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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때]판사 집단 사표낸 ‘사법파동’ 시작(7월 28일)

[오늘, 그때]판사 집단 사표낸 ‘사법파동’ 시작(7월 28일)

기사승인 2015. 07. 2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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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28일은 중국 정부의 강력한 증시 부양책에도 중국 증시가 8.48% 폭락하면서 투자자들의 공포심이 극대화되고 있습니다. 중국 증시가 국내 증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데다 후강퉁 등을 통해 중국증시에 직접 투자한 국내 투자자들이 적지 않아 중국 증시 움직임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데요.

증시 전문가들 사이에선 중국 정부에 대한 신뢰감 저하를 근본 원인으로 지목하며 이를 회복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어 추가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거 ‘이날’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먼저 1971년 이날, 사법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습니다. 서울형사지법 판사 37명이 무더기로 사표를 낸 것이죠. 검찰이 이날 새벽 이범렬 부장판사와 최공웅 판사, 이남영 서기 등 3명에게 뇌물수수혐의를 적용,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두 판사가 제주도 출장시 사건담당 변호사로부토 일체의 비용을 제공받았다는 것이 검찰측 주장이었지만 시국 사건에 무죄 판결을 잇달아 내린 이범렬 판사를 겨냥한 꼬투리 잡기였습니다.

영장은 기각됐지만 분개한 판사들이 들고 있었습니다. 서울민사지법 판사 40명의 사표를 필두로 전국 415명의 판사 중 153명이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외부 압력에 시달려 온 그동안의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죠.

사태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자 박정희 대통령은 신직수 법무장관을 불러 사건을 확대하지 말도록 지시했습니다. 신 장관이 민복기 대법원장 집을 찾아 수사 백지화 등 수습방안을 제시하고 판사들도 8월 27일 사표제출을 철회함으로써 파동은 일단락됐지만 두 판사는 판사직을 그만뒀습니다.

무덥고 긴 여름 한 달동안 사법권 수호를 위한 판사들의 몸무림이었습니다. 그 후 1988년, 1993년, 2003년 등 네 차례에 걸쳐 사법파동이 일어났습니다.

또 1741년 이날은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린의 거장인 비발디가 사망했습니다. 비발디는 후기 바로크 기억음악에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였는데요.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산마르코대성당의 관현악단의 정규단원인 아버지 밑에서 음악을 배웠습니다. 그는 어린시절 칠삭둥이로 태어나 허약하게 컸는데요.

1693년에는 수도사가 됐고, 1703년에는 사제로 서품됐습니다. 그 후 여자어린이들을 위한 고아인원인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의 바이올린 교사로 임명돼 그곳에서 왕성한 음악활동을 했습니다.

그는 낭비벽이 심하고, 자만심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지는데요. 주요작품으로는 ‘신포니아 23곡’, 합주협주곡 ‘조화의 영감’,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사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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