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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흔들리는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구조조정’ 여파 확산

[르포] 흔들리는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구조조정’ 여파 확산

기사승인 2016. 04. 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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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 정문. /사진 최현민 기자 bbaromy4@
“현대중공업이 기침하면 우린 감기에 걸릴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하물며 기침 정도가 아니라 중병이 아니냐는 염려가 나올 정도인데..” 현대중공업이 둥지를 튼 울산 동구 김원배 구의원의 푸념이다.

국내 평균 연봉이 가장 높은 도시, 억대 연봉자가 가장 많은 도시, 울산이 갖고 있는 다양한 타이틀이다. 울산은 크게 3개의 축으로 움직인다. 현대자동차가 있는 북구. SK에너지가 있는 남구. 그리고 현대중공업이 있는 동구다. 하나같이 국내 각 산업군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이다. 그런 울산이 흔들리고 있다. 한국 조선업계의 자존심 ‘현대중공업’이 있는 동구가 문제다.

26일 방문한 울산 동구는 전쟁터 같았다. 정부가 조선업계 자구노력에 촛점을 둔 구조조정안을 발표하며 현대중공업을 뒤흔들었고 회사는 10분기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는 기분 좋은 실적을 밝히면서도 그룹 계열사 5개사 사장의 긴급담화문을 통해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했다.

동구 대송시장에선 현대중공업 노조원들이 최근 발생한 5건의 사망사고를 알리며 시민들을 상대로 선전전을 펼쳤고 오후 6시 퇴근시간에 맞춰 민주노총은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같은 내용으로 대규모 집회를 가졌다. 출퇴근 하는 근로자들 사이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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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6시 퇴근시간에 맞춰 현대중공업 본사 정문 앞에서 민주노총이 산업재해와 관련한 규탄 집회를 열었다. / 사진 = 최현민 기자 bbaromy4@
세계 조선업계 1위 현대중공업은 2014년 4분기부터 9분기 연속 적자로 총 4조8000억원의 손실을 봤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핵심은 인력 감축이었고 여파는 곧바로 지역 경제 위기로 이어졌다.

울산에서 15년째 택시기사를 하고 있는 정 씨(66)는 “작년 여름휴가 전까지는 100㎞를 운행하면 10~11만원을 벌었지만 지금은 150~170㎞를 운행해도 10만원을 채우기 힘들다”며 “자동차공장이 있는 중구와 화학단지가 몰려있는 남구는 택시 이용률이 높지만 현대중공업이 위치한 동구는 택시 승객이 현저히 감소했다”고 하소연했다.

울산 남목시장에서 수십년간 자리를 지켜온 상인들은 “현대중공업 구조조정 여파로 주민들 발길이 뜸해졌다”며 “가게 하루 평균 매출이 10만원에서 많게는 20만원 가량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현대중공업 정문 앞 서구동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박 씨(57)는 “밤 10시가 넘으면 거리에 사람이 없다. 그러다보니 최근 택시기사와 노래방 등 영세사업자들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면서 “외환위기 때도 겪지 못한 불황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기준 울산 동구 인구는 17만5000명 수준으로, 1년사이 3000명 이상 줄었다. 김원배 울산 동구 구의원은 현대중공업이 임직원 1500명을 감원한 영향이 크다고 봤다. 주소를 울산으로 두지 않는 탓에 실제 통계에 잡히지 않는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이동은 훨씬 많았을 거라는 설명이다. 이들이 주로 묵었던 원룸의 공실률이 50%를 넘어섰다는 것을 근거로 내밀었다.

확인차 울산 동구 방어동, 소위 ‘꽃바위’ 인근의 부동산을 찾았다. 1년 전 월 55만원 수준의 원룸이 지금은 35~40만원 수준으로 내렸으니 지금이 원룸을 구하기에 적기라고 부동산업자는 설명했다. 집단 기숙형태로 많게는 10명이 단체로 지내던 아파트들의 월세는 140~150만원선에서 80~90만원선으로 떨어졌다.

꽃바위는 현대중공업이 지난해 11월 이후 1건도 수주하지 못한 해양플랜트 사업부문이 몰려 있는 동네다. 저유가로 글로벌 오일업체들이 해양플랜트 발주를 줄줄이 미루거나 보류했고 이미 계약했던 물량까지 파기하기에 이르렀다. 직격탄을 맞은 조선3사의 해양플랜트 인력감축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2014년말 1만6795명의 현대중공업 해양플랜트 하청 근로자는 지난 3월말 기준 1만2074명까지 줄었다. 1년 3개월만에 4721명이 떠난 셈이다. 이형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사무장은 내년 일감이 떨어지면 인력감축 삭풍이 몰아칠 테고 4000~5000명 수준까지 해양부문 근로자가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울산에선 동구에 위치한 대왕암 유원지 개발 등 관광 인프라를 육성해 새로운 먹거리를 찾자는 움직임까지 나오고 있다. 17만3000여명의 주민 중 현대중공업 정규직과 사내하청 직원들 포함 무려 6만명이 거주하고 있는 동구에서 현대중공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건 아이로니컬하다.

그럼에도 현대중공업과 울산 동구의 미래가 희망적이라는 메시지를 매매가 줄어 울상이던 꽃바위 인근 부동산에서 찾았다. 부동산 테이블엔 ‘한국 조선 빅3, 세계 해양플랜트 수주 80% 싹쓸이’ 2012년도 신문기사가 스크랩 돼 붙어 있었다. 이미 4년도 더 된 신문을 붙여놓은 이유를 물으니 “동구 주민들의 현대중공업과 지역에 대한 애착은 대한민국 최고다. 당장이라도 경기가 살아나면 일거리를 잔뜩 갖고 올 것으로 다들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울산이 가진 또다른 타이틀은 ‘전국에서 주민 생활만족도가 가장 높은 도시’다. 지난달 한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울산광역시의 주민 생활만족도는 67.8%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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