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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문화재표석] ‘이완용 척살 시도’ 이재명 의사 의거 터

[서울 문화재표석] ‘이완용 척살 시도’ 이재명 의사 의거 터

기사승인 2015. 07. 07.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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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이재명 의사 의거 터 

◆카테고리 : 의열투쟁과 무장투쟁 

◆설치연도 : 1999 

◆위치 : 명동역 8번출구 명동성당 앞 

◆ GPS좌표 : 37° 33′ 51.6″ N 126° 59′ 8.9″ E 

◆표석문구 

이재명(1890-1910)은 친일 매국노인 이완용을 척살하려 한 독립 운동가이다. 평북 선천 출생으로, 1909년 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의 추도식을 마치고 나오는 이완용을 칼로 찔렀으나, 복부와 어깨에 중상만 입히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이듬해 순국하였다. 

◆표석설명 

이재명이 친일 매국노 이완용을 처단하기 위해 의거한 곳

이재명(李在明, 1890-1910)은 평양 일신학교를 마친 뒤 1904년 미국 노동이민 모집에 응모해 하와이에서 농장 노동자로 일하다가, 1906년 다시 미국 본토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공립협회에 가입해 활동하던 그는 1907년 7월 정미 7조약의 강제 체결소식을 듣고 비분강개하여 귀국길에 올랐다.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 침략 원흉과 매국노를 처단할 것을 결심한 이재명은 1909년 1월 순종황제의 서도(西道) 순시에 동행하는 이토 히로부미 한국통감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으나 안창호의 만류로 그만두고, 항일투쟁을 위해 원산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갔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의 이토 암살 소식에 고무되어 다시 귀국한 그는 평양에서 동지들과 함께 친일매국노 이완용, 송병준, 이용구 등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상경하여 기회를 엿보던 중 1909년 12월 22일 종현천주교회당(명동성당)에서 있을 벨기에 황제 레오폴트 2세의 추도식에 이완용이 참석한다는 신문보도를 접하고, 군밤장수로 가장하여 성당 문밖에서 기다리다가 식을 마치고 나오는 이완용을 찔러 복부와 어깨에 중상을 입혔다. 현장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뒤 일제 경찰에 체포된 이재명은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10년 9월 13일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얽힌 이야기 

용맹하고 당당했던 이재명 의사

1909년 12월 22일 때는 왔다. 11시 반경 추도식에 참여하였던 이완용이 인력거를 타고 앞으로 지나가니 이재명 의사는 칼을 들고 뛰어나가 바로 이완용에게로 달려들었다. 인력거부가 앞을 막으므로 한 칼에 찔러 꺼꾸러뜨리고 인력거 위에 있는 이완용의 허리를 찔렀다. 그리고 겁에 질린 완용이 인력거 아래로 떨어져 도망하려는 것을 타고 앉아 어깨 등을 힘주어 찌르니 이완용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의사는 목적이 달성하였다고 생각하고는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는데 이완용을 경호하며 따르던 순사들이 붙잡으려고 하니 칼로 대항하였지만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순사들의 칼에 하체가 상하여 포박당하게 되었다.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구경하니 용모가 장대하고 미목(眉目)이 청수(淸秀)하며 눈에서 광채가 나는 의사는 태연한 모습으로 사면을 둘러보면서, “나는 여러 동포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이 일을 한 것인데 너희들은 어찌 구경만 하고 있느냐? 오늘 나는 나라의 원수를 갚았으니 통쾌하다”고 외쳤다.

총리대신 경위 순사들에게 끌려 이완용의 집으로 가는데 농상공부대신 조중응(趙重應)이 “네가 흉행을 한 자이냐?”고 나무라니 이 의사는 눈을 부릅뜨고 추상같은 호령으로 “너 조중응 도적의 무리가 감히 누구보고 너라고 하느냐?” 하며 곁에 있는 순사에게 “비린내가 나니 권연(卷烟)을 한 대 가져오라”고 명령하며 의기남아로서 기개를 보였다.

경시청에 이르러 조사를 받을 적에 동범이 없느냐는 질문에 관해서는 “대장부가 일을 하는 데 어찌 남의 힘을 빌리겠느냐? 내가 17, 8세 때부터 이미 이 원수를 죽이려 하였다. 동범이 있다면 2천만 동포가 다 나의 동범이다. 그런 필요 없는 질문은 다시 하지 말라”고 외쳤다.

이 의사는 이듬해 봄 몇 차례의 공판이 있는 중에서도 내외의 많은 방청인들이 보는 앞에서도 태연한 안색과 호걸스러운 어조로 이완용의 8대 죄악을 들어 통렬히 꾸짖고 나라를 위하여 처단함이 당연함을 재삼 강조하였다. 검사가 사형을 구형하자 방청석에 있던 부인 오인성(吳仁星)이 뛰어 나가, “국적 완용아, 이재명은 당당한 애국자이시다. 무슨 죄로 사형이냐? 무죄한 사람을 사형에 처할진댄 하필 이재명이냐? 나도 사형에 처하라” 하고 하며 검사에게 대들어 보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변호사 안병찬(安秉瓚)은 장인환(張仁煥) 의사가 미국인 스티븐스를 죽였지만 미국 법정에서 가볍게 언도한 사실 등을 들어 경한 형을 주장하였지만 결국은 사형 판결을 받게 되었다. 이재명 의사는“너희 법이 불공평하여 나의 생명은 빼앗지만 나의 충혼(忠魂)을 빼앗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 나를 교수형에 처한다면 나는 죽어 수십만 명의 이재명으로 환생(幻生)하여 너희 일본을 망하게 할 것이다”고 경고하였다.

1910년 9월 13일 그는 형장에서 조용히 찬송가를 부르고 의로운 일생을 마쳤다. 

◆참고문헌 

1. 장규식, 서울 독립운동 사적지, 독립기념관, 2008

2.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7-의열투쟁사, 1975

3.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http://www.koreanhistory.or.kr/ “이재명의거”(도서)/ 제3절 이재명(李在明)의 의거 

4. 한국역사정보통합시스템 http://www.koreanhistory.or.kr/ “이재명의거”(도서)/ 제14권 한말 순국·의열투쟁 

◆찾아가는 길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명동성당 방향으로 걸어오면 명동길이 나온다. CGV, 우리은행, 국민은행을 거치면 명동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명동성당 정문에서 가톨릭회관 사이에 위치 



※도움·출처: 서울시 문화체육관광본부·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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