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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유라시아이니셔티브](2)고조선·삼국시대·고려의 생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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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기자

승인 : 2014. 02. 03. 08:22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지경학(地經學): 과거나 현재나 먹고 사는 길 따라 역사가 열린다
글 김석규 코리아글로브 상임이사

왜 처음에 요하 일대에서 우리 옛 조상들은 그 좋은 구리나 쇠를 놔두고 옥(玉)을 만지작거렸을까. 이 분야의 권위자인 항공대 우실하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무덤에서 옥기(玉器)는 엄청나게 쏟아져 나온다. 대다수가 구부러진 곡옥(曲玉)인데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게 다 해고 달이다.

다시 말해 원시신앙이자 뿌리신앙이다. 지금도 우리가 제사 지낼 때 올리는 촛불이 곧 해이자 달이다. 뒷날 나오는 비파형 청동검도 그 쓰임새가 바람 부는 들판이나 산꼭대기에서 꺼지지 않을 불꽃 생김새의 촛불인 셈이자 곡옥의 후손이다.

◇옥(玉)과 구리 문명의 나라 고조선
그러다가 신석기가 지나고 구리의 시대와 쇠의 시대로 접어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첨단의 문명을 이끄는 이들이 그 이름으로 역사시대를 다시 연다. 여몽 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했을 때 열도에서 고려를 고(高)코리라 몽골을 맥코리라 불렀다.

다시 말해 고비 사막 동쪽의 대륙을 좌지우지하는 게 다 코리족이다 이 말인데 그 코리가 지금 우리가 부르는 구리다. 구리를 다루는 최첨단의 환인과 환웅과 단군이 다시 나타나신 게 바로 ‘초원의 길’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한자어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역사가 보인다. 단지 그 소리를 빌려썼을 뿐인데 구려(句麗), 구절마다 아름답다 이 따위 소리를 하면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 구리나 한자어 구려나 고려나 다 그 말이 그 말이다. 이 즈음이면 고구려를 세운 이들이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현재로 치면 ‘구글’쯤 된다 보면 된다.

◇최첨단 철기문명의 나라 고구려,백제,신라

그렇다면 쇠의 시대는 뭐로 봐야 할까. 이 또한 이 분야의 권위자인 동양대 김운회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쇠는 새고 또 해이다. 다시 말해 하늘겨레 즉 천손민족이다. 그래서 새인 까마귀의 신화 삼족오(三足烏)는 어느 순간 만주에서부터 열도까지 나타나는 것이다. 까닭은 간단하다. 최첨단이니까.

쇠의 길을 살펴보면 두 갈래가 먼저 보인다. 하나는 먼저 온 ‘가라(伽倻)의 길’이다. 김해는 쇠(해)의 바다다. 그 위에 보이는 김천은 쇠의 샘이다. 한마디로 엄청난 부자들이다.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센 부자들이 나타났다. 신라라 부르는 서라벌이다. 서라벌은 그 위로 달구벌(大邱)로 이어진다. 닭의 벌은 곧 계림이고 그 계림이 서라벌이 아닌가. 그 위에 사벌인 상주가 있다. 또 그 위로 쇠벌인 철원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가면 당연히 유라시아 지도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렇다면 두 번째 삼한(첫 번째 삼한은 고조선 때의 삼한이다.)에서 우리가 백제라 부르는 부여는 또 무언가. 이 또한 당대의 글로벌기업으로 짐작된다. 멀리 발칸반도로부터 중앙아시아에서 만주까지 곳곳에 나타나는 부르항산(육당 최남선은 백두산을 일러 불함문화론을 설파했다.)에 이르기까지 코리족과 한 갈래인 오늘의 부리야트족까지 온데 그 말이 널려있다. 먼저 말했듯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 먼 옛날에 땅이름은 곧 로제타 돌의 글자와도 같은 값어치가 있다.

부여든 부르항이든 부리야트든 모두 불과 닮은 말이니 곧 대장간이다. 다시 말해 먼저 나온 구리든 뒤에 나온 쇠든 그걸 공장에서 손을 봐야 서너 배 이익을 남기지 않겠는가. 부여 계통은 한마디로 장사꾼이다. 그래서 곧이곧대로 죽으나 사나 대륙만 누볐던 그 계통과 달리 부여계들은 지금의 서해 즉 황해를 자신들의 지중해로 삼고 만주에서 열도까지 또 만주에서 황하와 양자강을 건너 동남아까지 말 그대로 바다의 왕자 노릇을 하였다. 그 바탕이 그 엄청난 장사 기질임은 두 말할 까닭이 없다.

그렇다면 대륙의 길 말고 바다의 길에서 나타나는 최첨단 또는 장사는 어떠했을까. 먼저 그 유명한 가라의 김수로 왕과 아유타 국에서 왔다는 허황후 얘기부터 들어보자. 김해에 가보면 알겠지만 그 두 분을 만나는 순간 아름다웠던 환상이 깨어진다. 부부가 합장은 고사하고서라도 무슨 원수가 졌는지 엄청나게 묘가 멀리 떨어졌다. 게다가 아내의 묘가 훨씬 더 크다. 이는 곧 아름다운 신화가 실은 두 정치세력이 함께 했음을 나타내는 이야기임을 뜻한다. 조선조 이래 우리가 버릇이 잘못 들어서 늘 북쪽을 바라봐서 그렇지 지도를 펼쳐보자. 코리아에게 남쪽으로 끝없이 열린 바닷길은 지금이나 먼 옛날이나 노다지 길이다.

