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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회담의 정상성(頂上性)

비정상회담의 정상성(頂上性)

기사승인 2015. 05. 2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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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판 2개 탄생 속 한국판의 매력 여전...한국 달라진 위상, 교양과 오락의 성공적 접목
‘비정상회담(JTBC)’, 최대한 본방송을 챙겨보는 TV프로가 생긴 것은 어렸을 때 만화영화 이래 처음인 것 같다. 십 수년 전 고물 브라운관 TV가 수명을 다한 이래 어쩌다 인터넷으로 TV를 시청해 온 처지다. 예능프로를 이렇게 꼬박꼬박 찾아본다는 것이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매주 월요일 밤 ‘비정상회담’ 덕분에 ‘낄낄거리며’ 유익한 견문을 넓히고 있다. 애청자로서 그간 느낀 바를 조만간 한번 정리해보려던 차에 마침 중국판 ‘비정상회담’을 보게 돼 이를 공유하고자 한다.

‘비정상회담’을 시청한 중년 이상의 한국인 시청자들은 크게 2가지 점에서 깊은 인상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한국 및 한국어의 달라진 위상이고, 다음은 교양과 오락의 성공적 접목이다. 대부분 첫 눈에 외국인임을 알 수 있는 출연자들, 한국사에서 아주 먼 타자였던 나라, 혹은 근대 이래 우리가 선망해 온 선진국 젊은이들이 한국어로 갑론을박 토론을 벌인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이채롭다.

동아시아 중세질서 중화권의 일부였던 우리가 지구촌의 일원이 된 이래 기본적으로 외국어는 스펙의 일부였고, 학습대상은 강대국의 언어였다. 지난 십 수년 스펙으로서의 외국어 범위가 경제적 가치 차원으로 다소 넓어지긴 했으나 근본적으로 달라지진 않았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 으로 최근 전세계 한류팬의 존재도 있다. 하지만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역시 선교나 일자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들을 모아놓은 오락프로는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비정상회담’의 유례없는 매력은 그 절묘한 발상과 포맷에서 온다. “국제평화의 유지와 안전을 위해 유엔에서 각국 정상들이 유엔에 모여 정상회담을 펼치는 동안 후미진 구석방 각국에서 정식으로 파견한 적은 없으나 지들 입으로 대표로 우기는 G12(주요 12개국)가 모여 세계청년들의 고민을......”이라는 익살스런 시작멘트가 ‘비정상회담’의 창조적인 컨셉을 대변한다.

제목에서 발생하는 3가지 동음이의 현상, 즉 非頂上(non-summit), 非正常(unusual, abnormal), 非定常(irregular)은 외국어판 ‘비정상회담’이 흉내낼 수 없는 한국어 특유의 재미를 선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포맷 면에서 성숙을 거듭해 온 ‘비정상회담’은 크게 두 부분, 자국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알아보고 타국 문화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버리는 ‘글로벌문화대전’과 매번 새로운 게스트가 제시하는 주제로 토론을 하는 구성이다. 언제부터인가 ‘글로벌 문화대전’은 각국에서 화제가 된 뉴스나 이슈를 해당국 멤버가 앵커 같은 분위기로 짧게 소개하는 코너로 발전했다. 녹화분이 방영될 시점이면 이미 최신 이슈는 아니므로 코너 명칭도 ‘늦었슈’다. 이 ‘늦었슈’ 코너에 소개된 화제를 중심으로 출연자들의 추가 설명과 수다가 이어지며 각국문화 및 상황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이어 매회 바뀌는 한국대표 게스트를 통해 안건이 제시되고 본격토론에 들어간다. 게스트 본인의 개인 상황일 때도 있고, 지인이나 주위사람들의 사정일 수도 있다. 안건들은 하나같이 궁극적으로 한국적·동아시아적 혹은 그 경계를 뛰어넘는 지구촌 보편의 고민과 관련된다. 사회적·동시대적 의미를 가지는 문제들인 것이다.

