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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돕고 강화나들길 만들며 토박이들과 동화됐죠”

“어르신 돕고 강화나들길 만들며 토박이들과 동화됐죠”

기사승인 2015. 02. 2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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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귀촌 10년, 김신형 씨의 '인생 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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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귀촌인 김신형 씨가 외포리로 가는 강화나들길 코스를 걷고 있다. 강화나들길은 강화도 걷기여행길로, 김씨가 지역주민들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길이다./사진=전희진 기자
“평생 금융 관련 일만 해와서 농사를 지을 자신은 없었고…. 그래도 외지인들이 많은 읍내가 아닌, 과감히 마을 한복판에 터를 잡았죠. 이왕이면 제대로 강화 사람이 돼 살고 싶었거든요.” 25년간 금융맨이던 김신형 씨(67)는 52세에 회사를 그만두고 산수 좋은 강화도로 내려왔다. 귀농이 아닌 귀촌이었다.

사회공헌에 뜻이 있던 김 씨는 자원봉사 등을 통해 마을 사람들과 두루 인연을 맺고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 ‘강화 나들길’을 개척하고 있다. 그는 인생 2막의 한 길로, 귀촌 후 지역사회 활성화를 도모하는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제시한다. 그리고 귀촌을 통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마을 토박이들과의 친화력이라는 귀한 체험담을 담담히 전해준다.

◇국민연금으로도 한 달 생활비 충분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두운리 두두미 마을. 논과 밭으로 둘러싸인 한가운데 초록색 2층집이 있었다. 김 씨의 집이다. 그가 귀촌을 ‘감행’하게 된 건, 가슴 속 깊은 계곡의 안개처럼 늘 스멀대던 전원생활에 대한 꿈 때문이었다. 제2의 인생을 뿌리 내릴 또 다른 삶의 터전을 찾아다니다가 한눈에 반한 곳이 있었으니, 강화도였다. 산수의 경치가 더없이 아름답고 마음까지 편안하게 만들었단다.

나들길 이정표
강화나들길 이정표/ 제공=김신형
2006년 그는 이곳으로 귀촌했다. 밭이 딸린 구옥을 구입해 830㎡(약 250평) 대지에 100㎡(30평형), 잔디 마당이 있는 새집으로 개조했다. 총 3억원의 비용이 들었다. “이 정도 비용이면 서울의 10평대 주택 값 수준이에요. 살고 있던 대도시 주택을 팔면 시골에서는 정말 좋은 집을 마련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그의 귀촌 생계 수단은 뭘까. “국민연금으로도 한 달 생활비가 충분한 곳이 시골입니다. 도시에 비해 생활비가 매우 적게 든다는 얘기예요. 제 경우 매달 100만원 정도 받는 국민연금으로 생활을 꾸려요. 먹을거리는 기본적으로 쌀과 된장·고추장·간장만 있으면 50%는 해결된다고 봤어요. 그래서 장 담그는 법을 직접 배웠죠. 하하.”

내 소유의 집이 있고, 빚이 없으며 자녀 교육 부담으로부터도 자유로우니 먹고 사는 건 걱정 없다고 했다. 김 씨는 “하고 싶은 것이 더 많아지면 나중에 집을 담보로 역모기지론(주택연금)을 활용해볼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토박이들 즐비한 마을 한복판에 살 집 마련
그는 일부러 외지인들 많은 읍내가 아니라 토박이들이 즐비한 마을 한복판에 집터를 잡았다. 귀촌한 도시 사람들 대부분이 지역주민들과 멀리 떨어져 살려는 것과 달리, 마을 사람들과 한데 어우러져 살기 위한 복안이었다. 용감무쌍한 그의 귀촌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강화 사람 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지역에 동화될 방법을 고민하던 김 씨는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독거노인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는 자원봉사부터 시작했다. 그러면서 지역주민들과 조금씩 가까워졌고 강화 토박이들과 인연을 맺었다. 그 중 14대째 줄곧 강화에서만 살아온 토박이로 강화시민연대 대표로 활동하던 남궁호삼 씨를 알게 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지역 공동의 커뮤니티를 꾸려보고 싶던 차에, 남궁 씨와 조선시대 문인 화남 고재형 선생이 강화도를 유람하고 지은 <심도기행>의 그 길들을 되살려보자는 데 뜻이 모아졌습니다. 이렇게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2009년 강화나들길 추진위원회를 세우고 강화나들길 사업을 추진하게 된 거죠.”

