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6·25전쟁 66주년 특별기획] 박남수 예비역 육군중장 대담

[6·25전쟁 66주년 특별기획] 박남수 예비역 육군중장 대담

기사승인 2016. 06. 24. 08:31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평화를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하는 자세가 전쟁을 막는 방법"
"우리 선열의 피와 땀 등 희생과 헌신에 대해 자부심 가져야"
"한미동맹 굳건함 속에서 자생력 키우고 국제관계 유동성 봐야"
박남수 예비역 육군 중장 인터뷰18
박남수 예비역 육군 중장. /사진=송의주 기자songuijoo@
아시아투데이 김이석 논설실장(대담)·최태범 기자(정리)·송의주 기자(사진) = 1950년 6월 25일 모두 곤히 잠든 일요일 새벽 4시 북한 공산군의 기습적인 남침은 우리 민족을 둘로 가른 동족상잔의 시작이었다.

무려 37개월 1129일에 걸친 6·25 전쟁은 ‘끝난 전쟁’이 아니라 1953년 7월 휴전협정이 체결된 이래 ‘멈춘 전쟁’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6·25 전쟁 동안 한국군과 국제연합군 측은 115만명이, 공산군 측은 북한군 80만명과 중공군 123만명 등 약 200만명이 전사하거나 부상 또는 실종됐다. 민간인 피해도 막대해 한국 99만명, 북한 200만명의 손실은 물론 피난 이재민 370만명과 전쟁고아 10만명이 발생했다.

승자도 패자도 없이 천문학적인 피해만 남긴 6·25 전쟁의 아픈 경험으로, 우리 국민들은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강한 자각을 갖게 됐다.

아시아투데이는 올해 6·25 전쟁 66주년을 맞아 ‘6·25 전쟁’이 갖는 의미와 교훈을 되새기고,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 속에서 우리가 어떤 인식과 자세를 가져할지에 대해 40여년을 군에 몸담았던 박남수 예비역 육군 중장(육사 35기)과 대담을 진행했다.

그는 국방개혁실 국장, 제26기계화보병사단장, 합참 전비태세검열실장·작전기획부장, 수도방위사령관 등을 역임했으며 육군 사관학교장을 거쳐 현재 철기 이범석 장군 기념사업회장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국방전략센터장을 맡고 있다. 이범석 장군은 1920년 청산리 대첩을 이끈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초대 국방부 장관을 지냈다.

박남수 중장은 23일 서울 장안동 철기이범석장군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진행한 대담에서 “평화를 위해 전쟁도 불사할 수 있다는 자세로 6·25를 바라봐야 한다”며 “우리 선열의 피와 땀 등 희생과 헌신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미동맹은 굳건해야 하지만 미국이라고 하는 큰 힘에 대한 과도한 의존성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통상 잘 사는 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자생력이 약해진다”며 “그런 측면에서 한미동맹의 양면성을 봐야한다”고 했다.

다음은 박남수 중장과의 일문일답.

-6·25의 의미에 대해

“일단 전제를 해야 하는 것이, 저는 6·25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보통 6·25에 대해서는 직접 경험한 사람이나 이를 연구한 역사학자·정치학자 등이 경험적·학문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저는 전후세대로, 40여년을 현역 군인으로 안보 현장에서 뛰었던 사람이다. 이 두 속성을 가지고 6·25의 의미를 이야기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군이라고 하는 안보현장에서 봤을 때 6·25의 의미에는 ‘우리가 적의 또 다른 침범이 있다면 반드시 싸워 이겨야 한다’는 당위성을 담고 있다. 또 우리가 6·25를 겪은 분들의 처절한 이야기를 알고 있지만 전후세대라는 점, 시대가 변했다는 점에서 직접 경험한 세대와는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봐야 할 필요도 있다.”

“6·25는 공산주의자들의 확장에 대한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게 보편적인 설명이라고 본다. 민족 스스로에게 총을 들이댄 아픈 상처를 남긴 굉장히 뼈아픈 역사의 한 부분이었지만 6·25를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가 질적으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는 결과론적 부분도 있다. 양면성이 있는 것이다.”

“한국은 6·25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과거 봉건질서나 유교질서, 일제 강점기 남아 있던 여러 부정적 요소들에 대한 질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우리는 6·25에서 힘의 중요성을 자각했고 이런 것들이 지금과 같은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픔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발전의 계기가 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6·25를 보고 있다.”

