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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시집 ‘기울지 않는 길’ 장재선 시인…“우리 시대 공존의 구체적 모습 詩언어에 담아”

화제의 시집 ‘기울지 않는 길’ 장재선 시인…“우리 시대 공존의 구체적 모습 詩언어에 담아”

기사승인 2020. 01. 15.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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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선 시인

"공존을 주제로 한 시집입니다. 우리 삶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공존이 어떻게 구현돼야 하는 지, 시 작품의 은근한 언어로 꿈을 꾼 것입니다.”


시집 ‘기울지 않는 길(서정시학 발행)’의 저자인 장재선 시인은 아시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해 연말에 초쇄가 나온 이 시집은 이달에 재쇄를 찍는 등 독자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정통 시집으로 이례적으로 인기를 누리는 것은, 그만큼 공감이 크다는 방증일 것이다.


저널리스트로 30여 년 일해 온 장 시인은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 대립과 갈등이 심하고, 사회적으론 물신에 사로잡혀 있는 듯 보이나, 막상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사랑과 평화를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며 “그것을 시 작품을 통해 은유적이고 간접적인 방법으로 끄집어내어 서로 공감을 나누고 싶었다”고 했다.


장 시인의 이번 시집은 총 61편의 작품을 담고 있다. 1부는 이른바 인물 시편이다. 저널리스트를 직업으로 30여 년 일한 장재선이 만났던 문화, 체육, 교육계 인사들의 언행을 통해 공존의 메시지를 전한다. 배우 나문희, 최불암, 한혜진, 소리꾼 장사익, 가수 현숙, 산악인 엄홍길과 오은선, 축구인 홍명보, 출판인 김종규, 법조인 정성진, 시인 이해인과 고 김종길 등이 시편의 주인공들이다.


“시집의 앞부분을 인물 시편으로 한 것은, 시문학 장르를 어렵게 여기는 독자들에게 쉽고 흥미롭게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각 영역에서 빼어난 성취를 한 분들인데, 특히 일상의 언행을 통해 공존, 통합의 가치를 실천하는 모습을 부각했습니다.” 


'고모할머니 나혜석이/ 한 세기 전에 길을 열어놨기에/ 그녀도 그 길을 걸어/ 칠십육세에 도달한 배우로/ 당당히 월계관을 쓴 채 말했다.// "지금 아흔여덟이신 친정어머니와/ 그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나의 부처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나의 친구 할머니들, 제가 이렇게 상 받았어요/ 여러분도 다들 그 자리에서/ 상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녀 덕분에/ 졸지에 악수를 하게 된/ 부처님과 하나님이/ 쌍으로 축원하는 게 들렸다./ "나무아미타불, 아멘!" (‘수상 소감 덕분에-배우 나문희’ 전문)
 
2부는 가족이야기를 담았다. 젊어서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슬픔을 넘어 현재의 사랑에 대한 소망으로 이어진다. 어머니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고 시인은 확신한다. 시인은 어머니를 '거인 같은 정신세계를 지닌 분'으로 기억한다.


‘들판이 너른 고장이라 그랬을까, 나 어렸을 때 전국 각지에서 동냥아치들이 왔지. 어머니는 늘 나더러 동네 모정 아래에 따순 밥과 반찬들이 든 바가지를 갖다 놓으라고 하셨어. 심부름이 싫어 투덜거리는 내게 어머니는 말씀하셨지. 집 대문에서 얼굴을 보며 밥을 받으면 동냥아치 가족의 엄마 아빠는 마음이 거시기할 것이라고. 지금 되돌아보니, 그때 어머니는 삼십대 초반이었어. 나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살고 있는데, 아직도 그 바가지의 따순 기운이 손바닥에 느껴진다네.’ (‘밥 바가지의 온기’ 전문)
 
장 시인은 서른아홉에 병을 얻어 타계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담담히 되돌아봤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약속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살림이 더 일어나면 고아원을 설립하자고.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가셨지만, 저는 그 꿈이 가장 큰 유산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집 3부는 '공간'을 노래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앞에서 부다페스트 다리 위로, 하와이에서 고려 궁지로, 시공을 초월한 작품으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역사가 껴안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는 인간의 욕망과 불완전이 주는 존재론적 슬픔이 깃들어 있으나, 그것을 궁극적 긍정으로 전화(轉化)하는 계기를 예민하게 포착해낸다.


4부는 연시(戀詩)로 '동행'의 소망을 노래한다. 그 동행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더라도 사랑의 기원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함께 가겠다는 소망을 보듬는다.


‘길에게 꽃을 바치네/내가 부축하지 못하는/그대를 맞아/먼 나라로 가는 꿈을 열어줄/길에게 꽃을 바치네’  (‘길에게 꽃을 바치네’ 중)

               

 ‘네가 돌아올 것을 믿지 않으나/편지지에 손톱을 눌러 새긴 나날의/ 고된 숨결을 사랑하여/나는 오늘도 편지를 쓴다.’ (‘매일 편지를 쓰며’ 중)
 
5부는 갈등과 대립이 극심한 우리 공동체에서 겪는 아픔을 서정의 힘으로 이겨내려는 시인의 의지를 표현했다.
 
‘세밑의 저녁 위로/흰 눈이 싸락싸락 내리고/바람이 멎는다/겨울도 깊어지면/소리가 없는 것/산 아래 마을에서/패 다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홀홀히 털고 웃으며/미리 만드는 무덤/그 속에 악플 들어가지 않아/생애로부터 잡풀 솟지 않고/뜻 없이 흰 눈만 쌓여있게 되기를’ (‘침묵으로부터’ 전문) 


"모든 글은 장르만 다를 뿐, 세상과 소통하는 길이라는 점에서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시대를 바라보며 제가 쓰는 글들이 '기울지 않는 길'로 가는 것이길 바랄 뿐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장 시인은 '시문학'을 통해 등단해 시집 '시로 만난 별', 산문집 '영화로 만난 세상' 등을 펴냈다. 국제펜(PEN) 회원으로,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과 세계한글작가대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가톨릭 매스컴상, 임승준 자유언론상(문학부문), 서정주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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