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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Z자형 기업

[칼럼] Z자형 기업

기사승인 2020. 02. 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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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배 성신여대 경영학과 교수
김종배 성신여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 한동안 인재상 모습을 알파벳으로 표현하던 시기가 있었다. 가령 ‘T자형 인재상’은 한 분야를 잘 알면서 동시에 관련 분야까지도 폭넓은 지식을 갖춘 인재를 의미한다. T자 글자 모양과 같이 가로 획은 다른 분야에 대한 폭 넓은 관심, 지식, 포용력을 의미하고, 세로 획은 어떤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전문성을 의미한다. 이는 특정 분야에는 비록 정통하지만 다른 분야에 대해선 식견이 부족한 ‘I자형 인재’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직관적이면서도 간명한 표현에 도움을 주기에 알파벳은 의사전달의 도구로 종종 활용되었다. 본 고에서는 변화하는 시장에서 기업의 바람직한 모습 중 하나로 ‘Z자형 기업’을 제안하고자 한다. Z자는 직선들 간의 급격한 방향전환으로 이뤄진 글자이다. 이는 어떤 궤도에 오른 기업은 직선처럼 거침없이 진행하지만 그러다 때로 어떤 상황에 봉착하면 급격한 방향 전환을 해야만 하는 모습과 닮았다.

한 번 익힌 기술과 지식을 평생 써먹을 수 있고, 한 번 구입한 기계 장비를 계속 사용하고, 한번 구축한 사회연결망이 지속적으로 작동한다면 세상 살기는 아마 그리 어렵지도 또 힘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기존에 하던 방식을 버리고 전혀 다른 방식을 익혀야 하고, 애써서 축적한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새롭게 장만해야 하고, 익숙하던 사람과 장소를 떠나야 한다. 기존과는 다른 삶으로의 급격한 전환은 사람이든 기업이든 모두 힘들고 괴롭다.

이를 제때, 그리고 올바른 방향으로 하지 않으면 미래는 보장받지 못한다. 1993년 국내 굴지 기업의 총수는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고, 환골탈태하면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고 하였다. 말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총수 자신의 솔선수범으로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였기에 기업은 엄청난 성장을 거두었다.

이러한 성공 사례는 생각만큼 그리 많지 않다. 반면에 실패 사례는 지천에 깔려있다. 예를 들어, 필름의 대명사였던 코닥사는 1975년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를 내놓고도 디지털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한 경쟁사들과의 기술 격차에 방심하다가 시장을 선점하지 못했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소니의 ‘워크맨’ 역시 변화하는 IT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철수 시점이 늦어져 기업가치가 몰락한 바 있다.

현재의 기반을 과감하게 버린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러나 언제까지라도 똑같은 방식으로 유지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 때문에 한 때 잘 나갔던 사람과 기업들이 과거의 명성을 잃어가는 모습은 너무도 쉽게 목격된다.

기존의 물질적 자산을 폐기하는 것은 다음의 것들을 극복하거나 폐기하는 것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기존의 방식에 익숙한 구성원의 조직저항, 단단하게 구축된 가치사슬망의 파괴, 고착된 조직문화 등. 그러나 과거의 물적 자산, 운영 방식, 조직 구성원의 마인드 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엄청난 위기를 맞게 된다. 시장은 결코 안정되거나 고정된 상태로 멈추어 있지 않는다.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 개체들로 구성되기에 게임체인저(game changer, 예: 델 컴퓨터, 페이스북, 애플 등),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예: 넷플릭스, 샤오미 등)은 언제든 여건이 갖춰지면 기존의 판세와 작동 방식을 뒤엎는다.

이러한 방향 전환의 흐름을 어떻게 감지할 것인지, 방향 전환에 대한 의사결정은 누가 내릴 것인지, 이를 언제 과감히 집행할 것인지, 기존 것을 어떻게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처리할 것인지, 무엇을 바꾸고 무엇은 바꿔서는 안될지 등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이다. 이는 일상의 소소한 결정이 아니라 기업의 명운을 좌우하는 중대한 결정이다. 자금, 시간, 인력 등도 엄청나게 소요된다.

한번 잘못된 선택의 길로 들어선다면 이를 다시 되돌리기도 쉽지 않다. 잘못된 결정의 책임 역시 막중하다. 그렇지만 변화하는 시장 속에서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생존하고 또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운명적 결정과 집행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는 것을 반증한다. 10년전 100대 기업에 속하였던 기업중 대다수는 지금의 100대 기업에 속해 있지 않다. 이러한 결정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경영은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Z자를 잘 쓰는 기업만이 변화하는 시장이란 무대에서 계속적으로 남아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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