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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100세] “꿈이 있다면 들리지 않아도 느낄 수 있지요”

[희망100세] “꿈이 있다면 들리지 않아도 느낄 수 있지요”

기사승인 2013. 03. 02.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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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각장애 딛고 영어공부 매진하는 채영란씨 인터뷰
서울 화곡동 KBS스포츠월드 1체육관에서 지난 22일 열린 독학학위제 학위수여식에 참석한 채영란씨. /사진= 조준원 기자 wizard333@

아시아투데이 이정필 기자 = “사람들은 ‘귀가 안 들리는데 어떻게 외국어공부를 할 수 있느냐, 왜 하느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신체적인 장애가 불편함을 줄 수는 있어도 불가능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1일 청각장애에도 불구하고 영어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채영란씨(53··전북 전주)는 기자의 질문에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전공한 채씨는 독학으로 올해 영어영문학과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어와 영어 외에도 러시아어와 일본어까지 공부 중이다.

태어날 때부터 채씨가 소리를 못 들었던 것은 아니다. 결혼 후 두 아들을 낳아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고 있던 채씨에게 고난은 불현듯 찾아왔다.

“30살 때 장티푸스에 걸렸는데 균이 많이 불어났는지 몸 상태가 나빠져 머릿속이 울리면서 천장이 돌고 균형이 안 잡히더라고요. 청각장애 2급 판정을 받고 반년 넘게 절망 상태가 지속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꿨는데 소련의 초대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나타나 칠판에 ‘영란=다윗(이스라엘의 제2대 왕. 구약성경 시편의 저자로 양치기 소년 시절 필리스티아의 거인 골리앗을 돌팔매질로 쓰러뜨린 일화가 유명함)’이라고 쓰는 거예요. 정신이 번쩍 들었죠.”

그날부터 채씨의 삶은 변화됐다. 자리에서 일어나 서점으로 달려가서 러시아어 사전과 학습교재를 신중히 골라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 20년간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를 차례로 독파했다. 해외 선교사로 봉사하겠다는 비전을 가슴 한편에 간직한 채.

“독학학위제를 이용해 하루 4시간이 넘게 매일같이 읽고 쓰고 말하기를 반복했어요. EBS 교육방송 프로그램과 방송통신대학의 강의도 수없이 봤습니다. 들리지는 않지만 느낌이 오더라고요.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은 수첩을 이용합니다.”

수화가 어려워 배우지 않았다는 채씨는 인터뷰를 할 때도 질문을 수첩에 적으면 말로 대답했다. 지난해 큰아들과 결혼한 며느리는 통역사를 자처해 채씨의 곁에서 인터뷰를 도왔다. 지금은 둘도 없는 모녀나 마찬가지란다.

“아무런 희망도 없는 삶의 과정을 거쳐 왔지만, 지금은 더없이 행복해요. 귀는 들리지 않게 됐지만 그 일을 계기로 꿈이 생겼으니까요. 새로운 것들을 계속해서 배우고 도전하는 한 저는 장애를 뛰어넘은 자유인입니다.”

인터뷰를 마친 채씨는 큰며느리와 팔짱을 끼고 공부를 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다 힙합가수 드렁큰 타이거(타이거 JK, 본명 서정권)의 곡 ‘행복의 조건’이 떠올라 흥얼거렸다.

‘움직일 수 없지만 보일 수 있음에, 만날 수 없지만 들을 수 있음에, 만질 수 없지만 느낄 수 있음에, 말할 수 없지만 생각할 수 있음에, 내가 잃은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당신은 행복한 사람......’

채씨(왼쪽)가 학위수여식장에서 며느리와 팔짱을 끼고 미소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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