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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공군 탄생’ 군인 가족들은 뭔가 특별하다?

‘3대 공군 탄생’ 군인 가족들은 뭔가 특별하다?

기사승인 2015. 01. 30.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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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공군 이병, 할아버지 박성룡 대령·아버지 박중석 대령 이어 3대 공군 복무...3남매·아버지와 4남매 모두 군인가족 "군 복무는 품앗이, 그 누구도 군대가야 한다", "자식들 선택 존중, 강요하지 않았다"
공군 3대 가족
3대(代)에 걸쳐 대한민국 하늘을 지키는 자랑스러운 공군 가족이 탄생했다. 공군 병 747기로 입대해 기본군사훈련을 마치고 30일 공군 병사가 된 박재현 이병(왼쪽)과 박중석 예비역 공군 대령이 수료식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박 이병의 할아버지 고 박성룡 예비역 대령은 6·25 전쟁에 참전한 공군 군수장교로 대한민국 공군 군수의 초석을 다졌다. / 사진=공군 제공
“할아버지께서 평소 아들에 이어 손자까지 3대가 대한민국 공군에서 복무하길 원하셨다.”

3대(代)에 걸쳐 대한민국 하늘을 지키는 자랑스러운 공군 가족이 탄생했다. 지난달 22일 공군 병 747기로 입대해 기본군사훈련을 마치고 30일 공군 병사가 된 박재현 이병(26) 가족이 그 주인공이다.

박 이병의 할아버지는 6·25 전쟁에 참전해 공군 군수장교로 현지 입대한 예비역 대령이다. 아버지는 공군사관학교 26기 전투기 조종사 출신 예비역 대령이다.

미국 UC산타바바라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후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던 박 이병은 미 국적자이지만 2008년 말에 작고한 할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해 귀국 후 공군 병으로 자원 입대했다.

박 이병은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받고 국민 세금으로 받은 아버지의 월급으로 지금의 내가 대학교육까지 받을 수 있었음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면서 “대한민국 공군 병으로 입대할 것을 다짐했다”고 말했다.

박 이병 가족의 공군에 대한 남다른 사랑은 할아버지때부터 시작됐다. 박 이병의 할아버지인 고 박성룡 예비역 대령은 서울대 항공조선공학과 전임강사와 공사 민간교수로 항공공학 등을 강의했다. 그러다 전쟁이 나기 직전인 1950년 5월 미 정부의 지원을 받아 미네소타대로 유학을 가게 됐다. 한 달 뒤 6·25 전쟁이 터지자 고국으로 귀국하고 싶었지만 민간인 신분으로 귀국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했다.

여러 방안을 찾던 중 박 대령은 1952년 초 연합군 최고사령부(SCAP GHQ) 군속으로 지원해 정전회담 통역으로 귀국했다. 1953년 3월 공군 소령으로 현지 입대해 군수장교로서 6·25 전쟁에 참전했다.

1964년 10월 대령으로 전역한 박 대령은 12년 동안 복무하면서 공군본부 군수국 보급과장, 장비과장, 80항공본창 초대 물동부장 등을 지냈다. 대한민국 공군 군수 분야의 초석을 다지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박 이병의 아버지 박중석 예비역 대령(62)은 1978년 3월 공사 26기로 임관해 2009년 10월 대령으로 전역했다. 현재 한국교통대 항공운항학과 초빙교수로 공군 학군사관후보생(ROTC) 학생들에게 비행이론과 항공역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박 교수는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공군기지에서 생활하며 공군에 대해 동경하게 됐다”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력에 도움이 되고자 공사에 입교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임관 후 비행교육과정을 거쳐 전투기 조종사가 된 박 교수는 F-5E/F 전투기 조종사로서 영공방위 임무를 완수하면서 항공공학 학업도 계속 이어갔다. 박 교수는 공군의 항공공학 분야 전문가로서 항공기, 무기체계 소요 제기와 검토 업무도 담당했다. 서울에어쇼를 제안하고 2000년에는 고등훈련기사업처 개발총괄담당으로 T-50 훈련기 개발 사업관리와 기술자문을 했다.

1998부터 2년 간 국방부 군축과장으로 재직 당시 박 교수는 한·미 미사일회담에 한국대표로 참여해 우리나라의 우주개발과 순항미사일 개발에도 기여했다. 2006~2009년까지는 스위스 제네바 유엔(UN) 군축회의 상주 대표로 근무하며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 공군의 위상을 드높였다.

기본군사훈련을 마치고 화학특기를 배정받은 박 이병은 특기교육을 받은 후 자대로 배치돼 2년 간 공군 병으로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걸었던 공군인의 길을 가게 됐다. 2년 후 박 이병이 전역하게 되면 박 이병 가문이 공군에 복무한 기간은 모두 50년이 된다.

박 이병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거쳐 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대한민국 공군에 입대하게 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작은 힘이지만 나라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해 군 생활에 임하겠다”라며 힘찬 “필~승” 경례를 잊지 않았다.