◇‘바다의 길’로 코리아에 들어온 쌀농사와 염장문화

그 길로 쌀농사라는 첨단문명이 먼저 전해졌다. 쌀은 언제부터 먹었을까. 경기도 고양의 가와지 볍씨가 나타나기 전에는 기원전 2천년으로 보다가 이제 대륙과 같이 기원전 5천년으로 본다. 먼저 누누이 말했듯 생각해보라. 그 노다지 길로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우리가 아직 몰라서 그렇지 허황후가 단 한 분이 계셨을까. 단군처럼 수없이 많은 허황후(남녀 가리지 않고)가 계셨을 것이다. 그리 되면 지금 김해의 두 분 묘처럼 그렇게 그림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 길로 쌀농사만 전해졌을까. 아니다. 인디아에서 동남아까지 많이 다녀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바닷길로 엄청나게 넘치고 기름진 염장문화가 들어왔다. 김치와 된장으로 대표되는 우리 발효식품의 전통문화에서 배추를 비롯한 풀도 있고 콩도 있겠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게 소금과 젓갈이다.

우리는 앞으로 정신 바짝 차리고 역사를 다시 쓸 뜻을 세워야 한다. 보라. ‘해의 길’과 ‘초원의 길’은 어디로 사라지고 우리 아이들은 모두 훨씬 이후에 나타난 ‘비단 길’만 주워섬기고 있지 않은가.

◇실크로드보다 훨씬 오래된 코리아의 ‘해의 길’, ‘초원의 길’

이제 그 궁색함과 외로움을 쓰레기통에 넣자. 연중기획 내내 확인하겠지만 코리아는 반만 년 내내 딱 20세기만 빼고 잘 먹고 잘 살았다. 여기서는 그 첫머리니 굵직한 몇 가지만 말하겠다.

먼저 고조선 시기를 보자. 그 무렵은 ‘해의 길’에서 ‘초원의 길’에 이르는 때다. 옥기에서 비파형 청동검까지 이어지듯 제사장의 무리들이 이어가던 그 2천년의 시기는 하이데커 말마따나 역사시대가 열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불꽃을 태웠다. 고조선은 일단 유라시아를 통틀어 제사장의 몫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홍익인간으로 상징되는 정치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큰 것은 그 둘을 밑받침하는 엄청난 시장지배력을 가졌다. 당연히 그 긴 시간 내내 무등(無等)의 하느님 나라, 한자어로 말하면 태평성대가 이어진 것이다.

쇠의 시대에 접어들자 모든 게 달라진다. 뒤에 자세히 말하겠지만 하도 오랜 세월이 흘러서 유라시아 곳곳이 다 제사장으로 알아서 홀로서기를 한다. 당연히 이웃한 중원에서도 오랜 땅따먹기 패권다툼을 거쳐 한족이라는 문명의 구심이 새로이 떠오른다. 게다가 구리의 시대와 달리 쇠의 시대의 생산력과 환경의 변화는 말 그대로 비약에 접어든다.

그럼에도 부자가 망해도 3대를 간다고 여전히 두 번째 삼한인 삼국시대는 최첨단 산업과 유통산업, 식품 산업이 어우러지며 업그레이드된 문명을 이어간다.

그 잘 나가던 세월은 고구려 평양성이 불타고 백제 백강전투에서 일본의 지원군이 전멸하면서 끝난다. 그 한참 뒤 고려를 보자. 지금 대한민국이 당대의 벽란도보다 더 큰 시장지배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전혀 아니다.

◇세계 최고의 문명권이었던 코리아를 알고 자학사관에서 벗어나야

나중에 말하겠지만 13세기 몽골은 비단 길에 이은 네 번째 유라시아의 길을 열었다. 그리고 그 동업자는 다름 아닌 고려였다. 지금의 한미동맹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혈맹이라고는 하나 어찌 ‘여몽동맹’에 명함이라도 들이밀 수 있을까. 대한민국이 일본 정도의 경제력이라도 가져야 그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뒤에 낱낱이 말하겠지만 청나라를 볼까. 전성기의 청나라는 2차 대전 바로 뒤 미국이 가장 잘 나갔을 때처럼 세계 GNP의 30%(무굴제국은 25%)를 차지할 때였다. 이 분야를 파헤친 동국대 황태연 교수의 연구처럼 조선은 비록 임진왜란을 거치고 나서는 한동안 빈국이 되었지만 청나라와의 특수관계에서 조선은 무섭게 성장한다. 비교사적으로 볼 때 지금 대한민국의 경제적 수준은 영정조 때만큼 산다고 보면 될 것이다.

역대 대통령의 연설에서도 늘 반만 년의 가난이 어떻고 단군 이래 최초라니 이런 무지한 소리가 나오는 형국이니 좌우를 막론하고 어찌 ‘자학사관’에서 벗어나겠나. 어쨌든 우리는 유라시아의 길을 되찾아 제발 자학사관을 벗어던지자.
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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