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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일담] “가격만 싸면 장땡”...국민 안전 ‘최저가’ 입찰과 맞바꾼 코레일

[취재후일담] “가격만 싸면 장땡”...국민 안전 ‘최저가’ 입찰과 맞바꾼 코레일

기사승인 2022. 10. 1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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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준
박완준 산업부 기자
"국민 안전과 직결된 고속철 입찰에 오직 저렴한 제품만 선택하는 것은 공정성에 어긋난다. 지난해 코레일 입찰 기준에서 객관적인 기술 평가 부분이 사라진 이유가 궁금하다."

국내 철도업계 관계자가 코레일이 발주할 7000억원 규모의 고속열차 입찰기준안에 반발하며 내놓은 목소리 입니다. 지난해부터 '올해 시속 300㎞ 이상의 고속차량 제작 및 공급사업 경험' 항목이 입찰기준에서 빠져 저렴한 부품을 사용한 기업이 '최저가 낙찰'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코레일은 다음 달 KTX 노선에 투입될 동력 분산식 고속차량 EMU-320 136량의 입찰공고를 낼 것으로 보입니다. 사업 규모는 총 7600억원으로, 업계는 올해 마지막 남은 대규모 국내 사업으로 꼽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코레일은 입찰자격에서 '시속 300㎞ 이상의 고속차량 제작 및 공급사업 경험'이란 항목을 빼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고속철 사업에서 기술 평가를 하지 않은 채 저렴한 가격을 기준으로 기업을 선정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아울러 수입 업체의 독단적인 입찰 참여도 허용해 가격 경쟁력에서 국내 철도 부품사들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6월 외국 철도 기업인 스페인의 탈고와 일본 도시바가 국내 중소업체 우진산전의 기술협력 제안에 응해 컨소시엄을 만들고 다음 달 코레일 입찰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객관적인 기술 평가가 사라지고, '최저 낙찰제'로 변경돼 저렴한 외국 부품을 사용하는 기업도 수주에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올라갔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입찰에 참여 예정인 스페인의 탈고는 동력집중식 고속차량 제작 업체로 코레일이 입찰에서 요구하는 '동력분산식' 고속차량 제작·납품 실적이 전무한 상태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대해 코레일은 협정체결국 간에 차별을 금지한 세계무역기구의 정부조달협정(WTO-GPA)에 따른 조치라고 해명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현대로템이 철도 시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수량이 적고 가격이 낮은 고속철 사업은 응찰이 되지 않아 사업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현대로템은 1996년 정부가 고속철도 건설 계획을 발표함에 따라 기술이 전무한 고속철도 시장에 진입해 토종 기술을 구축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은 기업입니다. 심지어 첫 고속철도 G7은 시장에 진입한 지 6년 만인 2002년 첫 시험구동에 성공했고, 2005년 KTX-산천 100량 경쟁 입찰에서 선정된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토종 고속철도 기술을 확보하는 데만 17년이 걸렸습니다. 특히 현대로템은 국내 철도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지만, 지난 2019~2020년 철도 부문 영업손실 2711억원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 때문에 발주 물량이 해외 업체에 쏠린다면, 우리나라의 기술 자립은 한 걸음 더 멀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는 자국 철도 기술을 보호하고 '철도 주권'을 지키기 위해 자국법인과의 공동응찰을 의무화하고, 완성차는 70% 이상, 전장품은 40% 이상의 자국 부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어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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