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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前대통령서거] 남북 첫 정상회담의 주인공

[김前대통령서거] 남북 첫 정상회담의 주인공

기사승인 2009. 08. 18.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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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첫 정상회담의 주인공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는 남북 화해협력 시대를 개척하고 이끌어간 주역들이 그 결실의 과제는 후대에 남기고 하나 둘씩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고 있음을 새삼 상기시킨다.

2000년 6월13일 평양순안공항에서는 반세기만에 남북한의 정상이 손을 맞잡아 전 세계에 진한 감동을 전하면서 남북화해협력의 시대를 열었다.

김 전 대통령에 앞서 1998년 6월 500마리 소떼를 몰고 첫 방북했던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2001년 별세했으나 그가 열어놓은 길은 그후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거쳐 남북 사이에 수많은 인원과 물자가 오가는 여러 육.해.공로로 확대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직과 함께 같은 기조의 대북정책을 이어받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2번째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화해협력과 교류를 제도화함으로써 통일의 여정을 되물릴 수 없게 만들려 했으나 남북관계가 10여년만에 최대의 고비를 맞던 지난 5월 비극적으로 생을 마쳤다.

1997년 대통령 당선 기자회견에서 "김정일 총비서와 정상회담을 할 것을 공식제안한다"고 밝히고 1998년 2월 취임사에서도 이를 재확인한 김 전 대통령은 재임중 대북 포용정책의 기조를 견지하며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금강산 관광을 비롯한 대북 경협사업을 승인지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를 바탕으로 2000년 6월15일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5개항의 6.15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 냈고, 후속 각급 회담을 통해 경의선 연결과 개성공단 개발, 이산가족 상봉 등으로 남북간 화해협력과 교류를 구체화해나갔다.

그는 그러나 임기말에 새로 출범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정부와 대북관에서 근본적인 차이로 인해 대북정책을 놓고 마찰을 빚어야 했다.

그는 퇴임 후에는 남북화해의 전도사와 파수꾼으로 활동했으며 남북관계가 고비와 위기를 맞을 때마다 대북특사 1순위로 거론돼 노무현 정부 때 그의 재방북 문제가 남북간에 구체적으로 논의되기도 했지만 결국 북한땅을 다시 밟지 못한 채 생을 마쳤다.

지난 5월23일에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사상 2번째 정상회담을 가졌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함으로써 남북정상회담의 남측 주역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정상회담에서 남북 경제공동체를 지향하는 각종 구체적인 경제협력 사항들을 담은 10.4정상선언을 이끌어 내고 남북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다양한 경협 프로젝트들을 추진하려 했으나 임기말이라는 여건 때문에 진전을 시키지 못하다가 정권교체로 이 합의는 이행동력을 상실한 상황이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5월25일 조선중앙통신이 전한 조전을 통해 "권양숙 여사와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했던 김정일 위원장도 작년 8월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진 이후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채 정상적인 통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셋째 아들인 정운을 후계자로 내정하고 국가 운영은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에게 대리시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남북관계 경색 속에서 북한의 대남분야 관계자들은 건강이 좋지 않은 김 위원장에게 보고할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한의 정권교체와 이러한 북한의 내부 정세 변화는 정주영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던 남북관계의 진전을 정체.역행시키는 동시에 그 돌파구를 찾는 데 어려움을 낳고 있다.

그러나 지난 10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을 통해 금강산 관광과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시동을 걸고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북미관계에서도 대화가 모색되고 있다.

현정은 회장의 남편이자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지에 따라 대북사업을 이끌던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은 대북송금 특검의 조사를 받던 중 2003년 8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북한에선 2000년 정상회담에 배석했던 김용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 림동옥 후임 통일전선부장이 각각 2003년 10월과 2006년 8월 교통사고와 지병인 폐암으로 사망했다.

또 2007년 남북정상회담 준비의 실무책임자였던 최승철 통일전선부 부부장은 '대남정책 실패'의 책임을 지고 작년에 처형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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