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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기]농촌체험마을 만들며 인생 2막 시작!

[성공기]농촌체험마을 만들며 인생 2막 시작!

기사승인 2015. 02. 26.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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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문태 한국농산어촌체험관광협회 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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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문태 한국농산어촌체험관광협회 회장
도시를 떠나 귀촌을 결정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한지도 십년이 넘는 세월이 훌쩍 넘었다. 그때를 뒤돌아보면 ‘농촌체험’이란 원대한 목표 아래 몸과 마음이 열정으로 넘쳐나 가슴 설레던 순간으로 기억된다.

피폐하고 고령화로 신음하는 우리의 농촌을 살기 좋은 곳으로 탈바꿈 시키는데 미력한 힘으로나마 보태고 싶었다. 농촌재건의 활로를 열어보겠다고 2003년 이곳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 신론리에 둥지를 틀었다. 시작부터 쉽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었다. 조용하던 농촌 작은 마을에 갑자기 등장한 도시 사람들에게 신뢰를 갖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기획광고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나와 서울 YMCA 등에서 레크리에이션 지도사로 활동하던 동료와 함께 ‘평범하기만 한 시골마을’에서 벗어나 감자나 고구마를 도시민에게 직접 심게 하고 그것을 수확해 도시민에게 돌려주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주민들을 설득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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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문태 대표가 귀촌한 신론리 마을. 평범했던 시골마을이 농촌체험마을의 메카로 떠올랐다.
무보수로 일하는 조건으로 귀촌생활 시작해
그래도 신론리를 처음 접했을 때의 첫 인상을 지울 수가 없어 포기할 수 없었다. 체험프로그램을 펼치기에 천혜의 자연 조건을 다 갖췄기 때문이다. 서울에 인접해 있으면서도 맑은 계곡물과 푸른 산이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고 있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러한 최상의 조건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고, 귀촌을 결심했으니 말이다.

이러한 결심의 배경에는 25년간 사회에서 쌓았던 경험의 가치를 농촌체험마을로 집대성 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다. 도시생활에서 마음의 여유를 잃어가고 고립화 되어가는 국민들에게 마음의 고향을 찾아주고, 핵가족으로 의지력이 약한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에게는 넉넉하고 따뜻함이 느껴지는 마음의 고향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의지가 발단이 됐다.

사실 스스로도 귀촌은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농촌과는 무관한 일에 종사한 일 들 뿐이었다. 태권도 국제심판자격증을 취득하고 지도자 생활을 했다. 또 한국레크리에이션 연구회의 활동도 병행했다. 그러던 중 행사 전문 이벤트 회사를 설립해 책임자의 길을 걷게 됐다. 화려한 조명아래 진행자로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이어갔다. 또한 수많은 청소년 행사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다 전문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설립했고, 동시에 사단법인 청소년야외교육협회의 사무국장을 역임도 했다. 귀촌을 결심하기 직전 전국 축제를 기획한 적이 있었다. 그때 농촌을 차분히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후 머릿속에는 체험 프로그램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던 찰라 이곳 신론리 마을을 알게 됐다. 이렇게 먼 길을 돌고 돌아 드디어 인생2막을 함께 걸어갈 반려자를 만난 것이다.

고론녹색농촌체험마을 기획을 맡아 3년 동안 무보수로 일하는 조건으로 귀촌에 대한 약속을 받을 수 있었다. 행동으로 그리고 결과로 보여주기만 한다면 마을 사람들의 신임을 얻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마을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마을 브랜드를 변경하는 것이었다. 외갓집체험마을로 변경하고 사람들의 호칭을 ‘삼촌’ ‘이모’로 부르게 했다. 아이들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한 조치였다. 또한 농촌에서 팔 수 있는 것은 농촌의 문화자원이라고 생각해 ‘체험을 팔자’라는 모토를 세우고 본격적인 사업에 시동을 걸었다.

체험을 팔기 시작하면서 마을 소득도 오르고 인구도 증가
37가구 90여명이 다였던 작은 마을엔 매일같이 방문객이 북적이게 됐다. 첫 해는 8000명의 방문 객수를 기록했고 다음 해는 두 배로 늘어나 1만5000명이 찾았다. 시냇물을 따라 송어 잡이를 하고 한 쪽에선 감자를 캐고 끝난 후 먹을거리를 나눠먹는 시골 생활이 하나의 상품이 된 거다. 마을주민들이 직접 만든 대나무 뗏목은 아이들에게 신기하고 흥미진진한 체험이다. 신론리를 찾는 도시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고 강냉이를 튀겨주는 것은 할아버지·할머니가 맡게해 어르신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켰다. 한국 농촌사회가 그렇듯 신론리에도 노령인구들이 절대적으로 많았기에 해결방안을 찾은 것이다. 덕분에 마을 주민들 모두 스태프(staff)으로 참여하는 시스템이 완성될 수 있었다.

입소문이 확산되며 큰 인기를 끌게 된다. 판로가 막막했던 농산물은 찾아오는 도시사람들 ‘먹이기’에도 모자라 외부에서 사올 정도가 됐다. 마을 안 폐교를 인수해 200명을 동시 수용할 수 있는 인성수련원을 만들었다. 관광객이 몰리면서 주변 환경도 변했다. 신론리는 농산품을 판매하는 것에만 열을 올리던 다른 마을들과는 달리 산촌의 여러 특징을 도시 가족들의 욕구에 맞춰 개발해 감동을 주는 전략을 펼쳤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전문가들의 찬사도 쏟아졌다. 마을 인지도가 높아지고 마을 소득도 불어나자 주민들도 그에게 차츰 마을을 열었다. 2006년에는 지금 영업장으로 사용하는 부지를 마음껏 해보라며 선뜻 내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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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삼촌체험마을은 계절별로 특색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다. 시냇가에서 송어잡이를 하며 아이들이 즐거워 하고 있다./사진=한수진
현재는 ‘영농조합법인 큰삼촌’이란 이름으로 봄가을에는 하루 평균 300~400여명의 체험여행객이 방문하는 농촌체험마을의 대표주자로 우뚝 섰다.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마을 경제가 살아나고 이용객의 호평이 쏟아지는 것에 보람을 느끼며 귀촌한 것에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또한 한국농산어촌체험관광협회 회장을 맡아 전국농산어촌을 수준 높은 체험관광지로 발전시키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협회는 농산어촌 체험 관광의 활성화 및 지역공동체 관광 육성, 만족도 높은 체험관광 모델을 제시하기 위해 조직됐다. 수개월간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전국방방곡곡 순회 설명회를 여는 등 일이 만만치 않다. 이처럼 큰삼촌 농촌체험마을에만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사업을 펼치는 이유는 환경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함과 동시에 혁신적인 발전 모델을 제시해야 비전이 있다고 판단해서다.

앞으로도 많은 귀농귀촌인들과 함께 농산어촌에서 더 잘 살수 있는 방법을 창출해 낼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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