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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모독죄 개정 시도 위헌”…개혁·진보와 더 멀어진 태국

“왕실모독죄 개정 시도 위헌”…개혁·진보와 더 멀어진 태국

기사승인 2024. 02. 0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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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친군부성향의 전직 상원의원이 태국 헌법재판소에서 전진당의 해산을 청원하자 시민활동가들이 '형법112조(왕실모독죄)가 개정되거나 폐지돼야 하느냐'를 묻는 앙케이트 결과지와 함께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카오솟 캡쳐
"왕실모독죄 개정을 추진하던 전진당(MFP)이 헌법을 어겼다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은 앞으로 태국에선 군주제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지난달 31일 태국 헌법재판소가 제1당 전진당과 피타 림짜른랏 전(前)대표에게 내린 판결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탐마삿 대학교 소속 학생 활동가 마리(가명)씨는 단호하게 답했다. 그는 "최근 정치·군주제 개혁을 요구하던 국회의원·활동가들이 잇따라 징역형을 선고받은 데 이어 '의회정치'를 통한 개혁 시도마저 위헌으로 몰아버렸다. 우리 같은 젊은 세대는 몸을 사리거나 국가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거나 여러모로 좌절스러울 뿐"이라며 씁쓸함을 드러냈다.

탐마삿 대학은 태국의 명문대학이자 민주화의 성지로 꼽히는 곳이다. 최근 몇 년간 태국에선 탐마삿 시위연합전선(UFTD) 등 마리씨와 같은 대학생과 젊은 세대가 주축이 된 정치·군주제 개혁 시위가 꾸준히 열렸다. 이에 더해 지난해 5월 치러진 태국 총선에서 군주제 개혁 등 진보적인 의제를 내건 전진당이 '돌풍'을 일으키며 제1당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전진당은 결과적으로 단독정부 구성은 물론 연립정부 구성에도 실패했다. 피타 전 대표가 미디어회사 지분을 보유해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혐의, 전진당과 피타 전 대표가 내건 왕실모독죄 개정 공약이 체제를 전복하려는 시도로 헌법을 위반한 것이란 혐의로 헌법재판소에 섰다. 태국 헌재는 지난달 24일 피타 전 대표의 선거법 위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지만 같은달 31일엔 '왕실모독죄'로 불리는 형법 112조를 개정하려는 것은 "국왕을 국가 원수로 하는 민주적 정치체제를 전복하려는 것"이라며 위헌 판결을 내렸다.

헌재는 위헌 판결과 함께 왕실모독죄 개혁을 추진하려는 모든 행동과 발언을 즉각 중단할 것을 명령했다. 피타 전 대표의 의원직 박탈이나 전진당에 대한 당 해산 명령 등 '처벌'을 내놓진 않았다. 하지만 태국 사회 안팎에선 헌재의 이번 판결은 사실상 왕실모독죄 개정 등 향후 군주제 개혁에 대한 시도를 원천 차단해버린 것이란 여론이 지배적이다. 군주(국왕)의 명예가 곧 국가의 명예고, 국왕과 왕실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시도는 곧 국가 안보에 대한 범죄이자 민주적 정치체제의 전복이라 규정한 헌재의 이번 판결은 향후 태국의 군주제 개혁에 대한 족쇄로 남을 것이란 분석이다.

헌재의 이번 판결 직후 친군부·왕실옹호·보수 세력에선 "전진당 해산을 청원할 것"이라며 즉각적인 움직임에 나섰다. 태국 정당법에 따르면 '국민이 군주제를 전복하기 위해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을 규정한 헌법 제49조를 위반한 것으로 판결된 정당에 대해선 선거관리위원회가 당 해산과 당 간부들의 10년 출마 금지를 헌재에 청원할 수 있다.

피타 전 대표도 의원직을 지키고 전진당도 해산 위기에선 벗어났으나 향후 태국 사회의 갈등과 균열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1일 친군부 성향의 전직 상원의원이 전진당의 해산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한 헌법재판소에선 동시에 두 시민활동가가 "형법 112조가 수정되거나 폐지돼야 한다고 생각하냐?"를 물은 앙케이트 결과지를 들고 시위를 벌이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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