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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푸에르토리코 한국전쟁 참전기록, 미국 의회도서관에 남긴다

[단독] 푸에르토리코 한국전쟁 참전기록, 미국 의회도서관에 남긴다

기사승인 2016. 09. 28.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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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군 68돌 국군의 날 특별기획] '한국전쟁 66년만에 한국 처음 찾은 푸에르토리코 참전 노병들'...2012년부터 한국전쟁 기록작업 본격 시작...공식자료 없고 참전용사 고령, 예산 부족 탓 '기록작업 애먹어'
푸에르토리코 참전용사 사진
푸에르토리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한국전쟁 발발 66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한국을 찾아 담제보훈기념사업회(회장 심호명)가 지난 25일 마련한 보은행사에서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담제보훈기념사업회 제공
푸에르토리코 출신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의 생생한 육성 증언이 미국 의회도서관에 공식 자료로 남는다.

오거스틴 몬테네즈 주니어(51) 푸에르토리코 보훈지원청 지원담당관은 25일 건군 68돌 국군의 날을 맞아 가진 아시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사실을 밝혔다.

오거스틴 지원담당관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6년 만에 처음으로 푸에르토리코 참전용사 16명을 비롯한 그 가족들과 함께 국가보훈처 초청으로 지난 20일부터 7일 간의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푸에르토리코 장병들은 한국전쟁 당시 6만 1000명이 참전해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참전 자체가 미군이라는 큰 틀에서 조명되고 출신 지역까지 구체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하는 자치령이란 한계 때문에 지금까지 공식적인 자료가 없었다. 많은 참전용사들이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자 역사의 자료로 기록할 필요성이 대두 됐다. 2012년 본격적인 한국전쟁 기록작업이 시작됐다.

오거스틴 담당관은 “푸에르토리코는 미 연방 소속으로 모든 시민들이 시민권을 갖고 있지만 이들이 한국의 자유를 위해 미군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사실을 미국 자체에서도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오거스틴 담당관은 “이에 대해 푸에르토리코 사람들 모두가 큰 서운함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푸에르토리코 참전용사들에 대한 무관심은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냈던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거스틴 담당관은 “사실 푸에르토리코 참전용사들이 1975년부터 한국에 공식적인 방문을 요청했다”면서 “하지만 그동안 성사되지 않다가 이제서야 공식적으로 초청을 받아 한국을 찾게 됐다”고 밝혔다.

한국전쟁 당시 푸에르토리코 장병들은 자치령 출신으로 이뤄진 미군 65보병연대에서 싸웠다. 6만1000여 명의 참전용사 중 4만3000여 명이 이 부대 소속이었다. 이들은 미 35보병 사단에 배속돼 9개 주요 전투에 참가하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웠다. 특히 장전호 전투에서는 고립된 미 1사단 장병들을 모두 구출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현재 현지의 담당기관은 많은 관련 기관들과 협력해 증언 기록 사업을 진행 중이다. 오거스틴 담당관은 “미 의회 도서관에 등록하기 위해서는 기록 자체가 완성도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여러 기관들과 협력해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오거스틴 담당관은 “하지만 생존자들이 대부분 80대 후반에서 90대 중반까지 고령으로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고 예산도 부족해 사업이 순조롭지는 않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오거스틴 담당관 푸에르토리코 1
오거스틴 몬테네즈 주니어 푸에르토리코 보훈지원청 지원담당관(오른쪽)이 25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보은행사에서 심호명 담제보훈기념사업회장으로부터 한국전쟁 참전에 대한 고마움이 담긴 감사패를 받고 있다. / 담제보훈기념사업회 제공
이에 따라 참전용사 기록 작업이 언제 끝날지도 불확실한 실정이다. 지금은 참전용사 중 약 1500명 만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거스틴 담당관은 “참전용사들이 한국에 와서 너무 만족해하고 좋아하며 초청 호의와 환대에 대해 정말로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면서 “특히 이번 방한기간 중에는 장성 1명을 포함한 6명의 푸에르토리코 출신 주한 미군이 참전용사들이 묵었던 호텔에 직접 찾아와 환영과 함께 존경의 뜻을 표해 감동의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다”고 밝혔다.

특히 푸에리토리코 참전용사들은 한국을 떠나기 전날인 25일에는 한국인들의 따뜻한 보은행사에 감동했다. 담제보훈기념사업회(회장 심호명)가 마련한 진정어린 보은행사에서 자신들의 희생과 헌신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이날 만찬회에는 푸에르토리코 참전용사와 가족, 현지 언론인 등 40여 명이 초청됐다.

