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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문의 추억

[칼럼] 고문의 추억

기사승인 2019. 05. 13.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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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교수
과거 칠레의 극악한 독재체제였던 피노체트 정권 당시 망명한 반체제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희곡을 각색한 영화 ‘죽음과 소녀(Death and The maiden, 로만 폴란스키 감독, 1995)’는 국내 개봉 당시 ‘시고니 위버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됐다. 90년대 에일리언 시리즈에서 여전사의 이미지로 이미 스타덤에 오른 시고니 위버의 명성에 편승한 제목임이 분명해 보인다. 죽음과 소녀라는 영화의 원제목은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서사에 녹아있는 슈베르트의 현악곡 ‘죽음과 소녀’와 같은 제목이다. 슈베르트의 곡을 영화음악으로 사용하는 경우엔 대부분 불안의 정서가 녹아있다. 언 듯 보기엔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선율과 정서적 혼란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슈베르트 시대를 관통하는 그 시대의 이면을 톺아보면 왜 많은 영화제작자들이 슈베르트를 빌어 불안의 정서를 표현하려 하는지 이해가 된다.

우리나라 영화 중에서도 최근 ‘마약왕’에서 슈베르트의 음악이 사용됐다. 주연배우인 송강호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물론 평단에서도 외면을 받은 작품이다. 그러나 적어도 마약제조와 유통으로 암흑가의 왕이 된 주인공이 슈베르트 연구회 회원으로 설정된 점은 필자에게 흥미롭게 느껴졌다. 경찰과 대치하는 마지막 신에서 송강호는 광기의 연기를 펼치는데 이때 극 중에서 틀어놓은 음악이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이다. 마왕과 같은 격정적인 곡도, 피아노 트리오와 같은 유려한 선율의 곡도, 비장하게 바짝 다가서는 현악곡도 불안과 혼돈의 정서가 반영된 이유는 슈베르트가 관통한 시대가 바로 그런 시대이기 때문이다. 예민한 천재가 직면한 세계는 일상이 온통 장벽이 솟아있는 감옥 자체였다.

슈베르트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후 10년째 되는 해인 1797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1828년 31세가 되는 해 짧은 생을 마쳤다. 그가 관통한 18세기 말과 19세기 초는 혁명으로 고무된 시기임과 동시에 반동의 시대였다. 나폴레옹은 혁명정신을 유럽에 전파한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를 추종한 민중들을 배반해 황제가 되고 막강한 제국을 통치하려 했으나 그마저도 실패한다. 이후 유럽은 ‘빈체제’가 성립되고 프랑스혁명 정신은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반동의 질서로 되돌려진다. 이를 수행한 이가 메테르니히 수상이다. 그에 의해 오스트리아는 경찰국가체제가 된다. 이러한 시기에 슈베르트는 창작을 해야만 했다. 천재가 만든 아름다운 선율에 억눌린 시대의 정서가 녹아든 이유다.

메테르니히가 통치한 시대를 역사가들은 비더마이어의 시대라고 부른다. 의역하면 ‘평범한 사람들의 시대’이다. 혁명기에 거리로 나서 왕을 끌어내리고 체제 자체를 바꾸려던 시민들이 구체제가 동원된 경찰력에 의해 다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스스로를 유폐시킨 시대를 의미한다. 각자의 가정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고 서로를 위무하는 일 이외엔 딱히 방법이 없어 보이는 반동의 시대는 ‘빈회의’ 이후 30년간 지속된다. 마르크스 역시 이 시대에 태어나 젊은 시절을 보냈고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고자 혁명을 주도했다. 여하튼 슈베르트의 음악엔 비더마이어와 같은 소시민들이 두려움을 떨쳐 내고자 하는 그네들의 희로애락이 스며들어 있다.

마약왕의 배경이 되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의 분위기는 메테르니히의 시대와 닮아있다. 오랜 통치로 독재체제를 연장하기 어려워지자 점점 더 폭력적인 경찰력에 의존하던 유신체제가 총탄 몇 방에 무력하게 무너지나 싶었는데, 돌연 또다시 전두환과 추종세력들의 쿠데타를 막아내지 못했다. 결국 시민들은 대한민국을 군부세력에게 넘겨주고 만다. 이때의 정서와 맞아떨어지는 음악이 슈베르트다. 실제로 이 시기 슈베르트의 음악은 거리에서 많이 소비됐다. 당시 웬만한 다운타운가에는 ‘보리수’와 같은 이름의 다방이 하나쯤 있었다. 캄캄한 어둠 밤 성문 앞 우물가의 보리수나무 곁을 지나며 그 그늘 아래 휴식을 취하며 꿈꾸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당대의 평범한 소시민들은 보리수라는 이름의 다방에서 서로를 위무했다. 분명 그 시절은 우리에게 비더마이어들의 시대였다.

