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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영화의 정치성? ‘국제시장’ 흥행의 명암

상업영화의 정치성? ‘국제시장’ 흥행의 명암

기사승인 2015. 02. 2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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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논란, 산업화 민주화 상이한 성공담 뒤얽혀...차기 흥행작 추동력 기대
국제시장
영화 ‘국제시장’ 포스터
어차피 본전은 충분히 뽑을 참이었는데 ‘정치적 해석’이 더해져 대박 난 영화. ‘국제시장’은 이런 영화로 특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정치적 해석은 그만두고 가족영화로 봐 달라”는 윤제균 감독의 호소가 있었지만 영화는 세대 간 관점 차이를 넘어 이념논쟁으로 비화할 조짐을 띠면서 롱런에 들어갔다.

윤 감독은 지난 1월 초 한 인터뷰에서 영화를 둘러싼 ‘정치적 해석’에 대해 곤혹감을 토로했다. 하지만 당시 함께 실린 사진 속 표정은 밝기만 했다. 흥행은 개봉 두달이 지난 현재(23일)까지 이어지고 있다. 드디어 설 연휴를 지나 누적 관객수는 1400만을 돌파, 역대 흥행 2위였던 ‘아바타’의 기록을 앞질렀다.

전쟁이나 절대빈곤과 인연이 없는 세대라도 근·현대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국제시장’의 배경인 팩트로서의 역사는 익숙한 얘기들이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계기로 새삼 확인한 것은 역사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시대를 온 몸으로 겪은 세대의 갈망, 즉 자신들의 고난과 분투를 역사적·사회적 차원에서 인정받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팔순의 내 아버지가 먼저 ‘국제시장’을 보러 가자 나설 정도였다. 할리우드 명화 ‘벤허’ 이래 40여년 만의 영화관 나들이. 아버지는 영화 엔딩 자막이 흐르는 가운데 “우리가 저렇게 살았어, 딱 우리또래 얘기”라며 한동안 옆자리의 면식 없는 관객 어르신들과 감동의 여운을 나누셨다. 대화 속에 후세대들에의 서운함이 묻어났음은 물론이다.

이 영화를 두고 벌어진 ‘정치적 해석’논쟁은 단순히 급속한 현대화 과정에서 빚어진 ‘세대차’ 때문만은 아니다. 이 논쟁의 근저에는 대한민국 현대사가 달성한 두 가지 상이한 질감의 성공담, 산업화와 민주화가 뒤얽혀 있다. 양자는 상호불가결한 상보성을 가지는 가치이면서도 대결양상을 띠어왔다.

산업화 없는 민주화가 있을 수 없고 민주화는 산업화의 성숙을 돕는다는 인식이 제법 일반화된 것 같기는 하나, 산업화와 민주화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는가는 세대별 계층별로 다르다. 20대를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민주화 실현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 역시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결국 ‘국제시장’을 둘러싼 논란의 심부에는 식민지 체험과 국토분단 및 냉전체제 속에 근현대사를 걸어온 우리 사회의 숙명, 그 숙명이 절대권력과 권위주의의 이기적 구실로 악용되던 시대의 상처가 있다. 이 영화의 호소력이 그 시대의 어둠에까지 면죄부를 줘야만 할 듯한 불편함을 불러일으켰음은 부인할 수 없다.

‘국제시장’은 전쟁의 공포와 이산의 아픔, 기아체험, 가족애의 진정성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고, 출연배우들의 호연에 힘입어 광범위한 공감을 얻었다. 연출면에서 다소 걸리는 구석이 없지 않았으나 전체적으로 즐길 만했다. 주인공 ‘덕수’의 삶에 대한 노년층 관객들의 강렬한 자기동일시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다 아는 얘기였건만 흥남철수 장면의 스펙터클과 비극성은 강렬했고,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던 시절 파독 광부 및 간호사들의 존재는 몇 번을 접해도 가슴 저린 대목이다. ‘이산가족 찾기’는 당시 생방송을 보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어 남얘기 같지 않았다. 부부싸움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에서는 중·고학교 시절 일과였던 국기하강식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근대국가 성장기’의 전형적인 모습, 즉 서유럽 제국이 한 때 겪었고 그것의 동아시아 버전인 일본을 거쳐 우리에게 재현된 ‘국민정체성 만들기’의 시대, 그 시절 그 엄숙함의 통속적 계보가 떠올라 빙긋 웃음이 났다. 그리고 며칠 후엔 쓴웃음이 났다. 그 장면을 보고 나처럼 빙긋 웃음이 나거나 가벼운 풍자를 읽은 사람들, 향수를 느끼며 요즘 세태의 애국심 결여를 개탄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재확인했다.