이 점에서 ‘비정상회담’은 교양프로적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G12 출연자들은 대표성 없이, 우연히 뽑혀 온 개인들이며 개인 내지 자국의 입장에서 발언들을 할 뿐이다. ‘비정상회담’이 오락프로일 수 있는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그들이 정말 객관적으로 분명한 국가적 대표성을 갖는다면 이 프로는 민감한 시사프로이거나 따분한 교양프로지 ‘예능’이 되긴 어렵지 않았을까. 흥미로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개인적 의견과 관점이 일정 부분 그 나라 국민의 보편적 부분을 엿보게 한다는 점이다. 지극히 개인적 사적인 개체를 통해 그 개체의 특수성과 더불어 그 속에 녹아 있는 집체성을 상상하고 가늠해보는 것, 이 점이 관전 포인트다.

‘비정상회담’을 탄생시킨 최초 아이디어 제공자와 제작진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아울러 아마도 세계에 전례 없을 이 같은 오락프로가 한국에 태어난 것이 우연일 수만은 없다는 생각을 한다. 대한민국만의 특수성과 관련이 있다는 의미다. 우선 한국어가 국제사회의 주류언어가 아니라는 점이다. 주류언어라면 그 자리는 각국의 국력을 등에 업은 우등생들의 경연장이 되기 쉽다. 국제적으로 비주류 언어권 나라 가운데 산업화에 성공했고 상대적으로 민주화가 진전된 나라이기에 터부가 적인 사회라는 사실, 이런 점이 바로 대한민국에서 ‘비정상회담’ 같은 프로가 태어날 수 있었던 결정적 배경이라는 생각이다.

아시아 언어를 구사하는 서구 선진국 국민들의 존재는 예나 지금이나 눈길을 끌기 마련이다. 일본과 중국은 원어민처럼 자국어를 구사하는 비한자문화권 출신 외국인들을 우리나라보다 한발 앞서 다수 보유한 나라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 같은 것으로 국제사회에서 물의를 빚는 당사국이거나, 공적인 자리에서 결코 논의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는 치명적인 터부가 있는 사회에서는 ‘비정상회담’ 같은 프로가 나오기 어렵다. 일본에서 ‘천황제’나 ‘평화헌법 수정’처럼 과거사의 연장에 있는 이슈라든가, 중국에서 ‘표현의 자유’ 같은 화제가 공론의 장, 그것도 TV에서 내·외국인이 모여 토론하는 장면은 매우 상상하기 힘들다.

4월 중순 이후 중국에서 ‘비정상회담’과 유사한 두 종류의 토크쇼가 방영 중이다. 장수(江蘇)TV의 ‘世界靑年說(세계청년들이 말하다)’와 후베이(湖北)TV의 ‘非正式會談(비정식회담)’이다. 전자는 정식으로 판권을 구입해 제작 방영하는 경우라 멤버들의 국적에 다소 차이가 있을 뿐 한국판과 거의 같은 구성이다. 반면 후베이TV의 경우 판권 구입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다분히 ‘유사품’이라는 느낌이다.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과 3명의 중국인 진행자가 방담을 나누는 형태로 녹화현장 세트 분위기에 닮은 구석이 있을 뿐 몇 년 전 방영된 ‘미녀들의 수다’ 분위기에 가깝다.

다만 두 중국판의 공통적인 한계가 보인다. 출연자가 하나 같이 뛰어난 중국어 실력의 소유자들이라는 것, 대체로 원조 ‘비정상회담’의 벨기에 출신 줄리안 퀸타르트 같은 발랄함과 그의 한국어 수준 정도의 중국어 실력을 과시하지만 아직 개개인의 색깔은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 유창한 중국어와 예능 방송인 같은 끼를 떨치는 중이라고나 할까. 원조 ‘비정상회담’에서 멤버들의 개성이 적절히 재배치되고 어우러짐으로써 다채로운 개성 속의 잔잔하고 감동적인 일종의 합의가 도출되는 모습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비정상회담’의 G12 모두가 매력적이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 몇 명을 언급할까 한다. 우선 타일러 라쉬(미국)다. 필시 모두가 인식하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두 중국판에도 석·박사생, 심지어 법조인도 출연한다. 하지만 타일러처럼 조리정연하고 논리적인 사고와 고급스런 언어를 구사하는 존재는 눈에 띄지 않는다. 알베르토(이탈리아)의 균형 잡힌 사고방식이나 안정적인 의견개진 스타일도 돋보인다. 일리야(러시아)의 다소 까칠한 듯한 개성과 예리함, 다니엘 린데만(독일)의 사고력 논리력도 보기 좋다. 샘 오취리(가나)의 익살도 즐겁다. 말수 많고 어디나 끼어든다 해서 ‘파슬리’라는 애칭의 줄리안은 유쾌한 분위기 메이커로서 당연히 귀한 존재다.