“우리가 6·25를 통해 지켜야할 것이 있고 얻어야할 것이 있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전략이 바뀌지 않는 한 또 다른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전쟁이 발발하면 유화주의를 벗어나 분연히 일어날 수 있는 기제로서 6·25를 바라봐야 한다. 이것이 전쟁을 막는 방법이다. 평화를 얻기 위해 전쟁도 불사할 수 있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평화를 위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이 있다

“4세기 말 로마는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고트족에 패배한다. 완패 후 군사전략가인 베게티우스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고 했다. 하지만 황제를 비롯한 로마인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70년만에 로마가 멸망했다. 아무리 통찰력 있는 말이 있었다고 해도 국민과 지도자의 인식을 바꾸지 못해 로마가 망한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6·25는 국민을 바꾸는 기제가 돼야 한다. 약하고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국민 모두가 가져야 한다.”

-국제적인 관점에서 6·25를 본다면

박남수 예비역 육군 중장 인터뷰5
박남수 예비역 육군 중장. /사진=송의주 기자songuijoo@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해양세력 입장에서는 대륙으로 가는 발판이고, 대륙으로서는 해양으로 나가는 길이 되면서 해양세력의 접근을 막는 전초지다. 이런 지정학적 요인 때문에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고 한반도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국제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6·25 때 유엔군이 북진하지 않았으면 중국군이 참전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전쟁의 속성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의미를 간과한 주장이다.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킨 것은 한반도를 완전히 석권하려고 한 것인데 이에 반격하는 유엔군이 38선에서 정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적을 격멸하기 위해 북진해 갈 것이고 북쪽으로 가면 중국은 참전할 수밖에 없다. 6·25 발발과 함께 중국의 참전은 예견된 일이었다. 우리의 38선 돌파 의미를 폄하하는 주장이 있는데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상 국제적인 흐름을 안 탈수가 없다.”

-6·25시 희생한 분들을 기리는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6·25 때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들을 기리는 것은 결국 나라가 하는 것인데 이 부분에서는 잘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우리사회에 물질만능 세태가 자리 잡으면서 정신적인 측면에서 희생을 기리는데 있어서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본다.”

“또 일부 잘못된 주장인데, 6·25 전쟁을 우리가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외부의 지원 덕분이라는 의견이 있다. 일정부분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외부 지원 이전에 용감히 전투에 나갔던 선배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외부의 지원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또 이런 지원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이 때문에 선배들의 희생과 헌신이 왜소해지는 경향도 나타난다. 그분들의 헌신이 더욱 부각되고 6·25를 인식하는데 있어 주류로서 인정받아야 한다.”

“우리가 독립을 쟁취한 것도 마찬가지다. 독립운동을 했던 선배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어서 독립이 된 것인데 우리의 독립을 강대국 전승의 결과물로 여기는 일부의 주장은 흘린 피를 폄훼하는 것이고 자학적인 역사관이다. 우리 선열의 피와 땀 등 희생과 헌신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북한 핵개발·미사일 실험 등 잇단 도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북한은 도발 에너지가 넘친다. 먼저 도발 이야기에 앞서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협정 문제는 허와 실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평화협정은 외세를 배격한다는 것인데 이는 곧 주한미군 철수 요구다. 또 북한의 통일전략 전술이나 대남전략 자체가 바뀌지 않았다. 북한의 평화협정은 대남적화를 위한 전(前) 단계다. 이는 최종목표가 아니라 적화를 위한 중간단계에 불과하다.”

“북한은 무수단 중거리 미사일을 6번째 발사했다. 미사일은 핵의 운반수단이다. 북한의 핵 개발을 북한의 대미 협상수단으로 간주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는 무엇보다 정권유지 수단이다. 국가 존립 수단이 아니다. 국가와 달리 정권은 대내외적으로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절대 무기를 가질려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를 절대 용납하면 안 된다. 최근 대북대화 주장이 나오지만 대화는 상대에 따라야 한다. 북한과 같은 민족으로서 미래와 통일을 위해 대화를 해야하는 것은 맞지만 김씨 일가가 대상은 아니다.”

“정부는 ‘3불(不)1가(可)’ 정책을 해야 한다. 3불은 북한의 핵-경제 병진노선, 핵보유국 지위 획득, 통일전략과 대남적화 전술 세 가지다. 가능한 한 가지는 북한의 핵포기로 미래를 위한 유일한 선택이다. 정부는 3불1가를 초지일관 밀고 가야 한다. 물론 북한의 국지도발이 있을 수도 있고 때때로 대화도 할 수 있겠지만 큰 정책의 방향은 이렇게 가야 한다.”

-한미동맹 등 미국과의 관계는

박남수 예비역 육군 중장 인터뷰26
박남수 예비역 육군 중장. /사진=송의주 기자songuijoo@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전제가 몇 가지 있어야 한다. 우선 우리는 한미동맹의 절대성을 인정해야 한다. 세계의 강대국들이 동북아에 다 몰려있다. 우리와 같이 갈 수 있는 나라는 미국이라는 점이 여러 경험에서 나타났다. 한미동맹은 변하지 않아야 하고 굳건해야 한다.”

