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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째 고향에 가본 적 없습니다”…쪽방촌·독거노인의 추석나기

“20년째 고향에 가본 적 없습니다”…쪽방촌·독거노인의 추석나기

기사승인 2018. 09. 2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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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주민 위해 행사 진행하지만 참석 저조…“심리적 위축감 엄청나”
"내가 가면 부담이니까"…갈 곳 없는 독거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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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쪽방주민들이 구호물품을 받기 위해 길게 줄 서 있다./이욱재 기자
“추석이라고 다를 건 전혀 없어. 20년째 돈이 없어 고향에 못 가봤어...”

한때 노숙생활을 전전하다 서울 영등포 쪽방촌에 터를 잡은 김모씨(73)는 생활고로 그동안 명절 때 고향 내려가는 것은 엄두조차 못 냈다며 이 같이 말했다. 비좁은 쪽방촌 골목길 한복판에 폐 스티로폼을 깔고 앉아 휴식을 취하던 김씨에겐 이 곳이 삶의 안식처이자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기자가 “추석 어떻게 보내시냐”고 묻자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을 털어놨다. 그는 “과거 노숙하는데 누군가 내 휴대전화를 들고 가더라”라면서 “때문에 한참이 지나고서야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동네 아는 형한테 들었다”며 울컥했다.

서울 영등포역 6번 출구로 나온 뒤 걸어서 채 5분도 되지 않는 곳에 자리한 영등포 쪽방촌. 111년만에 찾아온 지독한 더위가 한풀 꺾이고 어느새 추석이 성큼 다가왔지만, 지난 17일 기자가 돌아본 영등포 일대 쪽방촌은 서울 도심 속 고립된 외딴섬처럼 쓸쓸하고 적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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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쪽방촌의 한 골목. 이곳에서 가장 넓은 골목으로 쪽방주민들 사이에선 ‘쪽방촌 명동’으로 불린다고 한다./이욱재 기자
기자는 이날 영등포역파출소의 협조를 받아 쪽방촌에 살고 있는 한 어르신의 집을 방문했다.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길을 지나니 월 20만원짜리 집이 나타났다. 성인 남성 두 명이 누우면 꽉차 다시 돌아 누울 수 없는 집이었다. 거주 환경도 상당히 열악했다. 생활에 필요한 가구나 변변한 집기도 없이 낡은 이불과 베개만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심지어는 방 옆 화장실은 문도 달리지 않아 사생활이 무방비로 노출된 데다 배수관이 고장났는지 계속 화장실에서 현관 쪽으로 물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나마 이날 영등포쪽방상담소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열매’로부터 후원을 받은 구호물품을 전달하면서 쪽방촌에도 온기가 감돌았다. 영등포쪽방상담소는 영등포 쪽방촌 주민들에게 후원받은 구호물품을 나눠 주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구호물품 세 박스를 받아 집으로 향하던 박모씨(76)는 “받은 구호물품 가운데 1개 박스는 딸에게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형욱 영등포쪽방상담소장은 “2004년부터 모금회의 도움으로 설과 추석에 주민들에게 상품권을 전달하다가 올해는 구호물품으로 전달해 드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아무래도 (과거에) 한풀 꺾여서 쪽방촌으로 들어오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심리적 위축감이 엄청나다”면서 “서울시와 기업들의 도움으로 고향방문행사를 진행하는 한편 고향에 못가시는 분들을 위로하기 위해 명절마다 윷놀이나 제기차기 등 행사를 진행하지만 오시는 분들이 많지 않다”고 했다.

◇ 갈 곳 없는 독거노인의 외로운 추석

서울 동대문구의 한 반지하방에서 홀로 생활 중인 한종석씨(73)도 추석을 앞두고 외로움을 토로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한씨는 사업 실패로 거의 피신하다시피 서울로 상경한 뒤 다시는 고향에 내려가지 못했다고 했다.

한씨는 “처음 상경하고 나서 도봉산에 소주 두병을 들고 바위절벽에 올라가 뛰어내릴 시도하기도 했다”면서 “추석이지만 고향이든, 어디든 갈 생각이 없다. 그냥 여기 있을 것이다. 형제들이나 다른 가족이 있지만 내가 가면 부담되니까...어쩌다 한 번씩 막내가 찾아오긴 하는데...”라며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내비쳤다.

인근 복지관을 찾아 적적함을 달래온 한씨는 최근 종양 수술을 받아 거동이 불편해져 복지관에 찾아가지 못하고 있다. 자칫 발을 헛디디기라도 한다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때문에 일주일에 한두번씩은 꼭 방문해 집안을 청소해주고 말동무가 되어주는 복지사가 한씨에게는 너무나 고마운 존재다. 기자가 한씨의 집을 방문한 이날도 복지사의 손길로 집안은 너무나 깨끗했다.

몸이 불편해 쉽게 밖으로 나설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추석인 만큼 한씨는 가까운 관할 주민센터에서 마련한 마을잔치에 나서 명절의 정을 잠시나마 느낄 생각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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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째 혼자 살고 계시는 한종석 어르신(73·남)이 거주하는 서울 동대문구의 반지하 방./이욱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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