중국학 전공자이다 보니 중국대표 장위안(張玉安)에게는 각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G12가 객관적 법적 대표성을 가지지 않기에 재미있는 ‘비정상회담’인 줄은 알지만 그 자리의 나머지 모든 나라를 합쳐 놓은 것보다 많은 인구와 유구한 역사의 나라가 일개 국가로 끼여 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웠다. 더구나 장위안의 한국어로는 중국에 관한 방어적 설명이나 해명에 고전할 수밖에 없어서 아쉽기도 했다. ‘비정상회담’의 ‘의미’에 심취한 나머지 예능프로라는 사실을 자주 잊곤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모든 멤버가 그러하듯 그 나름의 색깔로 전체의 한 부분을 채우는 존재로 녹아들었다는 느낌이다. 중국 동북지역 태생의 장위안은 TV 아나운서로 일하다 베이징(北京)올림픽 전후 격무에 지친 심신을 쉴 겸 친구가 있는 한국에 왔다가 눌러 앉은 중국청년이라고 한다. 중국이라는 나라의 엄청난 다양성을 생각할 때 그 한 사람으로 중국을 판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임이다.

그럼에도 그 나이 또래 중국인들의 평균적 정서와 논리를 엿보게 해줘 흥미롭다. 두드러지는 애국심리나 가족관, 미래계획 등에서 확인되는 장위안이 면모는 그의 개성을 넘어 거국적 산업화(현대화) 과정에 있는 중국 국민들의 보편정서이자 논리이기도 하다. 이미 오래 전 후기산업사회로 진입한 나라의 멤버들에 비해 자연히 눈에 띈다. 물론, 중국에는 이미 포스트모던한 계층도 상당수 형성돼 있다.

‘비정상회담’ G12 젊은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거나 한국에 체재하게 된 계기는 다양하고 지극히 사적인 이유들일 것이다. 중국어·일본어도 아닌 한국어에 저토록 친숙하게 된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지곤 한다. 무엇보다도 중국어나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라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그들은 남들이 덜 하는 것, 덜 각광받는 것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뻔하지 않은 것, 노력에 대한 보상이 한층 불확실한 어떤 것에 매료된 사람들이다. 설사 희소성의 혜택을 염두에 둔 계산된 것이라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매우 가치 있는 선택이었다. 이런 요소가 ‘비정상회담’의 독특한 매력과 맞닿아 있다.

이미 중국에 두 가지 유사 프로가 있고, 앞으로 그 외 나라에서도 생겨날지 모른다. 하지만 원조 ‘비정상회담’의 매력을 넘어서긴 어려워 보인다. 중국에 포맷이 수출된 한국 TV프로가 이미 여러 개, 그 중에는 오리지널 버전 이상의 흥미진진한 볼거리와 화제를 낳은 예도 있다. 예를 들어 전형적인 산업화 시대 중국의 ‘회사인간 아빠’ 현상에 자성의 화두와 감동을 불러일으킨 ‘빠바, 취날(아빠 어디가)’, 거대 인구의 저력을 증명하듯 두터운 명가수의 층과 다양성을 보여준 후난(湖南)TV의 ‘워스꺼셔우(我是歌手, 나는 가수다)’에서는 원조 이상의 긴장감과 압도적인 음악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비정상회담’의 독보성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현 시점에서 이를 흉내 낼 수 없는 어떤 ‘정상(top-level)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한국사회가 스스로를 돌아보며 세계시민을 키워나가는 노력에 ‘비정상회담’의 계속적인 활약을 기대한다. 장수 프로그램으로 발전하면서 진지하고 창의적인 고민을 멈추지 않았으면 한다. [임명신 중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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