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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박서보·김영나, 해답없는 ‘Why Dansaekwha?’

[기고]박서보·김영나, 해답없는 ‘Why Dansaekwha?’

기사승인 2015. 09. 1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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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영대표
장준영 한국미술품가격인덱스 대표
필자는 이 동영상의 비평에 앞서 박서보·이우환 작가 모두 한국미술의 흐름을 묵묵히 전개했고 그것을 지켜낸 거목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국미술사를 일구어내신 훌륭하신 분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하지만 비평은 향상을 위한 것이며 미술사에 ‘단색화’라는 ‘Oeng터리’ 개념이 설정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작은 ‘귀뚜라미’의 외침이다. 필자의 표현이 강렬한 것은 평론가들이 ‘지나치게 왜곡된 내용으로 대중에게 전달 하는 것에 대한 우려다.
‘문제를 제기하는 단색화 홍보용 동영상은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으며 링크가 삭제된 경우 필자가 보관한 파일을 업로드 할 예정이다.

1번 링크를 한 후 홈페이지 맨 하단에 위치해 있다.
http://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A%B5%AD%EC%A0%9C%EA%B0%A4%EB%9F%AC%EB%A6%AC+%EA%B9%80%EC%98%81%EB%82%98&sm=top_hty&fbm=1&ie=utf8
2번링크 : 1번 링크가 안될 경우
http://blog.naver.com/mayjayblues/220379013412
3번 : 2, 3 링크가 안될 경우로 필자가 동영상을 캡쳐해 보관하고 있다. 링크가 삭제되거나 공적인 토론에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서보 작가 “내 작품은 단색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국가경제는 물론 상업과 문화의 파급효과가 있는 비엔날레, 특히 베니스비엔날레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2015년 1월 23일 국제갤러리에서 녹화된 비디오는 올해 5월에서 8월까지 ‘단색화’ 홍보를 위해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인터뷰에 김영나 중앙국립박물관관장, 이용우 큐레이터, 하종현·박서보·이우환 작가가 참여했다. 침체된 미술시장을 끌어올리려는 원로작가들의 모습에 경의를 표하지만 등대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표류하는 미술계의 모습에 필자는 상당한 슬픔을 느꼈다.

이번 ‘단색화’ 거품의 진원지는 바로 일부 비평가들과 갤러리 그리고 그 주위를 형성하는 미술계카르텔(Kartell)이다. 석연치 않게 동영상에 김영나 중앙국립박물관 관장이 깊숙이 관여된 사실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동영상의 인터뷰에서 직접 언급되었듯이 ‘단색화’의 개념정립이 안되었고 특정 미술사조로 성립되지 않은 시점에서 김영나 관장의 거취(녹화장소)도 상당히 부담스럽다. 국가차원의 홍보로 중앙국립박물관에서 녹화했다면 훨씬 공신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박물관에서 녹화될 성격의 동영상이 아니었고 김 관장 역시 현직의 박물관장으로서 특정 미술시장의 활성화에 참여해야 될 자리는 아닌 것 같다. 동영상에는 미술역사가로 표시돼 다행이었지만.

김 관장이 서울대 교수일 때 펴낸 저서 ‘20세기의 한국미술’에서 70년대 미술의 흐름을 간략히 소개했다. 그 당시 미술운동과 관련된 작업으로 보지 않고 있으며, 그 영향에 대해 논한 적도 없고 ‘단색화’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모노크롬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몇몇 화가들의 동양적 자연관에 대해 논하고 있다.

필자는 황당한 동양철학적 용어들의 남발과 동일한 사상적 해석에 반대하는 것이지 동양적 자연관에 대한 작가의 표현의지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그녀의 객관적인 서술에서 상당히 학자다운 면모가 보였다. 이번 동영상 인터뷰에서 그녀는 분명 ‘단색화’로 주장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단색화’ 모의를 위한 인터뷰에 참석했는지 이해 할 수 없다. 김 관장이 아직 확신하지 않은 무엇이 있을까? 보이지 않는 외부압력이 있을까? 다행히 추후에 김 관장의 확고한 표현을 우리는 확인 할 수 있다.

동영상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의 대화에서 표출되는 ‘단색화’에 대한 개념이 의견이나 가정으로만 분출됐고 특정한 결론이 없다는 것이다. 이용우 큐레이터는 사회자로서 ‘단색화’를 의도적으로 정립하려는 끈질긴 노력만 보일 뿐이다. 그래서 아래 몇 가지 사항을 지목해본다.

이 큐레이터는 “모노크롬 이라는 서양식용어는 색채자체가 최종목적으로 서양미술의 가치와 형식이었다. 하지만 단색화는 예술적 실천 과정이며 결과이다. 자기정체성과 한국의 미학이 포함, 세계적 동시대의 미술문법과 관통하는 또 다른 언어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 큐레이터에게 묻고 싶다. 혹시 자신의 자아세계로부터 왜곡되어 표출되는 해석은 아닐는지? 챕터-‘해외의 모노크롬 회화와 왜곡된 한국미술계의 시각’에서 보았듯이 일부 작가는 색채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캔버스에 공간개념을 불러일으킨 루치오 폰타나, 추상형식을 통해 초월적 정신성을 구현하고자 했던 에드 라이하르트 같은 작가들은 내면적 세계의 몰입을 위해 집중한 작가들이었음을 상기해야 될 것이다(그림1, 2).

그림1-2
◇김영나 중앙국립박물관관장 - ‘단색화’는 모노크롬의 번역에 불과
‘단색화’라는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 놀라운 사실이 여기서 또 발견된다 이번 동영상에서 김 관장은 미술사학자로서 2012년 윤진섭 교수의 ‘단색화’ 개념이 단순히 모노크롬을 번역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인터뷰에서 윤진섭 교수의 ‘단색화’ 개념 설정이 중앙국립박물관 관장에 의해 무효화되는 순간이었다.

