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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담화]LG 71주년…포목점이 23만명의 대기업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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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담화]LG 71주년…포목점이 23만명의 대기업이 되기까지

최성록 기자 | 기사승인 2018. 04. 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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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
구인회 창업주
지난 13일은 LG그룹의 71주년 창립기념 휴무일이었습니다. 당초 LG의 창립 기념일은 3월27일이었지만 2013년부터 창립기념일에는 일을 하고 4월 둘째 주 금요일에 그룹 전체가 일제히 쉽니다. 창립기념일이 주말과 겹칠 수 있고, 4월에는 공휴일 등 쉬는 날이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 직원들을 배려한 것입니다.

LG는 1931년 진주에서 구인회 창업주가 동생 구철회와 함께 구인회상점이라는 포목상을 개점한 것이 시초입니다. 이후 1947년 1월 세워진 락희화학공업(현 LG화학)으로부터 그룹의 본격적인 역사가 시작됩니다. 락희화학공업은 락희크림, 치약 등의 생필품을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1952년에는 머리빗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나무빗만 쓰던 사람들은 합성수지 빗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도 합성수지 빗을 보고 한국에서 이런 제품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고 합니다. 1955년 출시된 럭키치약은 3년만에 당시 시장의 절대 강자 미국제 콜게이트치약을 물리치고 국내시장을 석권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LG는 1958년 금성사 설립 이후 전자기기를 생산해 나갑니다. 특히 국내 최초의 흑백 TV·라디오·자동전화기 등을 출시하며 전자산업계의 역사를 써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 같은 역사를 갖고 있는 LG는 오늘날 우리 경제·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기업이 돼버렸습니다.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충실히 실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구인회 창업주<사진>는 평소에 “고생을 모르는 사람은 칼날 없는 칼이나 다름없다”며 구자경 명예회장, 구본무 LG회장, 구본준 부회장 등 2세, 3세들에게 현장경험 중심의 경영수업을 20년 이상 쌓게 했다고 전해집니다. LG의 오너가들이 대부분 육군 병장 제대했다는 점도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 때문일까요. LG는 다른 그룹들과 달리 지주회사 체제 전환도 잘 완수했습니다. 오너 일가들이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엄격히 지키고 있으며, GS와 계열분리도 잡음 없이 진행했습니다. 주주배당도 잘 진행하고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습니다. 그 흔한 집안싸움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특별한 오너리스크 없이 71년간 무난히 기업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이렇게 잘나가고 있는 LG에게도 고민 거리는 있습니다.

현재 LG의 아픈 손가락은 스마트폰 사업입니다. 영업손실은 지속되고 있으며, 간판 모델은 시장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록 최근 LG스마트폰의 성적은 부진했지만 V20-G6-V30-V30S로 이어진 최근 라인업들은 제품성은 인정받고 있습니다.

LG그룹이 전사적(LG전자·LG화학·LG디스플레이 등)으로 매달리는 커넥티드카 및 자율주행 등 미래차 사업을 위해서라도 스마트폰 사업은 당장 부활의 단초를 마련해야 합니다.

71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LG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100주년을 위해 또 다른 출발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새로운 시작의 첫 발자국을 내딛는 지금, LG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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