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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때]세기의 설전…닉슨-흐루시초프 ‘부엌논쟁’

[오늘, 그때]세기의 설전…닉슨-흐루시초프 ‘부엌논쟁’

기사승인 2015. 07. 24.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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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논쟁
2015년 7월 24일은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혁신센터 지원기업 대표 여러분께서는 혁신센터를 사회공헌 뿐만 아니라 기업의 지속성장을 이끄는 동력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를 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역할을 ▲창업생태계의 구심점 ▲지역혁신 거점 ▲대중소기업 상생발전 및 지역 인재발굴 접점 등 3가지로 요약했습니다.

그렇다면 과거 ‘이날’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먼저 1959년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은 만날 때 마다 체제선전으로 설전을 벌였습니다. 이날 미국 부통령 닉슨은 무역박람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했습니다.

닉슨은 박람회가 열리고 있던 소콜니키 공원에서 흐루시초프와 마주쳤습니다. 박람회장에는 토스터, 식기세척기 등 최신 가전 제품이 전시돼 있었는데요.

거기서 나온 설전이 바로 ‘부엌논쟁’이었습니다.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흐루시초프는 닉슨에게 “미국 노동자들이 모두 이런 사치품들을 살 수는 없을 것”이라고 공격했습니다. 닉슨은 즉각 “우리 철강 노동자들이 지금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중인걸 아시지요. 그런 노동자들도 누구나 이 정도는 살 수 있지요”라고 받아쳤습니다.

이어 “그 사람들 시간당 3달러를 받는데 한달에 100달러 정도씩 25~30년만 불입하면 이런 가전제품이 완비된 집을 얼마든 삽니다”라고 공격했습니다.

다음은 흐루시초프의 반격차례였습니다. “별로 놀랍지 않네요. 곧 완공될 소련의 주택에는 그런 것들이 완비될 것입니다. 앞으로 소련에서 태어나기만 하면 누구나 그런 집에서 살 수 있습니다”

당시는 냉전이었고, 국가 지도자들의 언쟁이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또 1802년 이날 ‘삼총사’ 작가인 앙리 뒤마가 태어났습니다. 프랑스 귀족인 아버지와 아이티 출신의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던 뒤마는 등장인물의 활기찬 성격 묘사와 교묘한 줄거리 등 스토리 작가로서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줬습니다.

‘삼총사’ ‘몬테크리스토 백작’ 등 당대의 베스트셀러 작품을 써내며 많은 돈을 벌어들였으나 돈을 탕진하고 벨기에로 망명한 이후 이탈리아 독립투쟁에서 맹활약하고 사생아도 낳으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한편 1907년에는 일본이 한국을 강점하기 위한 단계적 수준으로 제3차 한일협약이 체결됐습니다. ‘정미 7조약’ 혹은 ‘한일신협약’이라고 하는데요. 1905년 을사조약 체결로 우리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 설치로 내정을 일삼아 온 일본은 헤이그 밀사사건을 구실삼아 한층 강력한 침략행위를 강구했습니다.

결국 이 조약 체결로 통감의 권한이 을사조약 때보다 강력해졌으며, 일본인 관리 등을 통해 한국의 내정에 관한 모든 국권이 일본에 넘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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