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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심에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산업인턴제’가 자리했다. 농산업인턴제의 탄생은 2004년 고(故) 박홍수 장관의 치적 중 하나다. 당시 농식품부 최우선 과제는 줄어드는 농업인구를 억제하는 것이다. 후계인력 양성은 농업생존과 발전기반이라는 것을 후계농 출신 장관이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2005년 ‘농산업인턴제’가 실현돼, 농업분야 일자리가 늘어나고 신규 후계농업인력 유입을 촉진시키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역활성화와 고령화방지, 농업경쟁력확보에 이르기까지 전후방 효과도 나타났다.
18세부터 44세까지 농산업 창업희망자가 5년 이상 영농경력을 갖춘 전문경영인과 함께 인턴으로 일하자는 취지도 훌륭했다. 경영주의 대부분은 전업농, 농업법인, 신지식인, 강소농 등으로 정부가 급여의 50%(최대 60만원 한도)를 10개월간 지원하는 상부상조체계이다.
농산업인턴제는 기존 농업교육과 취지부터 달랐다. 단순히 배우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훈련과 실습에 역점을 뒀다. 덕분에 시행초기부터 정책효과가 나타났다. 수혜자도 2005년 100명부터 시작해 매년 30% 이상 성장하기 시작해 2010년 345명으로 늘어났다. 물론 농식품부의 2009년 4월과 10월 귀농귀촌활성화대책도 한 몫 했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2010년 청와대는 ‘유사중복사업’ 통폐합의 일환으로 농식품부 인턴관련 사업을 고용노동부의 ‘청년 창직인턴제’로 이관시켰다.
고용부는 일자리 창출과 숫자가 중요했지, 농업분야의 특수성이나 비경제적인 요인에는 관심이 멀었다. 농식품부 입장에서도 후계인력 육성 전부를 고용부에 넘겨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나온 사업이 현재 농촌진흥청에서 운영하는 ‘귀농귀촌 현장실습지원사업’이다. 이 사업은 귀농인에게 영농기술 및 품질관리, 경영·마케팅 등에 필요한 단계별 현장 실습체험 및 교육 등을 제공한다. 농산업인턴제처럼 연령제한도 없다. 귀농귀촌인이면 누구나 신청해서 일도 배우고 연습도 하고 돈도 받는 최고의 제도다.
사실 고용부에게 있어 농산업인턴제는 농식품부와 연관된 계륵 같은 사업이었다. 결국 2014년 고용부에서 중소기업청으로 넘어가고, 농산업인턴제는 창직 사업과 성격이 달라 구렁이 담 넘어 가듯 폐지돼 버렸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된 농업계는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농산업인턴제 못지않게 중요한 사업이 ‘귀농귀촌현장실습지원사업’이다. 하지만 농업계의 후계농 관련 인턴사업은 산 넘어 산이다. 두 개의 사업 중 농산업인턴제는 2015년도 사업자체가 폐지됐고 현장실습사업도 연수인원이 축소됐다. 지금까지 매년 560명씩 현장실습을 했지만 2015년에는 517명 105개소로 돌연 40여명이 줄어들었다.
2014년 한 해 동안 귀농귀촌한 사람들은 8만1000명이다. 전체의 0.6%만이 2015년도 후계농 인턴사업의 혜택을 보는 셈이다. 나머지 99.3%는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이라고 말하면 잔인할까. 귀농귀촌 전 단계인 도시민교육을 3%만 받고, 이후 단계인 현장실습 이수자는 0.6%에 불과하다는 것은 국민들의 건전한 상식과 거리가 있다.
창조경제의 핵심은 ‘일자리를 새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에서 나타나는 실상은 일자리를 없애고 줄이는 형태로 가고 있다. 농업계는 농산업인턴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2016년도 사업으로 부활시켜야 한다. 정든 도시를 버리고 시골로 내려가 살려고 발버둥치는 귀농귀촌인의 심정을 느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