강화나들길. 아름다운 산세와 천혜의 갯벌·우리 민족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강화 땅을 나들이 한다는 의미를 품는다. 강화나들길은 최근 제주 올레길·지리산 둘레길 등과 함께 전국의 가볼 만한 길로 꼽힌다. 강화군청과 업무협약을 맺고 예산을 지원받아 추진된 강화나들길 사업에 김 씨는 그동안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기획하는 일을 해왔다.

사단법인화 과정에서도 그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은행에서 근무할 때 다양한 시민단체·지역공동체와 일해 본 경험이 밑거름이 됐다고 한다. 강화도 속속들이 설명해주는 그를 옆에서 보니 이 사람, 귀촌 10년 만에 강화도 사람 아니 강화도 박사가 다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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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나들길의 창후리 가는 길/ 제공=김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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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여년 전에 세워진 성공회 강화성당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신형 씨/ 사진=전희진 기자
◇나홀로 전원생활은 귀촌 실패 지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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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포리로 가는 강화나들길 초입에 자리한 한 카페에서 김신형 씨가 커피를 마시며 귀촌생활의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다.
“귀촌 후 잘 적응해 지내는지 여부는 동네 경조사로 판가름 납니다. 주민들이 잘 알려주면 정착은 성공한 거예요. 평소에는 물론 추수 때 보면, 저희 집 앞에 고추며 음식이며 정성이 깃든 작은 먹을거리가 놓여 있더라고요.” ‘강화 사람 되기’에 성공한 것 같으냐고 묻자 김 씨가 내놓은 답이다.

이어 귀촌 성공의 핵심은 ‘지역주민들과 어우러져 사는 것’이라고 했다. 김 씨의 경우 마을사람들과 어우러지는 데는 강화나들길 만들기 활동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 “그저 공동체 일원으로서 양보하며 어울려 사는 게 최고”라며 “혼자 즐기는 전원생활은 실패로 가는 지름길”이란 게 그가 귀촌생활 10년 경험으로 얻은 깨달음이었다.

그가 찾은 또 하나의 행복한 인생 2막의 답은 ‘공동체’였다. 자신이 사는 터전을 다른 이들과 함께 풍요롭게 만드는 일 그리고 이를 위해 내가 힘을 보탤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그는 노후 귀촌생활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나이 들어 여유를 즐기며 살고 싶다면 복잡한 도시를 등지고 시골로 내려오세요. 그곳에서 자신의 경험을 살려 나눌 수 있는 일에 도전해 보세요.”

김신형 씨가 조언하는 ‘귀촌생활 금기사항’
◆지역주민들 거주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 살지 말라
귀농의 경우 마을주민들로부터 농사를 배우거나 품앗이 등도 연계해야 하므로 자연스럽게 교류할 일이 많아진다. 하지만 귀촌은 얘기가 다르다. 귀촌생활에선 마을사람들과 어떻게 잘 어울려 살 것인가를 가장 많이 고민해야 한다.

◆자기 집 주변에 울타리를 세우지 말라
귀촌한 도시 사람들이 집을 짓고 먼저 하는 일이 자기 집 주변에 울타리를 세워 자기 땅의 경계를 표시하는 것이다. 땅과 시설물 등은 시골 사람들에겐 서로 공유하는 개념이다. 울타리를 세우고 담을 쌓는 동시에 주민들과의 화합은 멀어진다.

◆귀촌 후에도 돈 많이 벌겠다는 욕심은 버려라
진정한 귀촌생활은 노후를 여유 있게 즐기며 사는 것이다. 이 여유는 도시에서처럼 살려고 하지 않을 때 생긴다. 일을 줄이고 씀씀이도 줄이면 된다. 절대적으로 빈곤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런 생활은 자기 소유의 집과 약간의 연금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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