박 이병의 형인 박재완(28)씨도 해병대 사관후보생 109기로 임관해 해병대사령부에서 정보장교로 복무하고 2013년 11월 중위로 전역했다. 박 이병이 전역하게 되면 박 이병 가문은 3대가 모두 현역복무를 마치게 되며 병무청에서 선정하는 ‘병역명문가’ 자격을 갖춘다.

해군 3남매 해병대 1
해군 제주방어사령부에 근무 중인 자매 부사관인 김경은 중사(앞에서 둘째)와 김영란 하사, 쌍둥이 해병대인 강성민(셋째)·정민 병장 형제가 지난 18일 주먹을 불끈 쥐어 제주도 수호를 힘차게 다짐하고 있다. / 사진=해군 제공
남들은 굳이 가기 싫어 하고 힘든 군인의 길을 자발적으로 가는 군인 가족들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얘기가 나온다.

창군 이래 극히 드물게 딸 둘과 아들 하나까지 3남매 모두를 군대에 보낸 아버지 김종호(59·경기도 파주) 씨는 지난 18일 아시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4남매 모두를 군대에 보내고 싶었지만 아쉽게 100프로를 다 채우지 못했다”면서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많이 군대에 안 갈려고 하는데 그런 정신 상태는 안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육군3군사령부에서 운전병으로 근무하다 부산 육군군수사령부에서 1979년 3년 만기 전역한 것 밖에 군과 특별한 인연이 없는 김 씨는 3남매 모두를 군대에 보냈다. 아쉽게도 첫 딸 김영빈(33) 씨를 군대에 못 보내 100%를 다 채우지 못했지만 육군 대위인 박현재(34) 맡사위를 얻어 그 아쉬움을 달랬다.

큰 딸에 이어 해군 제주방어사령부에서 부사관으로 근무하는 작은 딸 김경은(32·시설대 수송반) 중사의 남편이자 둘째 사위도 우리 군의 최강 해군 해난구조대(SSU·목포방어사령부)에 근무하는 듬직한 배장훈(31) 중사다. 셋째 딸인 김영란(29) 하사는 언니와 함께 제방사 군수참모실에서 재무 보급을 담당하고 있다. 막내인 김시훈(21) 하사는 부사관 240기로 서해 최북단 백령도 해군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어머니 김영애(57) 씨는 자식 셋을 군에 보낼 때마다 뒤돌아 서서 보이지 않게 눈물을 흘려야 했다.

아버지 김 씨는 “자신들이 선택한 길을 존중해 줬으며 어느 하나 군대에 가라고 얘기하지 않았다”면서 “위로는 상사들 말 잘 듣고 아래로는 부하 장병들에게 사랑으로 베풀어서 가족 같은 군대를 만드는데 자식들이 기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3남매를 군대에 보낸 것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군대를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두봉 군인가족 1
“군 복무는 품앗이다. 나라가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군대는 가야 한다.” 창군 이래 처음으로 아버지와 세 딸·아들까지 어머니만 빼고 한 가족 5명 모두 군 간부의 길을 걷고 있는 ‘영원한 특전사’ 박두봉 예비역 육군 원사(앞줄 가운데)는 이렇게 말했다. / 사진=박두봉 예비역 원사 가족 제공
“군 복무는 품앗이다. 나라가 존재하는 한 그 누구도 군대는 가야 한다.” 창군 이래 처음으로 아버지와 세 딸·아들까지 어머니만 빼고 한 가족 5명 모두 군 간부의 길을 걷고 있는 ‘영원한 특전사’ 박두봉(62·통신 ROC 45기·광주시 북구 일곡동) 예비역 육군 원사는 이렇게 말했다. 1974년 군문에 첫발을 내디딘 박 원사는 34년간 육군 특수전사령부에서 11공수여단 행정보급관·주임원사를 지내고 2008년 정년 퇴임했다.

박 원사는 “솔직히 군 생활이 힘들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군인의 길을 가라고 권유하지는 않았다”면서 “나라의 녹을 먹고 사는 군인은 모름지기 그 누구보다 법과 규정, 원칙을 솔선수범해 지켜야 상명하복의 리더십이 생긴다고 조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원사는 “군인은 명예를 먹고 살아야 하고 항상 밝은 마음가짐과 건강한 몸을 지녀야 나라에 충성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어머니 고순덕(57) 씨는 “34년 간 부사관 아내로 살면서 남편의 부하들까지 자식처럼 챙겼고 때론 많은 도움도 받았다”면서 “한 가정의 귀한 자식들인 모든 장병들이 건강하게 군 복무를 잘했으면 한다”고 바랐다. 군인 자식들은 “한평생 군인의 길을 가장 명예롭게 여긴 아버지와 자랑스러운 가족들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온힘을 다해 군 생활 잘 하겠다”고 한결같이 포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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