◇박서보 작가의 ‘단색화’부정 & 조앤기 교수 “서양에서 단색화 말해도 모른다”
두 번째로 박서보 작가의 대화에서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는 작가로서 모노크롬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그래도 단색화라면 그래도 조금 났다. 하지만 난 단색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중략...하지만 주의에서 그렇게들 하니 따라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즉 ‘단색화’를 단호히 부인한 것이며 비디오 ‘12분 18초’부터 묘법의 탄생배경을 말하며 다시 단색화라고 한다. 이 부분은 이미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단색화라고 가정한 상태에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디오 ‘8분 10초’로 돌아가 보면 박 작가는 “내가 작년에 L.A의 블럼앤포 갤러리에서 미시건대학의 조앤기 미시건대 교수가 단색화로 규정했는데 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하니 조 교수는 “그래도 서양에서는 단색화라고 해도 무슨 뜻인지 모르니 그냥 괜찮지 않느냐라고 자신을 설득했다. 나는 격렬하게 반대하는 것 아니라 내 생각이 그렇다”라고 했다.” 이 대화내용에서 단색화의 개념설정에 근원이 없음을 다시 한번 독자가 판달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용우 큐레이터 ‘단색화 운동’ 홀로 주장
이용우 큐레이터는 ‘단색화 운동’이라고 명한다. 그는 제도권에 대한 거부와 논란을 강하게 강조했다. 하지만 박 작가는 ”단색화운동을 하기 위해 거부한 것이 아니라 거부하는 ‘인간’들이 모여서 한 전시회들이다”라고 일축했다. 또 “80년대에 지배적인 운동이다. 민중미술의 반발을 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박 작가는 “단색화 작가들이 살아 나갈 길로 숨구멍을 트고 국제적 통로를 나가기 위해 집중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사회를 전횡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더불어 이우환 작가는 세력을 형성하는 것이나 체제에 대한 반항이 아니라 그때 할 수 있는 것이 그런 일이었다. 시간이 흘러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이우환의 사회저항운동으로 주장과 상반되는 견해이기도 하다.

당시 유명세를 타던 작가들은 미술계에 힘과 부(갤러리 인기작가, 대학교수 및 미술관련협회인사로 안정적인 작업생활)를 가지고 있을 뿐 체제를 반대해 운동을 할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어수룩한 체제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오로지 순수히 미술운동들을 열심히 주도하고 앞장선 사람은 ‘박서보’ 바로 그였다. 박 작가의 말은 “에꼴 드 서울의 전람회에 모인 작가들이 그룹이 아니라 한국성에 가장 접근하는 작가를 초대하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단색화적인 작가들이 모이게 된 결과”라고 했다.

◇이우환은 철저한 모노하로서 ’중층성’을 이해하자
‘모노하’에 대해 이우환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일본도 사실 적은 정보였다. 회화를 부정당한 상황에서 조각의 표현에 대한 물질의 중요성을 논한다. 뉴트럴하게 행위자체, 물질을 이용하면서 정신성이 깊은 것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단색화와 비슷한 양상이나 모노화는 물질을 생각하며 표현을 생각하고 회화적인 부분에서 회화가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중략…단색화는 뜻이나 모든 것을 배제해도 회화가 가능한…세계미술사에 특이할 만한 일이다”라고 했다.

죄송스럽게도 이 작가는 이 단색화 ‘놀이’에 어떤 역할도 부여 받지 못한다. 필자가 모노하를 짧게 설명하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놓고 이것을 통해 공간 속의 사물, 관계와 상황 등에 접근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60년대 후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 문학·연극·무용·미술·음악 전반에 걸쳐 기성문화에 대항하는 아방가르드 운동이었다.

세키네노부오씨의 ‘위상-대지’(1968년 제작)와 같이 부정과 긍정의 대비, 이우환의 ‘관계 항’을 통한 관계의 이치 등 주변적인 요소를 끌어들여 새로운 내용을 창출하는 작업들에 많은 일본작가들이 몰두했다(그림 3, 4). 물론 여기에 뒷받침이 되는 것은 대지미술과 미니멀리즘이지만 일본문화의 특유한 ‘중층성’, 즉 옛 것을 버리지 않지만 새것을 일본 것으로 발전시키거나 개량되는 다양한 특성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필자는 이 작가의 ‘관계 항’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그의 작품은 철저한 일본식 모노하이며 ‘중층성’의 정신세계에서 작품세계를 구축한 작가다. 그를 ‘한국의 모노크롬과 결부시킬 수 없다. 왜 이 작가는 스스로 ‘한국의 단색화’ 모의에 참전용사가 되려 하는가?

그림3-4
결국 홍보용으로 제작된 동영상은 단색화와 무관한 이우환·박서보 작가의 간략한 작품세계와 미술운동에 관한 내용이었다. ‘한국의 단색화’라는 어떤 그룹도 운동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단색 경향의 작가들이 있었어도 작품의 예술성과 국제성으로 보면 바다의 멀고먼 섬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동영상이 해외 비엔날레에 홍보용으로 만들었다면 설득을 위해 어느 정도 각색이 필요하지 않을까?

끝으로 우리가 배울 것이 있다. 동영상에서 박서보 작가의 말씀에 작가와 평론가 그리고 우리 젊은 학도들이 귀를 기울이자. 그는 “나는 21세기 디지털시대에 대응해서 어떻게 나아 갈 것인가를 나는 생각한다” 라고 하였다. 이 문제는 물론 백남준 선생님께서 제시하셨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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