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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운명공동체

[칼럼] 운명공동체

기사승인 2020. 04. 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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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우근 숙명여대 석좌교수. 변호사
‘그대는 나의 운명!’ 이보다 더 절박한 사랑의 고백이 있을까. 이 고백은 ‘너와 나는 삶과 죽음을 함께 하는 운명공동체’라는 뜻이다. 피를 나눈 가족 또는 피보다 더 진한 사랑의 연인들에게나 있을 법한 인격적 결합이다.

이처럼 생사존망(生死存亡)을 함께 하는 운명공동체가 국가들 사이에도 성립할 수 있을까. 운명공동체의 결속력은 군사동맹보다 더 강력하다. 전쟁의 승패를 함께할 뿐 아니라 아예 목숨까지 한데 묶는 것이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이즈음 들려오는 말처럼, 한국과 중국이 과연 ‘같은 배를 탄 운명공동체’인가.

지금의 중국은 공자와 맹자의 나라가 아니다. 노자와 장자의 나라는 더욱 아니다. 군자의 이상정치도, 성현의 무위(無爲)정치도 오늘의 중국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중국은 여전히 마오쩌둥의 나라다. 죽은 지 44년이나 되는 마오의 대형 초상화가 지금도 천안문 붉은 벽 위에서 천하인민을 굽어보고 있다. 마오는 6·25 전쟁 때 수십만의 인민군을 보내 숱한 인명을 살상하고 한반도 분단을 고착시킨 장본인이자, 문화혁명이라는 반문화적 난동으로 인류역사에 야만의 발자취를 남긴 독재자였다.

두 나라가 운명공동체로 결합하기 위해서는 역사관과 문화의식을 공유하고 공통의 가치와 미래를 추구하는 역사공동체·문화공동체·가치공동체·미래공동체로 한 몸처럼 맺어져야 한다. 우리는 지난날 한반도를 빈번히 침략하고 우리 민족을 숱하게 괴롭혔던 중국과 더불어 역사관이나 문화의식을 공유하지 못한다.

중국의 사회주의 독재체제와 대한민국의 자유주의 민주체제도 서로 조화될 수 없다. 조화는커녕 갈등과 충돌이 필연적이다. 게다가 중국인들은 자기네가 세계의 중심이며 역사상 가장 발달한 문화를 이뤄냈다는 중화(中華)주의 선민의식에 젖어있을 뿐 아니라, 인접국들을 남만(南蠻)·북적(北狄)·동이(東夷)·서융(西戎)으로 얕잡아보는 화이(華夷)사상에 깊이 물들어있다. 저들의 눈에는 반만년 역사와 빛나는 문화를 품은 한국도 그저 동쪽의 자그만 변방쯤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문화혁명의 대혼란을 가까스로 수습한 덩샤오핑은 ‘스스로를 드러냄이 없이 참고 기다리며(韜光養晦) 국제사회에서 우두머리 노릇을 하지 않는다(不要當頭)’는 국정지표 아래, 집단지도체제를 확립해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성장의 기틀을 다졌다. 그 결과 중국은 마침내 미국과 함께 G2의 자리에 오르게 됐지만, 지금의 중국은 다시금 1인 철권통치의 마오쩌둥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던 ‘도광양회·불요당두’의 원칙을 저버린 중국은 ‘분연히 떨쳐 일어나(奮發有爲) 세계의 우두머리가 되겠다(必要當頭)’는 야심으로 초강대국 미국과 패권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하필이면 이때 우리 입으로 ‘중국과 한국은 운명공동체’라고 공언하는 것은 미·중 패권경쟁에서 중국 쪽에 서겠다는 결의의 표명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중국은 큰 산봉우리, 한국은 그 앞의 작은 나라’라는 발언도, 그것이 비록 외교적 수사(修辭)라 해도, 역사와 문화 또는 군사와 경제의 면에서 우리를 스스로 비하(卑下)하는 것이거나 지배와 굴종의 사대주의를 용인하려는 뜻은 아니기를 바란다. 한반도를 사실상 중국의 스물 몇 번 째 성(省)으로 전락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사상적으로든 지정학적으로든 한국과 중국이 운명공동체임을 확신한다 하더라도, 운명을 대하는 태도는 마음가짐에 따라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 있다. 운명에 굴종하는 자, 운명과 타협하는 자, 운명을 극복하려는 자가 어찌 같은 미래를 가질 것인가. 중국은 우리에게 타협과 극복의 대상일지언정 ‘함께 살고 함께 죽는’ 지배·굴종의 운명공동체는 결코 아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발원지인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자를 끝내 막지 않는 처사를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다. 설마 중국인들과 생사마저 함께 하겠다는 각오야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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