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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카르페 디엠!

[칼럼] 카르페 디엠!

기사승인 2019. 04. 2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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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고문 / 숙명여대 석좌교수
절대권력의 독재자 빅브라더(Big Brother)는 텔레스크린이라는 양방향 송수신 영상장치로 국민의 사생활을 철저히 감시하면서, 조작된 정보로 개인의 의식과 사상까지 획일적으로 통제한다. 빅브라더가 이끄는 진실부(Ministry of Truth)에서 기록변조를 담당하는 주인공은 자신의 일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연인과 함께 빅브라더에 저항하지만, 결국 사상경찰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으면서 서로를 배신하도록 세뇌 당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그려진 가상 국가 오세아니아의 모습이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빅브라더의 신조다. 현재의 권력이 과거의 역사를 볼모로 잡아 미래의 이념 앞에 무릎 꿇리는 ‘역사의 도구화, 역사의 이념화’가 빅브라더의 통치술이다.

역사는 권력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고쳐 쓸 수 있는 양피지 같은 것’일 뿐이다. 공직자들은 자신이 역사를 조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아무 죄의식이 없다. 거짓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오웰은 이것을 이중사고(double-think)라고 부른다. 진실은 사라지고 ‘진실너머(post-truth)의 역사공정(歷史工程)’만 남은 디스토피아… 거기에는 기억해야 할 과거도, 충실해야 할 현재도, 소망을 품을 미래도 없다.

역사는 사실과 기록의 만남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되고 기록된 사실들이 공동체의 전승(傳承)되는 기억 속에 역사적 실체로 각인된 후에는 그것을 함부로 뒤집지 못한다. 해석은 바뀔 수 있지만 사실은 바꿀 수 없다. 역사의 재해석도 역사학과 역사공동체의 몫이지 권력의 몫이 아니다. 역사의 주체는 권력엘리트가 아니라 국민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에서 ‘건국대통령을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는 망언이 나오는 것은 역사에 대한 야만의 테러나 다름없다. 영광과 자랑의 기억만이 역사가 아니다. 수치와 불행, 아픔도 엄연한 역사다. 권력의 입맛대로 지우거나 덧붙이거나 고쳐 쓸 수 없다. 그렇지만 정략이나 이념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과거사를 뒤엎으려는 시도들이 적지 않았다. 국민을 세뇌하기에 역사만큼 유용한 도구가 없기 때문 아닐까.

“그는 빅브라더를 사랑했다.” 소설 ‘1984’의 마지막 문장이다. 세뇌 당한 주인공은 마침내 빅브라더에 충성하는 ‘새 사람’이 되어간다. 절망의 상황이다. 그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절망할 줄 모르는 정신적 예속이야말로 지독한 슬픔이 아닐 수 없다. 그 절망을, 그 슬픔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극복의 힘은 깨어있는 이성, 균형감 있는 역사의식에서 나온다. 이성적이고 균형 잡힌 역사의식은 권력의 통제와 농간에도 결코 세뇌되지 않는다.

로마의 옛 시인 호라티우스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노래했다. 미래는 불확실하므로 오늘을 붙잡으라는 뜻인데 ‘오늘을 누려라, 현재에 충실하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 의미를 이성과 균형의 역사의식으로 되새겨본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현재는 어떤 과거에서 비롯되었으며 또 어떤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를 성찰하면서, 늘 현재에 충실하라.”

지금 우리는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닌 자유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기적처럼 성공한 산업화·민주화의 현재를 누리고 있다. 그 현재에 최고 존엄이나 빅브라더의 자리는 없다. 이중사고는 단호히 거부된다. 숱한 오류와 시행착오 속에서도 자유·민주·공화의 나라를 세우고 발전의 기틀을 다져온 선인들의 발자취는 깨어있는 국민의 의식 속에 조국의 역사로 단단히 뿌리박고 있다.

역사는 특정세력이 지배하거나 독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이 땅을 먼저 살다간 어른들의 치열했던 삶의 자리요, 후손들이 대대로 이어가야 할 삶의 현장이다. 과거를 고문하지 말라. 미래를 약탈하지 말라. 오직 현재에 충실하라. 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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