“다만 명심해야 할 점은 결국 한미동맹도 해당 국가의 이익에 따라 그 폭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대로 미국이라는 세계파워와 함께 한미동맹을 통해 한반도의 안정을 유지하면서 경제·외교역량을 키우려고 하듯이, 미국은 미국대로 세계전체, 아시아태평양에 대한 전략이 있다. 중국이 크지 못했을 때는 소련 공산주의 팽창을 막기 위해 한국을 활용한 부분이 분명히 있고 중국이 커지니 중국을 염두에 두고 한국을 보는 부분이 있다.”

“잘 사는 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자생력이 약해진다. 지금 정부도 잘하고 있지만 미국이라고 하는 큰 힘을 고려한 전력증강이나 작전계획 등 우리 내부의 미국에 대한 의존성 측면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국제사회는 냉혹하다. ‘애치슨 선언’처럼 미국이 한국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변화가능성을 잘 보고 있어야지 그것을 놓치면 미아가 될 수도 있다. 한미동맹도 그런 유동성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전시작전통제권의 경우 한미동맹을 결속시키는 역할을 하면서도 우리나라의 전략적 유연성을 떨어뜨리는 측면이 있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의 경우도 중국은 기술적으로 자신들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문제는 한미동맹과 전작권이 연결되다 보니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제에 한국이 들어갈 것이라는 게 중국의 우려다.”

“그렇다면 사드를 받아들이면서 전작권도 우리가 가져오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핵에 대비할 미사일 능력을 우리가 갖고 있지 못하니 요격능력을 갖출 때까지 한시적으로 사드를 들여오고 전작권을 가져온다는 것을 전제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나가야 한다. 전작권이 미국에 있으면 작전·전술적으로 유리한 부분도 있지만 전략적으로는 유연성이 저하되는 부분이 나타날 수 있다.”

-현역 군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힘은 우리 군대로부터 나온다. 북한이 도발하면 현장에서 자기에게 부여된 권한과 책임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 또 도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 놓았는데, 시스템 작동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지혜롭게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 현장 전술·작전제대가 잘해줘야 그 뒤에 있는 전략·정책 부분이 융통성을 가질 수 있다. 전략이 전술을 끌고 간다고 하지만 전술이 전략을 끌고 가는 경우도 있다. 6·25를 맞이해 현장에 있는 군 지도자들이 엄중한 안보위기 시기에 보다 더 역할을 잘하고 가다듬는 때가 됐으면 좋겠다.”

-국민 신뢰를 받기 위한 공직자의 모습은

“간단하다. 공직이 무엇인지 그 의미만 알고 있으면 된다. 군은 밀리터리 서비스이고 공무원은 서번트다. 오래하면 직급도 올라가고 권한이 생기면서 서비스를 하는 게 아니라 받으려고 하고 사적인 욕망도 채우려고 한다. 서비스와 서번트 본연의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내가 가진 권한과 책임이 어디에서 왔고 왜 나한테 왔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민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계속 쇄신하고 갈고 닦고 해야만 자세가 갖춰진다. 또 능력도 있어야 한다. 아무리 청렴하고 인품이 훌륭하더라도 능력이 없으면 안 된다. 능력을 쌓기 위해 끊임없이 부단하게 노력하는 게 공직자의 자세다.”

-철기 이범석 장군 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다

“철기 이범석 장군은 독립군 일원으로서 청산리 전투에서 전투 지휘관 역할을 했고 1916년 망명해 광복할 때까지 오직 군인으로서 살았다. 항일 무장투쟁의 상징성을 가지고 초대 국방장관을 했다. 군사학교 출신들은 자신의 성장만 생각하는 데 중요한 것은 군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이고, 이범석 장군이 그 그림을 그렸다.”

“철기 이범석 장군은 초대 국방장관으로서 공산권과 싸우기 위해 첫 번째로 군의 사상통일을 강력히 추진했다. 사상통일이 되지 않으면 군대 역량을 발휘할 수 없다고 해서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방부에 정훈조직을 만들었으며 대북첩보수집국도 만들었다. 현 예비군 제도보다 강력한 호국군을 만들기도 했다. 6·25 때 이분은 야인이었으나 장관을 했으니 영향력이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 자문그룹에서는 이범석 장군을 다시 장관에 앉히자는 건의도 있었다. 철기 이범석 장군이 6·25 발발 1년 전에 해임된 것이 아쉬운 점이 있다. 아직 우리나라의 안보 환경은 순수 민간출신의 국방장관 임명에 대한 교훈을 담고 있다고 본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