국민적 공감을 얻는 영화가 탄생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삐딱한’ 견해도 나올 수 있어야 한다. “더 이상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는 시니어의 문제가 다뤄져야 마땅한 시점에 아버지세대의 희생을 강조하는 영화가 나온다는 것은 반동이라고 밖에......” 운운.

심지어 “토가 나온다”던 한 젊은 평론가의 논평, 그 요지 자체는 일리 있었다고 본다. 문제의 발언으로 논란 속에 있다가 1000만 관객 돌파 이후 냉큼 사과를 한 것이 오히려 김새는 기분이었달까. 사과의 요체가 과격한 언사로 사람들을 불쾌하게 한 점에 불과하길 바란다. 베트남전 참전 대목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남의 나라 전쟁에 참여한다는 행위의 복잡다단한 내막에 철저히 무심한 점을 꼬집은 또 다른 젊은 평론가의 지적은 무거운 화두를 던진다. 대한민국의 베트남전 참전은 피하기 어려웠으나 그렇다고 떳떳할 수만은 없는 선택이었다. 한국전쟁과 유사한 좌우분열 속에 끔찍한 동족상잔을 겪어야 했던 베트남의 고통에 그토록 시치미를 뗄 필요가 있었나 싶다. 아무리 가족영화를 표방하는 상업영화라지만 아쉬운 부분이다. 영화의 큰 그림 혹은 주선율을 흐트리지 않는 선에서 동병상린적 문제의식을 표현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슬쩍 건드릴 바엔 차라리 ‘노 코멘트’가 낫다? 꼭 그렇다고 보긴 어렵다. 심각한 영화라면 아예 멀리 할 관객에게 심각한 문제에 관심을 가질 계기를 주는 것, 말하자면 일종의 ‘끼워팔기’는 영화 자체의 흥행 성공과 더불어 의외로 의미있는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

어쨌거나 우리 부모, 조부모 세대의 원형질을 대표하는 ‘덕수’의 삶과 그의 시대를 통해 가식 없는 눈물을 이끌어내고 깨알웃음도 실소도 쓴웃음도 선사한 ‘국제시장’. 부모님이나 친지 등 어르신들을 관람에 초대하는 것은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젊은 세대의 관람은 두고두고 권하는 바, 대신 뭔가 헛점 내지 의문점도 발견해줬으면 한다. 예를 들어 덕수의 등골을 빼며 서울대 들어간 동생은 어떻게 되었나, 뭐 이런 문제. 가족의 꿈나무였을 그가 집안을 위해 사회와 국가를 어떤 식으로 의식하며 살았는지 전혀 언급도 암시도 없으니 말이다. 그 시대 서울대 출신이라면 어떤 영역에서든 누구보다 책임 있는 자리에 놓였을 터, 따져 보자면 ‘대한민국의 적폐에 책임을 느껴야 할 기성세대’의 한 사람 아니겠는가.

부언하건대 ‘국제시장’을 둘러싼 정치적 해석 논란은 건전한 현상이었다. 심미적·예술적으로 별 논할 것이 없는 상업영화로선 행운이라고 해야겠다. 영화로 대표되는 대중서사장르는 전문평자와 일반 관객들이 다양한 차원의 안목과 감성을 바탕으로 갑론을박 하는 가운데 새로운 의미가 창출되고 가치가 더해진다.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시장’은 상업영화의 문법에 충실한 흥행작이며 ‘딱 영어제목 Ode for My Father(우리아버지께 바치는 송가) 만큼의 영화’인 것 같다. 그러나 이처럼 대박이 나고 보니 미련이 생긴다. 단순 ‘가족영화’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는 얘기다. 최소한 그 시대의 또 다른 측면을 그리는 차기 흥행작의 추동력이 되었으면 한다. [임명신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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