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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이야기]아찔한 봄향기 진달래

[칼럼][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이야기]아찔한 봄향기 진달래

기사승인 2013. 04. 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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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봄날입니다. 도시에, 산에 들에 온통 봄 향기가 그득합니다. 흠. 이번 주말 쯤 여의도 윤중로에는, 하얀 벚꽃이 절정을 이루겠지요.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해마다 봄이 짧아지는 것 같지 않습니까? 여하튼. 벚꽃이 도시를 하얗게 치장하는 꽃이라면 진달래는 산야를 붉게 물들이는 꽃이지요.

지난 주말에 관악산에 다녀왔습니다. 산 아래에는 진달래꽃이 지천이더군요. 아직 산 위에는 채 피지 않았지만요. 이번 주말이 지나면 다 필 것 같습니다. 분홍빛 진달래는 찬찬히 보면, 참 수줍게 생겼습니다. 너무 진하지도 않고, 자기를 내세우지도 않는. 그러나 전체를 보면 온 산을 온통 다 덮고 있는 꽃.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와 함께 대전근교 산에 올랐을 때 진달래는 먹는 꽃이다 말씀해주셨지요. 그때 따먹은 진달래의 맛은 세월이 지난 지금은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달콤한 맛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저 꽃 따먹는 재미에 몇 송이 더 따먹었지요. 관악산에서 막걸리 한 잔 하면서, 어릴 적 생각나 술잔에 진달래 한 송이씩 띄워봅니다. 하얀 막걸리에 떠 있는 분홍빛 진달래는, 참으로 예뻐서 빛나기까지 합니다.

일행들 모두 그 정취에 감탄하면서, 그래 이래야 봄이지 했답니다. 혀끝으로 전해지는 가녀린 꽃잎의 맛은, 알싸하고 씁쓸하고 약간 떫고, 조금 달콤하기도 하고, 아지랑이에 취해 약간 아찔한 현기증 나는 맛이기도 합니다.

진달래는 진짜 꽃이라는 의미로 ‘참꽃’ 또는 ‘두견화’라고도 하며, 산지의 볕이 잘 드는 곳에서 자랍니다. 토종꽃인 진달래는 질긴 꽃입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지요. 가지를 꺾어주면 오히려 꽃이 더 많이 핀다고 합니다. 연분홍 꽃잎이 한없이 연약해보여도 왕성한 번식력에서는 벚꽃보다 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진달래로 만든 술도 독한 편입니다. 아지랑이 봄 햇살 안주에 진달래 술 한잔이면 픽픽 쓰러진다고 옛 어른들은 말하시지요. 진달래 꽃잎으로 빚은 술을 두견주라 하는데, ‘두견주 석 잔에 5리를 못간다’, ‘진달래술 마시면 바람난 큰 애기처럼 앞뒤 못 가린다’는 속설도 아주 낭설은 아닌 거지요. 진달래술 한잔이면 나른한 봄날이 온통 핑크빛입니다.

싱숭생숭한 봄날이면 옛 사람들은 진달래꽃 화전[花煎;꽃지짐]을 부쳐먹는 재미에 푹 빠져 지냈답니다. 삼월삼짇날 소나무 울창한 계곡에 커다란 솥뚜껑을 걸고 나뭇가지에 불을 지펴, 한주먹씩 따온 진달래꽃을 찹살반죽위에 얹어 지져먹었다는 거지요. 진달래화전은 그 색깔도 연분홍빛으로 아주 곱습니다.

화전은 옛날 봄 야유회의 주요 메뉴여서, 근엄한 궁궐에서도 임금이나 왕비가 창덕궁에서 가까운 비원에 울긋불긋 진달래가 피면, 궁녀들과 함께 몸소 진달래꽃을 따다가 꽃술도 빚고 화전도 지져 먹으며 하루를 즐기기도 했답니다. 화사한 봄 날, 꽃술에 꽃전이라. 참 낭만적이지 않습니까. 진달래 화전이 하도 궁금해서 제 삼십년지기랑 진달래 꽃잎따다 화전을 부쳐먹어 보았지요. 역시, 맛보다는, 눈으로, 멋으로 먹는 음식입니다.

진달래는 우리나라에 흔치않은 먹을 수 있는 꽃이라서, 오래전에 보릿고개가 기승을 부리는 어렵던 시절에는,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아이들이 진달래를 따 허기를 달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진짜 꽃이라는 의미로 참꽃이라 부른다고도 합니다.

미운 진달래

진달래 진달래/분홍빛 예쁜 꽃/진달래 진달래/분홍빛 먹는 꽃
..(중략)
진달래꽃 따먹으러/산으로 갔지/많이많이 먹을려고/혼자서 갔지
진달래꽃 쌀밥 같아/하루내내 따먹었네/구역질 참아내며/
먹어도 먹어도/배는 부르지 않았네 (후략)

-조정래의 '태백산맥' 4권

모두들 아시는 영변의 약산에 핀 진달래를 노래한 김소월의 <진달래꽃>의 처연한 슬픔. 봄 날 막걸리에 띄워먹는 예쁜 진달래 꽃잎, 분홍빛 어여쁜 진달래 화전하고는 좀 다른 이야기가 있더군요. 보릿고개. 먹을 것이 없어서, 구역질 참아내며 꽃으로 배를 채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진달래가 더 아름답게 느껴져서,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아. 물론, 오늘은 진달래 꽃잎띄운 막걸리 몇잔에 조금 취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진달래를 먹으면, 봄이 눈으로 오는 것만이 아니고 입으로도 옵니다. 한 해 한 해가 갈수록 봄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봄이 짧아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지요, 화사한 꽃은 금방 집니다. 귀한 봄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큰 맘 먹고 가족과 함께 가까운 야외로 나가셔서, 눈으로도 봄을 맞으시고, 아릿하고 현기증 나는 봄 맛, 참꽃 진달래도 따 맛 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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