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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자본주의 논리에서만 이 융합을 평가한다면 수세기가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지속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매체를 통한 정보 획득과 공유가 일반화 된 이후 스포츠를 이용한 상업적 활동은 십 수년동안 진화의 진화를 거듭해 왔다.
여기에는 현장감 넘치는 화면을 전세계 스포츠팬들에게 전달해 주는 TV중계 기술과 선명한 화면을 구현해 내는 TV, 그리고 선수들의 최상의 조건에서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경기장·운동장비 등등 발전된 과학기술이 녹아있고, 자본력을 갖춘 기업들의 고차원화된 전략이 상존해 왔다.
이런 변화는 스포츠를 일부 소수자들의 문화에서 대중문화로 끌어올려놨고, 스포츠의 성장을 이끈 근간이 됐다. 이제 올림픽·월드컵 등 수많은 글로벌 스포츠이벤트는 상업적 이해관계를 떼어 놓고는 이해하기 어려워 졌다. 스포츠와 자본간 만들어진 관계의 끈이 끊어진다면 당장이라도 올림픽이라는 단어는 역사속으로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이 둘의 관계가 얼마나 강력하게 묶여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상업화라는 명제하에 스포츠는 지속적인 세포분열을 해 왔다. 이종격투기와 같은 새로운 스포츠를 만들어냈고, 기존의 스포츠들은 진화를 통해 스포츠소비자와 미디어, 기업이 가장 효과적으로 접목될 방법을 찾아왔다. 이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기 보다는 더욱 강력해지고 최적화된 조건을 만들기 위한 암묵적 합의이자 최상의 전략이었다.
그 속내가 어떻든 결과적으로 스포츠는 어떤 문화보다 강력한 기반을 만들어냈고 승승장구하는 대중문화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런 성공적인 진화에도 불구하고 그 뒷면에는 어둡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차고 넘친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기업들이 스포츠와 친해지면서 스포츠는 기업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규칙을 변화시켰고, 기업과 미디어가 없는 스포츠는 비인기 종목으로 전락해 버렸다. 스타선수에 의존할 수 있는 여지도 있지만 스타선수 또한 기업과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신기루 같은 존재일 때가 더 많다.
심지어 돈의 역학관계가 너무 강하게 작용해 스포츠의 본질인 정정당당한 경쟁의 의미도 희미해 지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얼마전 있었던 메이웨더 주니어(38)와 매니 파퀴아오(37)와의 복싱대결은 스포츠 상업화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 경기를 놓고 세계 각국의 미디어들은 ‘세기의 대결’이라는 평가를 내리며 이 경기의 관심도를 끌어올리는 데 열을 올렸다. 그만큼 복싱팬들의 기대도 커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두 선수의 경기력을 비교할 때 누가 승리할 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두 선수 모두 정렬적인 팬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들의 몸값은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이번 경기로 이 두 선수가 가져간 대전료만 2680억원이다. 이중 메이웨더가 1619억원, 파퀴아오가 1199억원을 가져갔다. 축구황제라고 불리는 리오넬 메시가 지난해 벌어들인 780억원은 비교하기도 힘든 금액이다.
그래서 일까 상업적 모습은 극대화 됐다. 세기의 대결이라는 타이틀속에 두 선수의 계체량 행사에 10달러라는 입장료를 받았고, 본 경기 입장권의 암표가격은 2억7000만원에 달하는 상황까지 만들어냈다.
기업들의 스폰서 금액도 만만치 않았다. 링에 붙은 스폰서 금액은 1320만달러, 약 145억원이었다. 파퀴아오의 트렁크에 부착된 기업들의 스폰서료도 모두 225만달러, 24억3000만원에 달했다. 이 경기의 유료 TV 시청료는 한화로 약 9만7000원이었다.
경기전부터 최소 160만원에서 1000만원에 달하는 입장권 수익은 773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됐고 TV중계권 수익까지 합치면 최소 4300억원의 수익을 가져다 줄 경기로 평가됐다. 이 한 경기에서 발생하는 상업효과가 왠 만한 국내 기업의 한 분기 영업이익을 웃돌 정도였다.
하지만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의 경기가 끝난후 팬들과 세계 각국의 언론들은 세기의 졸전이라는 성적표를 내놨다. 이날 경기는 화끈한 경기를 원했던 팬들의 기대와 달리 경기는 시종일관 밋밋하게 진행됐고, 이렇다 할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메이웨더의 싱거운 판정승으로 끝나버렸다.
어떤 경기든 그날 선수들의 컨디션이나 전략에 따라 지루한 경기가 진행되기도 한다. 단순히 이 경기만의 상황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두 선수의 경기를 본 관람객·시청자 들이 불만을 성토한 것은 수백만원의 돈을 들여 입장권을 사고 단 2~3시간 경기를 보기 위한 10만원이라는 TV시청료를 냈다는 점이다(다행히 국내 팬들은 TV시청료 없이 경기를 시청했다는 점은 그나마 위안거리다). 투자한 만큼 기대치는 높아졌고,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지 못하자 컴플레인이 거세진 경우다.
만약 이 경기가 수천억원에 달하는 상업논리가 아닌 순수한 스포츠정신만으로 진행된 경기였다면 이런 불만은 금세 사라졌을 지도 모른다. 물론 이 많은 사람들이 이 경기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다만 경기의 승패나 내용이 어떻든 경기가 진행되는 그 순간 만큼은 집중하고 경기자체를 즐길 수 있는 분위기는 만들어 냈을지도 모른다.
한 스포츠 학자는 스포츠의 쇼비즈니즘이나 시장의 논리가 근본적인 스포츠규칙의 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설명한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문화속에서 스포츠는 진화를 통해 더욱 강해졌지만 정작 그 문화에 종속되며 쫓기는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는 의미일 것이다.
지금의 스포츠상업화는 어쩌면 돈이라는 무소불위의 문화에 쫓기고 있는 지도 모른다.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의 경기는 기업, 기업화된 미디어를 통한 스포츠 산업화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보여줬다. 예상할 수 없을 만큼의 무한한 수익적 가치를 보여준 반면,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이어져 온 스포츠 고유의 정신과 그 자체의 즐거움에 대한 의미가 얼마나 퇴색될 수 있는지도 보여줬다.
그럼에도 스포츠 상업화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진행될 뿐 아니라 더욱 가속화 될 것이다(그리고 스포츠 발전을 위해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과거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또 다른 수익구조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불법적으로 여겨졌던 수익창출 방법이 합법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도 생길지도 모른다. 그만큼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변화 속에 있는 것이 현대의 스포츠산업이다.
스포츠 상업화가 스포츠를 성장시키는 최고의 방법중 하나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면 스포츠의 본질인 즐거움, 자기발전, 순수한 경쟁 등의 아마추어리즘을 유지하고 계승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이 노력은 스포츠 자체의 숙제만이 아니다. 기업과 미디어, 팬들이 함께 고민하고 찾아야 하는 과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