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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원밍(文明)한 대국, 중국’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칼럼] ‘원밍(文明)한 대국, 중국’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기사승인 2018. 03. 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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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원밍(文明)'으로부터 '원밍한 중국' '원밍한 대국'으로
'명분의 요구'와 '요구의 명분화' 논리 개발해야
하만주
하만주 베이징 특파원
중국을 여행하다보면 ‘문명(文明·윈밍)’이란 단어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문명’은 시진핑(習近平)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집권 이후 강조되고 있는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 ‘문명 중국’ ‘문명 대국’ 같은 정치 슬로건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

남자 화장실에 ‘일보전진은 문명으로의 일보전진’이라는 문구도 있다.

임명신 동아시아 연구가(중국문학 박사)에 따르면 문명은 40년 전 개혁개방 이후 특히 많이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그 기원은 갑골문에 있다.

20세기 세계 고고학계 최대 수확의 하나인 은나라 터(殷墟, BC 1600~BC 1046)에서 발굴된 한자의 원형을 보여주는 현존 최고(最古)의 증거물인 갑골문에 ‘文’과 ‘明’이 있다.

‘文’과 ‘明’이 ‘文明’이라는 단어로 중국고서에 나타나는 것은 전국시대(BC 403~221)다.

이때 ‘문명’은 완전한 명사형이 아니라 ‘文이(으로) 明하다(함)’ ‘문장(글)으로 세상을 밝히다(교화하다)’는 문맥으로 나타난다.

문명
중국 베이징(北京)의 유명 관광지 용경협(龍慶峽)에 부착돼 있는 ‘문명이 가장 미적인 풍경’이라는 문구의 현수막./사진=하만주 베이징 특파원
근대어로서의 ‘문명’은 ‘Civilization’에 상응하는 19세기 후반 일본인들의 조어 ‘분메이’에서 온다.

‘命을 革하다’가 ‘혁명’이 되고, ‘스스로(自) 그러하다(然)’가 자연으로 된 것처럼 개별 개념이나 주술 구조로 존재하던 고대 중국어의 글자와 어휘들이 전용, 또는 창조적으로 재해석돼 근대 일본어로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분메이’도 만들어졌다.

‘원밍’은 중국에선 개혁개방 이후 ‘신식(현대적)인’ ‘교양있는’ 등 형용사로서 많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온갖 현수막이나 벽보 형태의 슬로건에 ‘원밍’이 등장했고, 특히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을 전후해 최고조를 이뤘다.

지금은 세계인의 눈을 의식한 시민적 일상생활 매너에서부터 ‘생태문명건설’처럼 지구적 시대정신을 추구하는 슬로건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원밍’은 형용사에서 ‘동사’로 나아가고 있다.

‘노(老)문명국의 체면회복’이라는 필사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문명권’에서처럼 통합적·추상적 개념인 ‘원밍’이 일상적인 것이 되고 부사화·동사화로 동태적인 말이 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렇게 ‘원밍하게 발전’함으로써 ‘원밍’해진 중국과 중국인의 탄생을 전 세계의 이익에 부합한다. 이웃나라인 한국은 중국을 향해 중국적 어법으로 ‘원밍한 대국이 되라’ ‘원밍한 국제관계의 주역이 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시 주석이 강조하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의 실질적 내용이기 때문이다. 시 주석이 ‘중국몽’을 제기했을 때 중국 지식인들조차 ‘구체적 내용이 뭔지 모르겠다’ ‘미국몽(아메리칸 드림)은 세계인의 것인데 비해 중국몽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등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공산당 19차 전국대표대회 이후 ‘중국몽’이 충분치는 않으나 구체성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여러 해석이 제기되고, 희망 사항을 촉구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중국몽’은 부국강병, 시장경제의 효용과 분배정의로서의 사회주의 구현, 지구환경을 위한 노력 등을 통해 G1(주요 1개국)이 되겠다는 시진핑 정부의 분명한 목표다.

아울러 시 주석의 ‘인류운명공동체’론은 패자(者)의 패권이 아니라 왕도를 펼치는 ‘지구촌 맏형’ 노릇을 자임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옌지 문명
중국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의 옌지(延吉)시 거리에 내걸린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사진=옌지=하만주 특파원
이는 인류사에서 전무후무한 야무진 꿈이고, 비웃을 수만도 없는 아름다운 소망이다. 정치적 언설은 원래 세속적 욕망을 잘 포장한 우아한 레토릭이거나 추상적 거대담론을 쉬운 일상언어로 풀어내는 능력이다. 설사 중국의 그 우아한 레토릭이 과장된 허황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나쁠 것만은 아니다.

더 적극적으로 ‘원밍’한 중국을 요구할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명분의 요구’와 ‘요구의 명분화’를 위한 당당하고 치밀한 논리의 개발 및 보완, 그리고 국제연대가 ‘소중화(小中華)’ 후예들의 시대적 사명인지 모른다.

문명
중국 양쯔강(揚子江·長江) 중류 지역인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 유명 관광지 황학루에 부착돼 있는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사진=우한=하만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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