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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영화 ‘백두산’과 ‘천문’의 차이점과 공통점

[칼럼]영화 ‘백두산’과 ‘천문’의 차이점과 공통점

기사승인 2020. 01. 1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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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극장개봉중인 영화 ‘백두산’과 ‘천문’엔 다른 듯 같은 공통분모가 있다. 우선 두드러진 면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중견배우들이 각각 두 명 씩 짝을 이뤄 극을 이끌어간다. 일종의 버디무비 형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표면상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한 편은 버디무비 전형이랄 수 있는 로드무비 플롯을 따르지만, 다른 한 편은 사극이다. 내용상으로 전자는 재난영화고 후자는 정치드라마다. 완전히 다른 장르다. 이렇듯 다른 포맷의 두 영화에서 교집합을 찾는다는 것이 무모해 보일 수 있겠으나, 두 영화 모두 현재 우리가 처한 역사적 맥락을 꼬집고 있다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부연하자면 두 영화엔 현시점에서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 소환돼 있다. 영화 ‘백두산’이 있을 수 있는 가상의 재난상황을 설정한 미래 시점에서 현재 대한민국을 소환하고 있다면, ‘천문’은 역사적 사실을 가공한 ‘팩션’(faction) 장르로 과거를 소환해 우리가 처한 현실과 대면케 한다. 이로써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한 외교적 상황이 역사적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혹은 가까운 미래에도 벽으로 부닥치는 현실임을 직시하게 한다.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어쩌면 우리는 일종의 종속주의(종족주의가 아니다) 담론에 포획되고 끊임없이 그와 같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저항의 역사를 반복해야 하는 숙명을 받아들여야할지도 모른다. 관념으로서 종속은 호시탐탐 역사의 줄기를 뒤틀고 우리 생활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마치 거대한 흐름인 양 출몰해서 광포한 힘을 이용해 우리네 삶을 ‘리셋’(reset) 시키기도 한다.

때문에 알량한(?) ‘종족주의’에 빠지지 말고 종속의 현실을 인정하고 현명한 외교적 판단을 내리라는 주문 또한 일견 현실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라도 사대적 사고에서 탈주하고 다른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말해야지 않을까 싶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사실 두 작품 모두 극복해야할 대상과 대안이 무엇인지 분명한 어조로 제시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부모가 아이들에게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곧바로 항의함으로써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갈 수 있는 잠재적 폭력의 고리를 끊으라고 가르치는 것과 같다.

천문이 상상력을 통해 조선의 찬란한 세종시기가 거저 온 것이 아니라 사대주의 패러다임을 극복하려는 치열한 투쟁의 결과물임을 전하고 있다면, 백두산은 가까운 미래에 한반도 주인들이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려는 의지가 결여됐을 경우 닥칠 가공한 재앙에 대해 경고한다. 동시에 결정적 상황에 주체가 되지 못하는 정치현실이 이미 재앙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여하튼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 개봉된 두 영화의 조합은 과거를 빌려와 미래를 경고하고 현실을 고발한다. 사회학적 관점으로 볼 때, ‘징후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두 영화 모두 상대적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나 가족주의에 감흥 받은 마이너리티의 희생을 다룬다. 그리고 일반적인 극전개가 그렇듯 이 희생제의가 자발적 행위임이 강조된다. 그런데 여기엔 가학과 피학의 모티브가 깔려 있다. 우리는 은근하게 가학의 위치에서 피학의 몫으로서 마이너리티들의 희생을 소비하게 된다.

조선시대 신분제에 역행한 장영실과 같은 천민출신 관료에게 했던 것처럼, 가까운 미래엔 소위 ‘이등국민’에게 전이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잠재적 차등으로서 새로운 사회적 갈등을 야기시키는 뿌리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차별적 사고의 ‘계보학적 기원’으로서 종속주의야말로 혁파해야할 대상이다.

사족으로, 영화 백두산은 재난 이후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비극 이후 희망일 뿐이다. 적어도 영화적 허구가 아닌 현실정치에서는 예상되는 비극을 최소화시키는 대안을 부단하게 모색하고 나서야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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