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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종 칼럼] 변모하는 중동, 멈춰 선 한국

[정기종 칼럼] 변모하는 중동, 멈춰 선 한국

기사승인 2024. 02. 05.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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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21세기 신지정학 시대에 들어 세계 주요국들의 외교활동은 더욱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과거 국제무대에서 소극적이던 아랍국가들 역시 시대적 변화에 맞춰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인다. 지난해 12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2030년 리야드 엑스포 유치에 성공했다. 유치 전략과 득표활동은 외교적 정확성을 따르는 수준급이었고 홍보자료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중동의 미래 비전이 담긴 설득력 있는 것이었다. 카타르는 2022년 월드컵에 이어 올해 아시안컵 축구대회를 개최했다. 여기에는 이들 국가의 미래 비전 계획인 〈VISION 2030〉과 같은 전략적 사고가 놓여 있다.

과거에 3S로 표현되던 중동은 Sunshine(햇볕), Sand(모래), Simplicity(단순성)에서 벗어나 변모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자서전 《지혜의 일곱 기둥》에서 중동을 사막의 고요함과 바다의 역동성이라는 극적인 대조로 표현했다. 지정학적 요충지에서 중간무역상으로 활약한 아랍 상인들의 상술도 잘 알려져 있다. 육로와 해로에서의 생존을 위한 정보력과 인내심 그리고 의지에서 나오는 능력이다. 이런 역사·문화적 저력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오스만튀르키예 제국의 통치하에〈오스만-아랍 형제협회〉로 연결된 관계에서 벗어나 1916년 6월 아랍 독립전쟁을 개시해 근대 아랍국가를 건설했다.

카타르 파운데이션(QF)이나 아랍에미리트 전략연구소와 같은 학술연구 기관들은 국제적인 주요문제를 다루는 세미나와 포럼을 개최하면서 자국에 유리한 이니셔티브를 취한다. 카타르는 알자지라 방송국을 설립하고 브루킹스 도하 연구소를 유치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오피니언 메이커 자리를 확보했다. 세계미술시장에 중요한 수집가로 나서고 할리우드 영화계와 협력해 국제영화제를 주관하면서 미래의 문화자본을 축적하고 있다. 종교 간 대화회의를 개최해 세계 종교지도자들을 초청해 화해와 이해를 중개한다. 이들 국가의 유연한 능동외교를 보면 "국력을 제대로 쓰는 나라가 강한 나라"라는 말을 실천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미국의 주요 맹방인 아랍 보수 왕정국가들이 진보성향의 비동맹운동에 참여해 활동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120개 회원국과 19개 참관국을 가진 비동맹운동을 통해 국제무대에서 지지국을 넓히고 선제적으로 발언권을 확보하려는 의도다. 남북한도 1975년 페루 개최 비동맹외무장관회의에서 회원국 가입을 신청해 북한의 가입만 성사되었고 북한은 이후 국제무대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지원받는 데 활용해 왔다. 21세기 신지정학의 세계에는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적으로 중첩된 다양한 트랙들이 교차하면서 지역별 패러독스가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국익을 위해서는 보다 많은 국가를 우호국으로 확보하고 외교지평을 넓혀 사용할 필요가 있다. 외교의 꽃인 고위급 인사들의 교환 방문도 더욱 활발해져야 할 것이다. 성을 쌓고 지키려는 자는 빼앗길 것이요 길을 만들어 이동하는 자는 흥할 것이라는 칭기즈칸의 말은 변화하는 정세 속에 있는 모든 국가에 해당된다.

외교활동의 목적은 평화적 수단을 통한 국가의 안보와 번영이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한스 모겐소는 평화를 위한 외교의 4가지 기본원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외교는 십자군 같은 정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조주의적인 추상성과 절대성을 삼가라는 것이다. 둘째, 외교정책의 목표는 국익의 관점에서 정의되어야 하며 적정한 힘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셋째, 외교는 다른 국가의 입장에서 국제정치를 보아야 한다. 넷째, 국가는 필수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기꺼이 관련국과 타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타협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 이것을 타개하기 위한 5가지 방법을 들었다. 이것은 첫째, 실질적 이익을 위해 무가치한 권리를 포기할 것, 둘째, 후퇴하면 체면을 잃게 되고 심각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위치에 스스로 서지 말 것, 셋째, 약한 동맹국이 자신을 대신해 결정을 내리게 하지 말 것, 넷째, 군대는 외교정책의 주인이 아니라 도구라는 점을 기억할 것, 다섯째, 여론의 노예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력의 구성요인을 잘못 평가하면 평화와 전쟁이 뒤바뀌게 되고 국력의 측정에 오류를 가져오는 돌발 사건들이 그런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2000년대 중동이 단순성을 탈피해 점차 변모하는 것과 비교해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답보상태를 보이는 것처럼 여겨진다. 국제사회의 경쟁이 가열하는 중에 국내에서의 과도한 정치적 투쟁과 경제적 난관 그리고 낮은 결혼·출생률과 같은 문제는 우려할 만하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새 역사를 쓰자고 했던 대로 한 세대를 노력하고 희생해 현재 세계 속에 흥기한 대한민국을 보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동안 압축성장에 매진했던 바쁜 숨을 잠시 고르고 대한민국호가 멈춰 선 이유를 생각할 때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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