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기업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 민영화된 기업, 끊이지 않는 정부입김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140305010002612

글자크기

닫기

박병일 기자

승인 : 2014. 03. 06. 06:00

정부 바뀔 때 마다 기업 수장 교체 '도돌이 표', 경영계획 잦은 변화부담 커져
정부의 민간기업에 대한 경영간섭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이석채 KT회장이 청와대의 퇴진 압박으로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사퇴하고 정준양 포스코 회장 역시 임기만료전 자진 사퇴의사를 밝힌 것과 관련, 과거 공기업이었던 민간기업에 대한 정부의 입김이 여전히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압력이 표면으로 나타나지는 않고 있지만 재계는 이미 포스코와 KT의 회장 인사는 정부가 담당한다는 것에 이견이 없는 상태다.

5일 재계는 정부가 민간기업 수장을 임명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빨리 없어져야 할 폐습’이라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철강과 통신 사업이 국가기반산업이라고 해도 민간기업에 대한 경영간섭이라는 것이다.

과거 공기업으로 출발한 포스코와 KT는 2000년대 초반 민영화돼 어엿한 주요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과거 정부의 입김에 좌지우지됐던 경영환경은 여전해, 정권교체기마다 최고경영자(CEO)가 물러나는 악습이 지속되고 있다. 재계 순위로 보면 포스코는 6위, KT는 11위다.

재계 한 관계자는 “포스코와 KT같은 재계 20위안의 기업에 대해 과거 공기업이었다는 이유로 회장임명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이런 부분을 개선하지 않으면 지금 같은 경기침체기에는 기업경쟁력을 악화시키는 암초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포스코와 KT의 과거 회장들이 정권교체기 마다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해당 기업이 세무당국의 표적이 되는 상황이 반복될 때마다 재계는 민간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왔다. 하지만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기업입장에서는 확실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는 현실에 직면해 왔다.

지난해 이석채 KT회장이 회장직에서 물러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청와대까지 나서 이 회장의 사퇴를 종용하는 등 노골적인 압력이 있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사퇴하지 않고 2015년까지 임기를 다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던 이 회장도 배임·횡령 혐의로 검찰이 자택·KT본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서자 중도 퇴임이라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재계의 관측이다.

2015년 2월까지 임기가 남아있던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이 회장의 상황에 부담을 느낀 탓인지 지난해 11월 사퇴의사를 밝혔다. 당시 재계에선 정 회장의 사퇴 배경에 이명박 정부 인물로 여겨지는 정 회장을 떨궈 내기 위한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렸다. 포스코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정 회장의 사퇴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도 나왔다.

정 회장과 이 회장을 비롯해 역대 포스코와 KT CEO는 정권교체 때마다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일이 되풀이 됐다. 포스코의 경우 민영화가 이뤄진 2000년 당시 회장직을 맡고 있던 유상부 전 회장은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연임을 시도했지만 낙마했다. 유 회장은 이후 배임혐의로 기소됐다.

유 회장 후임으로 포스코 회장직에 오른 이구택 전 회장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1년만에 사퇴했고 검찰에서 세무조사 무마 로비와 관련 조사를 받기도 했다. 남중수 KT 전 사장도 임기를 2년 넘게 남겨놓은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물러났고 납품비리 의혹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재계에선 잦은 CEO교체가 단순히 기업의 수장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CEO가 바뀌면서 그 동안 진행해온 사업을 전면 재검토를 해야함은 물론, 새로운 사업을 찾아야 한다는 부담을 키운다고 지적하고 있다.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5년 주기로 바뀌는 CEO의 성향을 파악하고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 경영의 효율성을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관련업계 관계자는 “뭐좀 해보려 하면 관둬야 한다는 것을 아는데 누가 최선을 다하겠느냐”며 “하물며 최선을 다해 경영에 매진하더라도 정권만 바뀌면 기존 정권과 연결돼 구설수에 오르니 선뜻 대기업을 이끌려 하겠나”고 설명했다.

새로운 CEO들은 물러난 전직 CEO의 색깔을 빼야 하는 부담도 존재한다. 전직 CEO들이 ‘과거정권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무리한 사업 결정을 내리는 상황이 자주 찾아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최근 방만경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공기업 개혁과 함께 YTN, 철도공사등에 대한 민영화 이슈가 불거지면서 향후 민영화되는 기업들도 포스코와 KT의 전철을 밟는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철강과 통신 사업 특성상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사업들이 많음에도 잦은 CEO 교체는 사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가 포스코와 KT의 CEO를 내정한다는 관측에 대해 한 정계 관계자는 “정부입장에서 어찌보면 당연하다”며 “국가 기반산업과 안보에 직결되는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입김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박병일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