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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영 전 총리 별세, 향년 89세…한국 외교·안보사에 큰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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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영 전 총리 별세, 향년 89세…한국 외교·안보사에 큰 발자취

이장원 기자 | 기사승인 2019. 10. 2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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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무장관, 안기부장, 국무총리...5공 국정 핵심
반기문 전 총장 멘토로도 잘 알려져
노신영 전 국무총리 별세
노신영 전 국무총리가 지난 21일 별세했다. 2011년 6월 노 전 총리의 모습. / 연합뉴스
노신영 전 국무총리가 지난 21일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5공화국의 국정 최전선에서 섰던 노 전 총리는 대한민국 외교·안보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받는다.

노 전 총리는 평안남도 강서 태생 실향민으로 서울대 법대 졸업 1년 전인 1953년 고시행정과에 합격해 1955년 외무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주 제네바 대표부 대사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에 발탁돼 외무장관(1980∼1982), 국가안전기획부장(1982∼1985), 국무총리(1985∼1987)를 두루 역임했다.

고시 출신 외교관으로 첫 외무장관에 오른 고인은 당시 신군부 정권과 미국 레이건 행정부와의 관계 정상화를 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 전 전 대통령을 설득해 외교관 69명을 해임하려던 공무원 숙정(肅正) 작업을 막았다.

안기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중국 여객기 불시착 사건, 사할린 상공 대한항공기 격추사건, 아웅산 테러암살사건 등 대형 사건들이 발생해 이를 수습하는 데 힘을 쏟았다. 1982년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석방을 건의하고 미국행을 극비리에 주선했다.

고인이 2000년 내놓은 ‘노신영 회고록’을 통해서는 아웅산 사건 당시 미국 측의 우회 권유로 비행 시간이 1시간 30분 더 걸려 아웅산 묘소 참배가 하루 순연되면서 테러 피해가 그나마 줄었다는 비화가 공개되기도 했다.

노신영 전 국무총리 별세
노신영 전 국무총리가 1986년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방한 당시 같이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고인은 18대 국무총리에 올라 총 2년 3개월간 총리직을 수행하며 김황식 전 총리(2년 4개월) 이전까지 최장수 총리 기록을 보유했다.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표와 함께 유력한 정권 후계자로 꼽혔던 고인은 1987년 고(故)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32년 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했다. 이후 1994년부터 2012년까지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노 전 총리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표적 멘토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70년대 초대 주 인도대사로 나갈 때 반 총장을 서기관으로 데려간 데 이어 방글라데시와 수교할 때도 반 총장을 동행시켰다. 1985년 총리 취임 당시 반 전 총장을 초고속 승진시켜 의전비서관에 임명한 일화는 유명하다.

고인은 함경도 함흥 출신인 서울대 법학과 동기생인 부인 김정숙 여사와 1954년 결혼해 슬하에 3남 2녀를 뒀다. 부인과 장미 90여종을 키웠으나 2009년 사별한 뒤에는 이를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22일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노 전 총리는 능력과 경륜의 공직자이셨다. 감사드립니다. 명복을 빕니다”라며 노 전 총리를 애도했다.

노 전 총리의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25일로, 장지는 대전현충원이다.

노신영 전 국무총리 별세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신영 전 국무총리 빈소.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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