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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때]십대들의 우상 ‘H.O.T.’ 해체

[오늘, 그때]십대들의 우상 ‘H.O.T.’ 해체

기사승인 2015. 05. 13.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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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
H.O.T.
2015년 5월 13일은 서울 서초구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에서 사격 훈련을 받던 예비군 한 명이 총기를 난사해 2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총기를 난사한 최씨는 그 자리에서 자살했으며, 삼성의료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던 예비군 한 명이 숨지면서 사망자는 2명으로 늘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예비군 훈련 안전 관리 문제에 대한 지적이 다시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거 ‘이날’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먼저 2001년 이날은 인기 댄스그룹 H.O.T. 멤버 가운데 세 명이 그룹을 탈퇴, 사실상 해체됐습니다. H.O.T. 멤버인 토니안, 이재원, 장우혁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이 끝났다”면서 “팬들과 함께 영원히 H.O.T.로 활동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기 어려웠다”고 밝혔습니다. 이로써 H.O.T.는 1996년 9월 데뷔 이후 4년 8개월 만에 사실상 해체됐습니다.

H.O.T.는 대한민국의 남성 5인조 보이 댄스 그룹으로, 이후에 등장한 젝스키스, S.E.S., god, 핑클, 신화 등과 함께 한국 아이돌그룹의 전성기를 이끌었는데요. H.O.T.는 ‘High-five Of Teenagers’ 곧 “십대들의 승리”를 의미했습니다. 대표곡으로는 데뷔곡인 ‘전사의 후예’를 포함해, ‘캔디’, ‘늑대와 양’, ‘행복’ 등이 있습니다.

또 1913년 이날은 흥사단이 도산 안창호의 주도로 미국 샌프라시스코에서 창립됐습니다. 정치운동을 초월하고, 민족부흥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창립 취지였는데요. 3·1운동 후에는 상하이에 원동위원부를 조직, 독립운동에 힘을 쏟았고, 서울과 평양에는 수양동맹회(1922년)와 동우구락부(1923년)를 결성, 국내에서 합법적인 민족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그리고 1975년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긴급조치 9호’를 선포했습니다. 이는 앞으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겪을 시련을 의미했는데요.

긴급조치 9호는 헌법 비방이나 반대, 유언비어 유포, 허가없는 학생시위·집회 금지 등을 주요 골자입니다. 한국사회는 전시상태나 다름없는 비상체제로 진입했습니다. 이에 서울대 학생들의 시위를 기점으로 민주 인사들의 ‘민주구국선언’등을 통해 일파만파로 커져갔습니다. 결국 긴급조치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사망 후 같은 해 12월 8일 0시를 기해 해체됨으로써 끝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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