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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 가을산의 보물 송이버섯

[고대화의 멋있는 음식이야기] 가을산의 보물 송이버섯

기사승인 2014. 09. 19.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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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을의 냄새가 납니다. 그렇지요?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도 불고요. 요사이 산 가보셨나요? 이제 산에도 가을이 와서, 도토리도 익어가고, 각종 나무열매도 익어 갑니다. 얼마 전에 주말 산행을 갔었는데, 청량하고 시원한 바람, 아릿한 가을 산 내음에 푹 빠졌답니다.


가을 산이라.... 몇 년 전에, 몇몇 지인의 소개로 강원도 양양에 가서, 송이버섯을 대접받은 적이 있습니다. 가을 산에 올라가 직접 송이버섯을 따 산 아래로 가지고 내려와 구워먹는 잊을 수 없는 호사를 누렸지요. 가을 달이 둥실 떠 있는 강원도 깊은 산 아래 야영장. 딱 이맘때입니다. 금덩이만큼 귀하다는 가을의 상징, 송이버섯을 처음 만난 날이.


송이버섯은 우리나라의 식재료 중에서 가장 귀한 식재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습성이 너무 까다로워서, 소나무라고 아무데서나 자라는 게 아니고, 태백, 소백산맥에 이르는 수령 20~60년 된 몇몇 적송 소나무 숲에서만 자란답니다.  


게다가 송이버섯은 기후에 아주 민감 합니다. 가을에 온도가 19도정도가 되면 균사가 갑자기 발육하여 2주일이면 나타난다고 합니다. 9월 중순에서 10월 사이, 온도와 일조량, 강수량 등등 여러 조건이 딱 맞아야 비로소 나타나는 거지요. 그렇게 희소가치가 높은 만큼 가격이 아주 비쌉니다. 옛날에는 땔감으로 나무를 잘라내고 낙엽도 긁어내어 송이의 발생조건이 좋았는데, 지금은 소나무 숲이 울창해져서 빛을 받지 못하고, 또 낙엽이 두껍게 쌓여서 그 발생 빈도가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심마니들사이에는 “송이가 있는 곳은 시집간 딸에게도 안 가르쳐 준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더 귀해진 거지요.


송이버섯은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즐겨 먹고 있습니다. 가을철의 2, 3주간 일본상점에는 “송이버섯열풍”이 붑니다. 고사리 잎 위에 송이를 진열해놓고 점원들은 송이버섯의 효능을 목청 높여 외친다지요. 가격이 아주 비싼데도 어떻게든 맛을 보려고 줄을 선답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송이는 그 품질이 아주 우수해서,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답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송이버섯을 천상의 음식으로 여겨 왔습니다. 깊은 산속, 늙은 소나무의 기운을 받아서 올곧게 자라는 송이버섯은 버섯 중에서도 으뜸 이라 하여 아주 귀하게 여겼지요. 소나무는 모든 나무의 으뜸으로 높은 벼슬인 공경에 해당되기 때문에 나무 목(木)변에, 제후 공(公)을 쓰는 송(松)이라는 글자를 쓰게 됐다고 하며 일본에서도 "소나무에는 신(神)이 머문다" 라고들 한답니다.


이러한 귀한 소나무의 정기를 받아 자라는 송이버섯은 자연히 신선의 음식으로까지 칭송받게 되었습니다. 고려시대 학자 백운거사 이규보는 "신선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은 송이 버섯을 먹는 것"이라 극찬 하였으며, 조선시대 학자 목은 이색 또한 "바람소리와 이슬만 먹고 자라는 고고한 송이를 먹으면 온몸의 기운이 평온해진다"하며 즐겨먹었다고 합니다.


송이버섯은 생으로도 삶아서도 여러 가지로 먹을 수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구워먹는 것이 가장 향을 잘 즐길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최고의 송이는 하얀 줄기 위에 앉아 있는 검은 대가리가 완전히 열리기 전에 먹어야 한답니다. 잘생긴 송이는 그 생김새도 아주 멋있습니다. 시원하고 미끈하게 잘생긴 송이버섯을 석쇠에 올려 살짝 굽습니다.


먼저 시원하고 짜릿하고 향긋한 소나무의 향기가 코에 스며듭니다. 깊은 산 속 소나무의 향기입니다. 버섯을 손으로 찢어 입에 넣고 한 조각 씹어봅니다. 사각 착하게 씹히는 식감. 씹다보면 약간 고기처럼 조밀한 질감이 서서히 느껴집니다. 좀 더 씹으면 투박한 흙맛도 약간 나고, 고소한 견과류의 느낌도 납니다. 씹을수록 부드럽고 달콤한 맛이 올라옵니다. 끝맛은 허전하지 않고 약간은 묵직한 담백함이 있습니다. 끝까지 코와 입에 감도는 소나무의 향기. 가을 산이 주는 최고의 멋진 음식입니다.


송 이 버 섯 (松蕈)                김 수중 (인조~숙종연간 중신)

흰 이슬 서쪽재에 내리고
신선초 송이버섯 돋았구나
한가로움에
가을풍취 일으키네
어찌 다만
저녁상에만 고우랴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 강원도 양양, 경북 봉화와 울진에서는 송이버섯 축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물론 너무 비싸기는 하지만, 어쩌다 한 번 정도는 모처럼 호사를 누릴 기회이지요. 우리나라의 송이버섯은 일종의 신격화된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송이버섯을 처음 만난 그 날처럼 깊은 산 속에 홀로 피어나 가을 달빛에 비친 송이의 모습은 어떨까요.


이병주의 소설 <산하>에 나오는 구절처럼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되고,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된다.”는데. 깊어가는 가을 청량한 달 빛 아래서 송이버섯을 구워먹는 호사는 언제쯤 누릴 수 있을까요. 아니, 위의 식구처럼 어찌 다만 저녁상에만 곱겠습니까. 설령 먹지 못하더라도 그 자태를 볼 수 있는 것만도 호사겠지요. 이번 가을에는 송이버섯을 찾아 강원도로 떠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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