터(대한법률구조공단 격)도 '법테라스'의 '스텝 변호사'라는 제도로 비슷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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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이 미쓰마사(櫻井 光政) 변호사가 지난 9월 6일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임상혁 기자
◇ "사람이 있는 곳에는 변호사가 있어야"
아시아투데이는 해당 제도를 처음 만든 사쿠라이 미쓰마사(櫻井 光政) 변호사를 지난 6일 도쿄 시부야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쿠라이 변호사의 구상 및 실현 이후 일변련과 일본사법지원센터도 해당 제도를 따라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사쿠라이 변호사는 일변련 종합법률지원본부 스텝부회 부회장과 제2도쿄변호사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사쿠라이 변호사는 "우선 '왜 변호사들이 무변촌에 가지 않을까?'를 생각했다. 당시 10년차 정도였던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니, 가정도 있었고 아이들도 아직 어렸다. 경력이 어느 정도 생긴 변호사는 무변촌에 가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젊은 변호사가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아무런 훈련 없이 무작정 가 혼자서 사건을 맡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어느 정도 교육이 필요하다 생각했다"며 "또 아무런 연고 없는 곳에 가는 것은 그 누구라도 싫어한다. 그래서 임기제도로 해, 파견 갔다가 돌아올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사쿠라이 변호사는 "계산을 해보니 충분히 지원 가능한 금액이었다"며 "일변련에 제안하니, '해바라기 기금'이 됐고, '법테라스'가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처음 구상할 때부터 국가가 시행할 것이라 예상하지는 않았지만, 결국엔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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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이 변호사가 일본의 무변촌 관련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상혁 기자
사쿠라이 변호사는 "법률상담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변호사가 근처에 있어야만 찾을 수 있는 사건들이 있다"며 '상주'를 강조했다. 가정폭력, 빚문제 등 변호사를 직접 마주해야만 털어놓을 수 있는 사건들이 있는데, 비대면 상담으로는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현재 그는 무변촌에 갈 변호사를 육성하는 데 힘쓰는 중이다. 사쿠라이 변호사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이라는 성경 구절이 있다. 온전히 달려있는 밀은 딱딱한 그대로지만, 떨어진 밀은 싹을 틔워 수많은 밀을 만들어 낸다"며 "내년에 70세지만 앞으로도 많은 후배들을 길러내고 싶다"고 전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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