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기무사 대체 군사안보지원사 1일 창설

기무사 대체 군사안보지원사 1일 창설

기사승인 2018. 09. 01. 10:41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국민과 軍 신뢰를 받는 새로운 보안.방첩 전문기관으로 발돋움
국가안보지원사령부 창설식
송영무 국방부장관(왼쪽)이 1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청사에서 열린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창설식에 참석, 남영신 초대사령관에게 부대기를 이양한 뒤 악수하고 있다. 군사안보지원사령부는 부대원의 정치적 중립과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모든 행위 금지, 직무 범위를 벗어난 민간인에 대한 정보수집 및 수사 금지를 골자로 한 사령부령에 따라 기무사의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사진공동취재단
계엄령 문건·세월호 유가족 사찰·댓글 공작 등 이른바 3대 불법행위로 물의를 빚어 해체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를 대신할 군 보안·방첩 전문기관 군사안보지원사령부(Defense Security Support Command·안보지원사)가 1일 창설했다.

안보지원사는 이날 오전 8시 40분 송영무 국방부 장관 주관으로 군 주요 직위자와 국방관계관, 안보지원사 장병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기도 과천 안보지원사 대강당에서 창설식을 갖고 본격적인 임무수행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날 창설식은 현판식에 이어 국민의례, 명령낭독, 부대신고, 부대기 수여, 국방부장관 훈시, 안보지원사령관 식사(式辭) 순으로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송 장관은 “6.25 전쟁 당시 창설된 특무부대로부터 방첩부대, 보안사와 기무사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부대들은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군의 정치개입이라는 오명을 남겼다”며 “이들은 국민의 신뢰는 커녕 지탄과 원망의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송 장관은 “이제 오늘을 계기로 과거를 통렬히 반성하고, 희망찬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며 “국민을 두려워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국민에게 부여받은 권한은 국민을 위해 정의롭게 사용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송 장관은 “특권의식을 내려놓고 장병의 인권을 존중하며, 위국헌신 군인본분의 정신자세로 자기 직분을 완벽히 수행해 나가야 한다”며 “그것이 여러분과 우리 군의 명예를 위한 길”이라고 역설했다.

송 장관은 “군사안보지원사령부를 창설하고 장관의 소임을 마무리하게 돼 보람을 느낀다”며 “여러분이 부대의 역할을 확고히 정립해 국방개혁을 반드시 완성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남영신 안보지원사령관(육군 중장)은 “오늘 우리는 과거와 역사적으로 완전히 단절된 새로운 군사안보지원사령부를 창설했다”며 “우리는 군 유일의 보안·방첩 전문기관으로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 그 출발선에 결연한 각오로 서 있다”고 말했다.

남 사령관은 “국민의 눈높이와 시대적 상황변화에 맞춰 신뢰받는 조직으로 변모해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기초와 기본을 바로 세워야 한다”며 “새롭게 제정한 부대령과 운영훈령에 입각해 전 부대원이 업무범위를 명확히 이해한 가운데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해 수행함으로써 국민에게 신뢰받는 조직, 군과 군 관련기관으로부터 전문성을 갖춘 꼭 필요한 조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다함께 노력하자”고 말했다.

또 남 사령관은 “안보지원사의 창설은 새로운 미래를 약속하는 우리 군의 역사적인 날로 기억될 것”이라며 “국민들은 안보지원사가 군 통수권자와 국민의 지엄한 명령 속에 신뢰받는 군의 표상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남 사령관은 “이런 시대적 소명을 인식한 가운데 군 보안·방첩 분야 전문기관으로 국가방위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며 “반드시 국민들과 군의 기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조직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4200여 명이던 기무사 인원 중 30% 이상 감축한 2900여 명으로 출범한 안보지원사는 앞으로 군 정보부대 본연의 임무인 보안·방첩 업무에 집중하게 된다.

참모장은 공군본부 기무부대장이었던 전제용(공사 36기) 준장이 맡았고 감찰실장에는 이용일 부장검사가 파견 형식으로 임명됐다

안보지원사의 창설로 기무사는 1991년 국군보안사령부에서 간판을 바꿔 단지 27년 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