담제보훈기념사업회는 지난해 6월 호국보훈의 달과 한국전쟁 참전용사 보은행사 일환으로 한국 민간단체로는 처음으로 세 번이나 비행기를 갈아 타고 20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푸에르토리코 현지를 찾아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에게 진정한 고마움을 전하는 대규모 보은행사를 마련했었다.

심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지난해 푸에리토리코를 방문했을 때 전상을 입은 한 참전용사로부터 오늘날 눈부시게 발전한 대한민국의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죽기 전에 꼭 한번 다시 한국을 찾고 싶다는 소원을 들으면서 정말로 가슴이 아팠다”고 밝혔다. 심 회장은 “오늘 우리는 공산군과 싸웠던 피를 나눈 형제의 나라 푸에르토리코의 용맹스런 용사들을 결코 잊을 수 없고 또 잊지도 않고 있다”면서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영웅적 헌신이 얼마나 위대하고 값진 것인지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된 한국을 보시면서 확인하셨을 것”이라며 진정한 고마움을 표했다.

에르베리토 디아즈 참전용사(86)는 참전용사들을 대표해 “한국전쟁 당시 임진강 근처 전투에서 중공군이 점령한 켈리힐을 탈환하기 위해 많은 전우들이 전사한 장면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면서 “지난 66년 동안 한국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도 모르고 지냈는데 이렇게 전우들과 함께 한국을 찾아 발전상을 직접 볼 수 있고 만찬을 베풀어 줘 감사 드린다”고 거듭 고마움을 전했다.

하비엘 모랄레 푸에르토리코 참전전우협회 회장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나서 그 누구에게도 연락이 없고 그저 참전용사들은 기억에도 존재하지 않는 잊혀진 존재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모랄레 회장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했거나 부상당했거나 생존해 있는 모든 참전용사들이 지금은 눈부시게 발전한 한국을 생각하면 그 때 목숨을 걸고 싸웠던 헌신적 노력이 결코 후회가 없을 것이며 우리가 결코 잊혀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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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참전 66년 만에 한국을 처음 찾은 푸에르토리코 참전 노병들이 25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담제보훈기념사업회가 마련한 보은행사에서 감사 메달과 기념 사진 등을 받은 후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 담제보훈기념사업회 제공
임충빈 전 육군참모총장(예비역 육군 대장)은 “참전 당시 한국의 위치도 몰랐을 여러분이 6·25 전쟁의 가장 중요한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고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 덕분에 대한민국은 전쟁의 참화를 극복하고 오늘날의 번영을 이루게 됐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임 총장은 “현재 한국은 유엔평화유지군(PKO)과 민간단체 활동 등을 통해 세계 평화와 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전쟁 당시 받았던 은혜를 갚고 있다”고 말했다. 임 총장은 “북한의 지속적 도발에는 한·미 연합방위체제 속에서 한국의 자유를 굳건히 수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보은행사에는 임 총장을 비롯해 김종헌·임문택·한광희·류수희·강완구·이웅희·임치규·배광용·양세일·이승기 등 한국군 예비역 장성과 함께 밝은사회 국제클럽(GCS) 한국본부 임원단이 대거 참석해 푸에르토리코 참전 노병들에 대한 진심어린 감사와 함께 참전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가 됐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올해 6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동안 푸에르토리코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장병들을 파병하고 고귀한 희생을 치렀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푸에르토리코는 한국전쟁에서 750여명이 전사하고 2300여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100여명은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실종자로 남아있다.

지금도 인구가 380만명 밖에 되지 않는 푸에르토리코는 한국전쟁 당시 무려 6만1000여명의 장병들이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군인들을 파병했다. 푸에르토리코 장병들로만 편성된 미군 65보병연대는 혹한의 장진호 전투에서 미1사단을 구출하는데 일등공신의 활약을 펼쳤다. 흥남철수 때도 마지막까지 남아 우리 국군과 유엔군, 북한 주민들을 남쪽으로 안전하게 피신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서울 탈환작전과 연천·금촌·철원 등 한국전쟁 주요 9개 전투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서울 수복작전 때 총검을 꽂고 고지 탈환을 위해 공격을 감행하는 용맹한 기상은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 인근에 있는 미 방위군 대응센터 벽화로 걸려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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