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석 논설실장 |
상품을 판매해서 빌린 이자도 갚지 못하는 사업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더구나 금리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면? 당연히 사업재편을 통해 이런 좀비기업이나 좀비사업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여러 정책들은 친노동 정책일까, 아니면 반노동적 정책일까? 만약 당신의 대답이 반노동 정책이라면, 크게 오해하고 있다. 어쩌면 당신은 반문할지 모른다. 무슨 소리냐, 구조조정이라는 게 지금 성과를 내지 못하는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 다수를 해고하는 것 아니냐, 그렇다면 그게 반노동적인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보자. 대처 집권 직전 영국은 복지병과 함께 강성 노조의 투쟁으로 영국병을 앓고 있었다. 이미 당시 영국에서 석탄산업은 채산성을 잃었다. 그렇지만 석탄산업 노조는 민영화나 구조조정을 친자본, 반노동 정책으로 몰았다. 석탄노조의 실제 목적은 정부가 어떤 방법으로든 석탄산업을 계속 지원하게 해서 철밥통을 지키는 것이었다. 대다수 노동자들의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런 성격 규정이 필요했을 뿐이다.
석탄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재원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 재원은 다름 아닌 여타 산업들로부터 거둔 세금이다. 그렇다면 석탄산업의 구조조정을 막는 것은 여타 산업 분야의 자본가뿐만 아니라 여타 산업의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석탄산업 종사자들의 기득권을 지켜주는 행위일 뿐이다. 석탄 노조가 자본 전체와 노동 전체가 대결이라도 벌이는 듯이 선전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이런 진실에 눈뜨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최근 조선 산업에서 막대한 손실이 발생해서 구조조정이 필요하게 되었다. 산업은행 등을 통해 긴급 수혈자금을 공급해서 실제 필요한 구조조정의 폭을 크게 줄였다. 처음에 조선 노조는 채권단에서 급여의 조정 등 자구책을 요구하자 크게 반발했다. 사실 자구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추가 지원의 규모가 줄거나 없어질 수 있고 그렇게 되었다간 자신들의 일자리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노조도 이 점을 깨닫자 비로소 더 이상 반발하지 않았다. 정부가 조선업의 구조조정의 폭이 필요한 수준보다 줄어들도록 혜택을 준다면, 이는 조선업에 투자한 자본과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 모두에게 혜택을 준 것이다. 사실 조선업이 국가 기간산업이라면서 더 많은 특혜를 베풀수록 실은 여타 산업의 자본과 노동에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없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 사업들의 재편을 막거나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각종 규제들도 마치 전체 노동자들을 위해 필요한 것처럼 선전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 목적과 효과는 전혀 다르다. 시장경제에서 노동과 자본은 적이 아니라 친구다. 노동과 자본은 기본적으로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자본이 축적되어 창 대신 그물이라는 자본재가 물고기를 잡는 데 쓰이면 같은 노동시간을 들여도 더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고 이에 따라 노동자들도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
경제 전체로 볼 때도 마찬가지다. 망할 좀비기업들을 지원해서 살아남게 하고, 고용을 늘릴 기업들로 자원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정책은 좀비기업에 고용된 사람들에만 초점을 맞추면 (단기적으로는) 친노동정책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좀비기업에서 고용된 사람들도 새로 창출될 고용으로 옮겨갈 기회를 잃은 채 직업을 잃는다) 전체 노동자들에 초점을 맞추면 실은 반노동 정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