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겟아웃' '컨저링' '애나벨' 등 외국 공포 영화들이 관객의 사랑을 받는 동안 국산 토종 공포영화는 자취를 감췄다. 1998년 '여고괴담' 시리즈를 시작으로 2000년대 초반, '가위' '찍히면 죽는다' '폰' 등 한국 공포 영화의 전성기를 지나, 2005년 '장화, 홍련'도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는 흥행작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올 여름은 다르다. 지난 8일 영화 '장산범'(감독 허정·제작 스튜디오 드림캡처)의 언론시사회가 열린 가운데, 토종 공포영화의 화려한 부활을 예고했다.
'장산범'은 '숨바꼭질'로 560만 관객을 동원했던 허정의 차기작이다. '숨바꼭질'이 아파트 현관 도어벨 옆에 기호를 그려 해당 집에 사는 사람의 성별과 나이 등을 표시한다는 도시괴담을 바탕으로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익숙하고도 낯선 공포를 선사했다면, '장산범'은 목소리를 흉내내 사람을 홀린다는 괴생명체 장산범이라는 지역 민담에 근거한 공포를 소리로 풀어냈다.
영화는 누군가와 똑같은 친숙한 목소리가 장소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들려오며 공포감을 극대화시켜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색다른 공포를 체험하게 한다. 영화에 몰입하다 보면 일상적인 평범한 소리에서도 공포감이 배가 돼 눈을 감기보다 귀를 막게 만든다. 소리로 공포감을 주지만 사운드에만 힘을 싣지도 않았다. 정체 모를 존재가 불쑥불쑥 튀어나와 긴장감을 배가 시킨다. '해님달님' 이야기를 차용한 점이나 토속적인 무당을 등장시켜 토종 국산 공포 영화의 색깔을 만들어낸 것에서도 '장산범'의 개성이 보인다.
배우들의 연기도 나무랄 데 없다. 원조 스릴러퀸 염정아는 또 한 번 스릴러 연기의 진수를 보여줬다. '장화 홍련'(2003년)에서 예민하고 섬뜩한 계모 은주 역을 맡아 존재감 뿜었던 그는 14년 만에 더욱 깊어진 감성으로 돌아왔다. 아이를 잃은 아픔과 죄책감, 비밀을 감춘 아이를 향한 모성애까지 스릴러퀸의 진면모를 보여준다. '곡성' '나를 잊지 말아요' 등 출연하는 작품마다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 내공으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냈던 허진 역시 이번 영화에서 치매 걸린 시어머니 순자로 분해 불안하고 섬뜩한 열연을 펼쳤다. 특히 아역배우 비밀을 감춘 아이를 맡은 신린아는 미스터리한 눈빛과 표정, 정체를 가늠 할수 없는 묘한 분위기로 스크린을 장악한다. 아역으로써 쉽지 않은 연기였음에도 놀라운 집중력과 재능을 뽐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괴담의 형태로 떠돌던 장산범은 2013년 웹툰의 소재로 활용 된 뒤 주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등극하는 등 화제가 됐었다. SBS '궁금한 이야기 Y' 제작진이 직접 장산범 괴담을 취재하며 직접 장산범을 목격했다는 목격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과학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이처럼 수많은 목격담을 통해 존재가 알려진 장산범에 대한 호기심이 높다. 뿐만 아니라 '아빠 괴담', 동화 '해님 달님', 소설 검은 고양이' 등 다양한 이야기들에서 착안해 밀도 높은 이야기와 긴장감 넘치는 구성을 자랑한다.
웰메이드 미스터리 스릴러의 등장에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의 반응도 뜨겁다. 북·남미·프랑스·독일·영국·이탈리아·스페인·필리핀·대만·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전 세계 122개국에 선판매 됐으며, 남미 지역을 포함해 10개국에도 극장 개봉을 확정지었다. 소리를 통한 아찔한 상상력이 극도의 긴장감으로 표현되는 '장산범'이 국내 토종 공포영화의 자존심을 세울 지 주목된다. 15세 이상 관람가. 오는 17일 개봉.