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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엘리트체육과 엘리트주의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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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엘리트체육과 엘리트주의의 딜레마

기사승인 2019. 02. 1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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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교수
러시아 영화 ‘아이스’가 지난주 개봉됐다. 피겨스케이팅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스포츠 영화임과 동시에 뮤지컬적인 표현이 차용됐다. 내용상으로는 진실한 사랑을 찾아가는 로맨스 영화이지만 인생의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확실한 어조로 알려주고 있는 교훈적인 요소가 있다. 따라서 텍스트적인 면에서 다양한 독자의 해석이 가능해 보이진 않는다. 다만 콘텍스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영화는 현재 러시아에서 구소련의 엘리트 체육시스템이 개혁개방 이후 어떻게 변모해 가는지 혹은 그 지향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만약 자녀를 체육 영재로 키우고 싶은 부모가 있다면 자녀와 같이 보기를 권한다.

필자가 극장 개봉영화를 소개하며 취하는 입장은 영화 자체에 대한 비판보다 텍스트에 내재된 콘텍스트를 읽어내고자 함에 있다. 같은 맥락에서 필자가 주목한 것은 이 영화의 우리나라 개봉 시점과 체육계의 문제가 오버랩 된다는 점이다. 지금 국내 빙상계는 오랜 기간 어린 선수들에 가해져 왔던 악행들이 고발되고 그 구조적 폐해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소위 체육계 미투가 시작됐고 그 끝은 어디인지 모른다. 대통령까지 나서 엘리트 체육에 대한 전면 재고를 주문한 상태이다.

영화의 개봉 시점이 절묘하게도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와 시의적으로 일치한다. 우리나라도 군사독재 시절 과거 동구권의 엘리트 체육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리고 일정 부분 성과를 올린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 전반의 의식이 깨어나면서 그간 꾹꾹 눌러왔던 억압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영화 ‘아이스’는 스포츠를 통해 우리가 공유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제시하고 있다.

영화에서 피겨스케이팅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7살 소녀는 신체적인 핸디캡과 불우한 가정사에도 불구하고 엘리트 체육의 혹독한 교육을 받고 최고의 스타에 등극한다. 그러나 세계적인 스타가 되는 길목에서 척추부상이라는 복병을 맞나 좌절한다. 설상가상으로 연인이자 페어스케이팅의 최고스타인 파트너는 그녀를 떠난다. 모든 것을 잃은 주인공 나디아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고향인 바이칼호수에서 우여곡절 끝에 이류 아이스하키선수의 사샤의 도움으로 재활에 성공한다. 나디아와 사샤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하지만 최고의 스타를 가만히 둘 수 없는 스포츠계는 나디아를 다시 무대로 불러들인다. 자신을 버렸던 연인과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또다시 파트너가 돼 공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하지만 신뢰가 무너진 두 사람은 결국 공연을 망치고 만다. 이때 그녀를 일으켜 세운 사샤와 관중의 응원으로 나디아는 자신의 공연을 마무리하며 메달이라는 목표보다 값진 사랑과 행복을 얻는다.

스포츠영화의 정석은 ‘위대한 실패’에 있다. 우리가 감정이입 하는 캐릭터는 챔피언이 아니라 도전자이기 마련이다. 처음부터 챔피언은 없다. 우리는 모두 도전자다. 이러한 도식을 통해 우리는 위로받는다. 하지만 현실 사회는 챔피언을 제외한 모든 이가 실패자다. 이 같은 배경엔 국가와 자본이 자리 잡고 있다. 국가와 스포츠가 만나면 국위선양이라는 성과주의 모델이 되고 스포츠와 자본이 만나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수익모델이 된다. 이러한 모델을 우리는 매체를 통해 연일 주입받고 있다. 한국 축구가 카타르에 패한 날, 아시안컵에 대한 기사가 갑자기 매체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더 이상 국위선양도 수익도 창출할 수 없는 모델은 방출된다. 어떤 스포츠스타의 이적료가 얼마인지, 소유하고 있는 재산의 가치가 얼마인가 등 알 필요도 없는 황색 저널 수준의 정보들로 넘쳐난다.

성과지상주의 모델인 엘리트 체육의 고질적 문제에 대한 개혁이 요구된다. 그러나 체육계 뒤의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는 국가와 자본의 자정을 통한 근본적인 개혁이 가능한지는 의문이 든다. 일반적으로 사회과학에서 ‘엘리트주의’에 대한 논의는 소수 엘리트 그룹에 의해 주도되는 사회시스템의 문제와 한계를 지적하는 데서 출발한다. 관계부처와 문화체육계 엘리트들에 의해 개혁이 주도될 수밖에 없는 현 상황에서 엘리트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엘리트들의 고뇌가 요구된다는 점 또한 아이러니다. 엘리트 체육 이외에도 비근한 사례가 사회 곳곳에 포착된다. 딜레마라 아니할 수 없다. 위로부터의 개혁이 어려운 이유이다. 국가와 자본에 복무하는 엘리트 그룹에 개혁의 주권을 넘겨주기보다 우리들 의식의 전환을 도모해야 할 시점이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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