다시 글의 서두에 소개한 ‘죽음과 소녀’로 돌아가 보고자 한다. 앞서 이 영화에도 슈베르트의 곡이 사용됐다고 소개했는데, 그 음악이 배경이 되는 장면이 끔찍하다. 남미의 어떤 나라로 소개되는 영화의 공간은 독재정권의 폭정을 이겨내고 시민들이 자유를 되찾은 곳이다. 이곳의 과거는 참혹했다. 온갖 고문이 자행된 탓에 살아남은 사람들 대부분 트라우마가 있다.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들도 그런 사람들이다. 헤라르도 에스코바는 인권변호사로 독재체제 이후 민주정권의 대통령으로부터 과거 정권의 고문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의 위원장을 위촉받는다. 극 중 주인공인 아내 파올리나는 헤라르도를 도와 독재에 항거하다가 모진 고문을 받고 정신적인 고통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다. 이들 앞에 우연히 나타난 인물이 미란다라는 의사이다. 문제는 이 사람이 바로 파올리나에게 악랄한 고문과 성폭력을 가한 인물이었으며 그가 그녀를 고문할 때 틀어놓은 음악이 슈베르트의 현악곡 ‘죽음과 소녀’였다.

영화는 화해의 정서로 끝을 맺는다. 독재정권의 수하인 미란다에게 진실을 고백하게 하고 에스코바 부부는 그를 용서한다. 이들은 용서를 통해 살아남은 자들과 희생당한 이들을 대신해 승자임을 확인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영화인 듯 싶다.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용서가 이뤄졌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하기 직전 당선자 신분이었던 시기, 12·12사태를 주도해 국가반란을 일으킨 죄로 옥살이를 하던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대한 사면을 단행한다. 전임 대통령인 김영삼 대통령 시기에 이루어졌으나 실상은 국가통합을 위해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과의 협의가 있었다. 용서를 통해 화해를 도모하고 역사의 승자임을 널리 알리고자 했음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쿠데타세력에 의해 내란음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죽음 직전까지 갔던 피해자이다. 그런 이가 행한 용서라 더욱 대인의 풍모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그런 김대중 대통령도 자신으로 인해 안기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다 불구가 된 아들 김홍일 전 의원에 대해선 끝내 미안함을 놓지 못하였다고 전해진다.

아버지를 대신해 평생을 불구의 몸으로 고통받던 김홍일 전 의원에 대한 부고 소식이 지난 4월에 하순경에 있었다. 비슷한 시기, 전두환씨에 대한 공판소식이 전해지기도 하고 5·18 희생자들의 한(恨)에 한을 하나 더 덧댄 정치인들의 발언도 있었다. 용서와 화해의 정서가 무색해지고 도리어 분노의 정서를 들끓게 하였다. 한편 당시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두 인물 간의 진실 공방이 이러한 뉴스의 꼬리를 물었다. 정치권과 학생 운동권을 싸잡아 내란을 음모했다는 죄명으로 입에 재갈을 물리려 했던 군부의 공작에 정보기관으로 붙잡혀와 온갖 고문을 당했던 80년 대학가 운동권의 상징이었던 현직 의원과, 작가로 전업한 전직 정치인 간에 이루어진 과거 행적에 대한 진실 공방은 소설보다 더 소설적이다.

일관된 행보를 보인 전직 정치인에게 변화무쌍한 행보를 보여 하마평에 자주 올랐던 현직 의원이 진실 공방을 벌였다. 어찌 된 연유인지 후자에게 연민의 정서가 느껴지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안위만을 위해 스스로를 유폐하던 70~80년대 비더마이어 시대, 일상으로 펼쳐진 감옥을 뚫고 나와 고문을 받으면서도 독재타도를 외쳤던 이인데, 설사 고문의 고통으로 어떤 진술을 했다 해도 그를 탓할 이 별로 없을 것 같다. 이후 그가 자신의 안위를 위한 행보를 했든, 어떤 정치적 전향을 했든 그리 관심이 없던 시점에서 새삼 고문을 추억하며 변절을 말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타깝게 다가온다. 공연히 그의 젊은 시절이 아깝다고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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